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표지판이 향하는 곳

위클리포커스
발행일 발행호수 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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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곳곳에서 순교 성지를 알리는 갈색 표지판

우리나라 도로에서 ‘순교 성지’라고 새긴 갈색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갈색 표지판은 관광지나 명소를 표시하는 것인데 특정 종교에서는 교인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순교’로 명명하고 그 장소를 관광 명소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톨릭은 그 성립부터 순교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서기 300년대,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재위 서기 361~363)가 유대교 신전을 수리하게 하자 가톨릭 신도 세 명이 밤중에 유대교 신전에 들어가 신상들을 부수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예루살렘 주재 로마 총독이 신상 파괴범들에게 회개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어떤 고통이라도 기꺼이 겪겠다.”고 큰소리치다 사형에 처해졌다. 폭력과 범죄를 저질러 처형당한 자들이지만 가톨릭에서는 로마 제국의 압제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로 추앙하고 있다.

가톨릭을 철저히 탄압했던 조선 시대에도 이런 사건이 있었다. 1868년 독일인 E.J.오페르트의 도굴 미수 사건이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오페르트는 “조선의 가톨릭 탄압에 보복한다.”면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기 위해 조선에 침범했다. 이때 그를 안내한 자들이 프랑스 신부 페롱과 조선인 가톨릭 신도들이었다. 남연군의 묘광이 견고하여 결국 미수에 그치기는 했으나, 가공할 범죄를 공모했다는 점에서 다른 순교 행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1901년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사건 또한 이러한 패턴을 보여 준다. 당시 제주도에서 가톨릭 신도들은 도민들이 신성시해 온 신당을 부수고 도민들의 금품을 갈취했을 뿐 아니라 성범죄까지 저질렀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마을 유지들이 나섰으나 가톨릭 신도들은 마을 유지와 그 친척까지 천주교 성당에 잡아 가두고 고문을 하다 죽였을 뿐 아니라 항의하는 민중을 향해 총을 발사해 죽이기도 했다.

분노한 민중들은 황사평이라 불리는 넓은 벌판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결국 가톨릭 신도들을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처형이었으나 그들이 믿던 종교에서는 이 죽음을 순교라 추앙하고 있다.

지금 제주도의 황사평은 ‘천주교 성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의 ‘순교자 묘역’에는 처형당한 가톨릭 신도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이야말로 갈색 표지판이 알려주는 성지와 순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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