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3)

얼마 안가서 장년만 2천여명으로
발행일 발행호수 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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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몇 십명으로 시작한 원효로 임시 전도관, 얼마 안가서 장년만 2천여명으로

1955년 12월에 개관된 원효로 임시 전도관의 예배 시간은 새벽 예배가 매일 새벽 4시 30분부터, 수요일예배가 오후 7시부터, 주일예배는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처음에 몇 십명으로 시작된 원효로 전도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년만 2천여명이 모이는 큰 전도관으로 발전하여 임시전도관은 입추의 여지가 없게되었다.
예배 시간에는 주일 학교 학생들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은혜를 받아 눈물의 바다를 이루곤 하였다.

`저는 그때 주일학교 학생을 데리고 예배를 보는데 주일 학교 학생들이 통곡을 해요. 향취를 맡았다, 불을 받았다 하며 가슴을 치고 죄를 회개하면서 통곡을 합디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선우혜국 승사. 89세. 기장신앙촌)

원효로 전도관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고 있었다. 처음부터 원효로 전도관과 함께하였던 조남준 권사(사진)는  당시의 일들을 소상히 증언하였다.

조남준 권사는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던 대한정밀기계 공업사의 직원이었다. 먼저 그가 전도를 받아 하나님을 믿게 된 경위부터 들어 보았다.

`제가 하나님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9 · 28 수복 다음 해부터였지요. 저는 그때 하나님을 모르는 술탁보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부르시더니 오늘은 공장 일을 일찍 마치고 어디 놀러 가자고 하시더군요. 그날 저녁 하나님이 앞장서시고 종업원 25명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 나갔습니다. 어디로 가시는가 했더니 충무로 어느 음식점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언제 예비하셨는지 한 방 가득히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어요. 식탁에 둘러앉으니까 기도를 하시더니, ‘조 선생, 왜 얼굴을 찡그리고 있나? 술이 없어 그러지?’하시며 밑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시며, ‘오늘 술 많이 먹고 앞으로는 술을 끊고 믿기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합시다.’하시더군요.

그 다음 날 하나님께서 내가 선물을 사다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흰 종이에 큼직하게 싼 것을 가져오시더니 이것을 줄 테니 혼자 갖던지 나누어 갖던지 마음대로 하라 하시며 들어가셨습니다.
나는 풀어보니까 성경과 찬송책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웃으시며 나오시더니 그 선물이 지금은 좋은 것 같지 않지만 앞으로 좋을 때가 있을 것이라 하시면서 찬송가 219장과 313장을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선 하시는 말씀이 주일날은 집에서 식사하지 말고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종업원들은 주일과 수요일을 우리 생일이라고 좋아했습니다. 예배 보고, 식사하고, 또 어느 때는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려고 성화(聖畵)도 보여 주시고, 저녁예배 보고는 다시 식사 대접해서 차비까지 주어서 보내시는 이 일을 한 번도 빠짐없이 3년간을 계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낮 예배 보고 남산 푸른 잔디밭으로 올라가 찬송가를 잘 부르는 사람에게 상으로 사과를 주시고 즐긴 일도 많았지요.
하루는 제가 너무 감사하고 민망하여 ‘이렇게 하지 아니 해도 이제 교회 잘 다니겠습니다.’ 했더니 ‘조 선생, 이것이 훗날 생각 날 때가 있으리라.’하시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미련한 것들을 이끌어 생명을 알게 하시려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 후에 한번은 저도 한번 독립해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사장님, 저도 이제 제 힘으로 한번 일해 보겠습니다.’ 했더니 저를 이윽히 보시면서 ‘조 선생, 앞으로 내 자녀와 조 선생 자녀가 꼭 같은 옷을 입고, 꼭 같은 집에 살며 꼭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될 때가 올 터인데 어디로 가려나.’ 하시겠지요. 그래서 그 사랑에 못 이겨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게 된 조남준 권사는 원효로 전도관에서 안내를 맡게 되었다. 그가 들려주는 당시의 소방차 출동 일화 한 가지.

`당시 구 제단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일 낮 예배를 인도하고 계시던 어느날이었는데 저는 사람들 안내를 하느라 강대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문 옆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방차 소리와 함께 소방대원들이 들이 닥치는 것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하고 물으니 용산소방서에서 왔다면서 ‘여기에 불이 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거에요. 하지만 불이 나기는커녕 사람들이 제단 안에 빽빽이 들어 앉고 건물 밖 미나리꽝 건너 둑에까지 앉아서 예배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소방서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셔서 ‘소방서에서 불이 났다고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여기에 내린 불기둥을 보고 왔을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원효로 전도관 건물 위에 성신의 불기둥이 임하신 것을 보고  불이 났다고 소방차가 출동하였던 것입니다.
좁은 공간에 워낙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사람들 신발을 따로 수납할 공간이 없어서 제단에 들어갈 때면 제가 문 앞에서 신발주머니를 나누어줘서 각자 신발을 들고 들어갈 수 있게 했지요. 한 번은 어떤 장교가 왔길래 당시 목사, 장로들이 앉아서 예배를 보던 단상 위로 안내해 드리고 군화는 제가 따로 챙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보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몇 번씩이나 자기를 뒤 돌아  보시더라는 거예요.
왠지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내가 군화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니 포기를 하고 끝까지 예배를 보게 되었고 그 날부터 전도관에 나오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 분이 바로 석세조 교장인데 지금도 석교장을 만나면 당시 제가  군화를 가지고 있었던 덕으로 복을 받게 되었다고 농담을 합니다.

또 이 이야기는 구제단에 나왔던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는 건데, 한겨울 몹시 추울 때 제단 창문에 얼음을 녹이셔서 성신의 역사를 증거하신 일이 있어요.
예배를 보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지금 몹시 추운데 햇빛이 안비치는 쪽에서부터 창문의 얼음이 녹으면서 따뜻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다음 찬송을 한참 부르는데 정말로 햇빛이 없는 창문의 얼음부터 녹기 시작하면서 제단 안이 훈훈해지는 거예요. 얼음이 녹더라도 햇빛이 비치는 창문부터 녹아야할 터인데도 햇빛이 없는 창문부터 녹는다는 것은  성신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죠.

또 예배를 보고 있으면 향취는 물론이고 뒤쪽에서부터 안개 같은 것이 앞쪽으로 지나가는 것이 느껴져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면 아무 것도 없죠.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이슬성신의 역사였죠.
그리고 낮에 철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라도 향취가 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오셨는지 금방 알 수 있었어요. 향취가 나서 나가보면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도착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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