“누가 저토록 안타깝게 죄짓지 말라고 권고해 줄 수 있을까”

김금순 권사 / 안양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539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 드리고 온몸을 생명물로 닦자
구부러진 다리가 반듯하게 펴지고 얼굴에는 보기 좋게 살이 올라
뽀얗게 피고 꽃잎처럼 발그스름하게 홍조 띠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김금순 권사 / 안양교회

저는 1935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업회사에 다니시는 아버지 슬하에서 4남매 저희 형제는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생활했습니다. 해방 후 서울로 내려와 살게 되면서 저는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에 다녔습니다. 제가 교사 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장로교회에 나가시면서 온 가족이 따라 나가기 시작했는데,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저는 시간 날 때 한 번씩 예배에 참석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후 스물여섯 살에 결혼해 상도동에서 살게 됐습니다. 시어머니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시는 분이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예배에 나가시고 전도관 일이라면 무엇이든 앞장서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홀로 삼남매를 키우며 고생을 많이 했는데, 몹시 아팠을 때 병원에서 못 고친 병이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가서 나았다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새 삶을 주신 분이라 믿고 전도관에 다닌다 하셨습니다. 한번은 우리 딸아이가 열이 나고 아팠을 때 시어머니가 전도관에서 받아온 생명물을 먹이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맹물 같은 걸 먹고 나을 수 있나?’ 하며 걱정했지만 다음 날 깨끗이 나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덕소신앙촌에 같이 가자 하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덕소신앙촌은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관에 다니시고 신앙촌에 자주 가시면서도 저한테 가자하신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박태선 장로님께 안찰 받을 기회가 있으니 저에게 받아 보라 하셨습니다. 안찰이 뭔지 모르면서도 시어머니가 특별히 부탁하시는 말씀에 따라나섰습니다.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사는 덕소신앙촌은 한강 변에 지어진 도시였습니다. 수려한 경관에 2층 양옥 주택과 공장이 들어서 있었고 커다란 교회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안찰 받을 기회 생겨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나니
마음속에 악함이 싹 사라지는 것 같고
그렇게 마음이 평안할 수 없어 신기해

많은 사람이 줄서서 안찰 받을 때 제 차례가 되어 박 장로님 앞에 갔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안찰하시기 전에 “안찰을 통해 성신을 받으면 속에 있는 죄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내 모든 죄 용서해 주세요.’ 하고 기도드리세요.” 하셨습니다. 박 장로님의 손이 두 눈에 닿자마자 눈알이 빠지는 것처럼 아팠고 배를 안찰하실 때는 너무 아파서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은 후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내 속에 악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도 무엇을 탐내는 마음도 없이 그렇게 평안할 수 없었고 ‘이렇게 살면 성인군자가 따로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잠깐 안찰을 받았을 뿐인데 마음이 그렇게 변화되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후 시어머니가 많이 연로해지고 병석에 누우시면서 전도관에 나가실 수 없게 됐습니다. 한번은 하시는 말씀이 “박 장로님 설교 말씀을 못 들으니 답답하구나. 네가 듣고 와서 전해 줄 수 없겠니?” 하고 부탁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계속 편찮으셨기 때문에 마지막 부탁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못 하겠나 싶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직접 오셔서 설교 말씀을 해 주신다는 마포 이만제단으로 갔습니다. 시어머니를 대신해 들으러 갔던 말씀에 제가 그토록 감동을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구원을 얻으려면 죄에서 떠나야 한다며 죄짓지 말라고 안타깝게 권고하셨습니다. 생각과 마음으로도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수준 높은 고차원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세상에 누가 나의 구원을 위해 저토록 안타깝게 권고해 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장로교인 친정식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은 전도관이 이단이니 나쁜 곳이라 했었는데, 실제 와서 듣고 보니 그런 말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어머니를 돌보는 한편으로 이만제단에 가서 설교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말씀을 전해 드리면 어머니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신 것처럼 편안한 표정이 되어 “그래, 그 말씀이 옳지!” 하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68년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생전에 다니셨던 상도동전도관의 전도사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병환 중에 계셨던 시어머니는 피골이 상접하게 말라 있었고, 무릎이 잘 펴지지 않아 구부린 채로 돌아가셔서 뻣뻣하게 굳어 버렸습니다. 생전에도 병색이 짙었던 얼굴이 숨을 거두신 후에는 더욱 어두운 빛을 띠었습니다. 입관예배 드릴 때 장례반 권사님들이 생명물을 시어머니 입에 넣어 드리고 온몸을 생명물로 깨끗이 닦아 드렸습니다. 입관을 마친 후 시어머니를 봤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구부러진 다리를 반듯하게 펴고 편안히 누워 계실 뿐 아니라 해골 같았던 모습이 온데간데없고 보기 좋게 살이 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두웠던 피부색이 맑고 뽀얗게 피고 꽃잎처럼 발그스름한 홍조를 띠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단잠을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해 보여서 자꾸 얼굴을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세상에 이런 기적이 다 있구나!’하며 참 놀라웠습니다.

