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민족끼리’의 환상
지난번 부산에서 있었던 장관급회담에 처음에는 북한이 참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돌았었다. 온 세계와 우리 정부의 미사일 발사 반대 ‘압력’을 일거에 무시해 버렸으니 무슨 염치로 쌀과 비료를 달라고 올 수가 있겠느냐고 ‘순진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도대체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가 하는 것이 자못 궁금했다. 미사일은 군이 한 일이니 자기들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뗄 것인가, 미사일은 자위를 위한 군사훈련이라고 자기네 입장을 선전할 것인가, 무슨 논리로 쌀과 비료를 달라고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자못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우리의 모든 예상을 깨고도 남는 주장을 펼쳐 ‘역시나’하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의 선군(先軍)정치로 남한을 지켜주고 있으므로 남한의 대중이 그 덕을 보고 있다.”는 황당한 이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국가보안법 철폐, 김일성묘지 참배 허용, 한미 군사연습 폐지 등을 주장한 후 “쌀 50만t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들은 또 “남한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장군님’의 접견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누가 당신들에게 우리를 지켜 달라고 했나?”라는 우리 측 대표의 너무도 애처로운(?) 항의를 들은 후, 쌀과 비료를 얻지 못하자 “남측은 민족 앞에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협박을 남기고 화를 내며 돌아가 버렸다.
우리는 수백기의 스커드 미사일로 남쪽을 조준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 남쪽을 지켜준다고 강변하는 북한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다시 한번 지켜봐야 했다. 그들의 당당한 태도는 전략적으로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남쪽을 북의 속주(屬州) 쯤으로 생각하고, 남측 사람들을 모두 북한 체제를 지지하는 좌파라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정부가 퍼주기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북을 도왔고, 제재만이 북의 ‘잘못된 행동’을 방지할 수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 정책에 명확히 반대 해 온 것은 대화와 포용만이 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한의 위폐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증거가 없는 일이라고 감쌌고 대포동 미사일이 곧 발사된다고 난리가 나도 그것은 인공위성일지도 모른다고 그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일본이 자기 나라를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에 위협을 느껴 선제공격론을 흘리자마자 북한보다 더욱 즉각적이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일본을 성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부의 북한에 대한 끝없는 선의(善意)는 이번 미사일 사태로 아무 효능이 없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변하리라고 기대했던 북한이 전연 변화 하지 않고, ‘같은 민족끼리’의 구호도 자기네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안보에 불안감을 느끼는 대다수 국민들에 의해 북한에 대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이 변하여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국민은 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