허리를 못필 정도로 배가 당기고 아파
생명물 한 컵을 주셔서 받아 마시니
괴롭던 통증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하나님의 분명한 권능르 깨닫게 돼

그 후로도 상도동전도관의 전도사님과 부인회장님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셔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인회장님이 새벽예배에 같이 가자고 권유하시며 새벽마다 데리러 오셔서 함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인 것 같다며 임시로 진정하는 약을 줄 테니 다시 아프면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약을 먹고 괜찮았다가 며칠 후 다시 아프기 시작했는데, 새벽예배 가는 길에 배가 당기고 아프더니 예배 시간 내내 허리를 못 펼 정도로 아팠습니다. 날이 밝으면 얼른 병원에 가야겠다 하며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그런데 예배 마친 후 전도사님께서 생명물을 한 컵 주셔서 받아 마셨더니 통증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생명물을 마시자마자 그렇게 괴롭던 통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니 참 놀라웠습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생명물로 곱게 피시는 것을 보고, 저 자신이 몹시 괴롭던 맹장염이 낫게 되면서 하나님의 권능은 참으로 분명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매일 새벽예배에 빠짐없이 나갔습니다.

상도동전도관에 교인이 늘어나면서 상도1동, 2동, 3동 전도관으로 나누어지게 됐습니다. 저는 상도1동 전도관에 다녔는데 어느 날 예배 시간에 전도사님께서 저를 부인회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하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몹시 놀랐고 만 가지가 부족한 것뿐이었지만 귀한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 마치고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때였습니다. 순간 머리 위로 폭포수같이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깜짝 놀라 천정을 쳐다봤지만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교인들에게 하나님 은혜가 폭포수처럼 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라 ‘아! 직분을 주시며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1980년 하나님께서 예수의 정체를 밝히셨을 때 그 말씀을 듣고 놀라워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먼저 성경의 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실상은 추한 죄인임을 밝히시고 구원에 해독(害毒)을 끼치는 인물들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다음 단계로 구세주로 자처하는 예수가 구원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죄를 대속(代贖)해 용서해 주는 것처럼 속여서 오히려 죄를 더 짓게 만들고 구원의 길을 가로막은 존재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로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온 인류가 구세주로 믿고 있는 예수의 정체를 밝히시는 분은 진정 구원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차츰차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직분을 받고 기도를 드리는 순간
머리위로 폭포수 같은 물 쏟아져내려
천정을 봐도 물 한방울 보이지 않아
은혜 주심을 깨닫고 감사 기도 드려

저는 교편생활을 하고 그 후 회사에 다니면서도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신앙촌에서 만든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보람 있을 것 같았고 은혜가 담긴 물건을 전하며 하나님 일 속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항상 기쁘고 부지런하게 사시는 소비조합들을 부러워하다가 1997년 드디어 저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성격이 활발하지 못해 판매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신앙촌 상표를 믿고 찾는 분들이 많아 시간이 갈수록 고객이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20여 년 소비조합으로 활동한 후 지금도 여든이 넘은 나이에 건강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소비조합을 하며 바쁘게 살았던 것이 건강의 밑받침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귀한 길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금 감사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저를 전도하기 위해 여러 모로 권고하며 애쓰셨던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저는 그만큼 전도에 힘쓰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쉽고 부끄럽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궁리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귀한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은혜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그날에 기쁨으로 하나님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금순 권사님 신앙체험기)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