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은 형언할 수 없어

발행일 발행호수 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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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를 한없이 부어 주시며 삶의 위로가 되어 주시고, 육신의 병을 고쳐 주시며 몸소 감람나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신앙의 터전을 만들어 은혜로 길러주시며 감람나무 가지들이 죄에 물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셨습니다.

가지들이 오직 죄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셨던 하나님.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계신 분들의 체험기를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을 떠올려 봅니다.

신앙촌 풍경

■ 안수하실 때 땀으로 젖으신 하나님
“1초 1초 하나님을 섬기세요”

1955년도부터 남산 집회, 여의도 집회, 한강 집회, 서울운동장 집회, 군인교회 집회 등등 전국적으로 천막을 치고 다니며 하나님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집회 때마다 각종 기사이적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며 인간의 과학으로나 지식으론 치료 불가능한 불치병도 나았습니다. 예를 들면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고, 곱사등이의 등이 펴지고, 벙어리가 입이 열려 말을 하고, 소경이 눈을 뜨는 등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집회가 어느 곳에서 시작된다고 하면 앞다투어 달려가는 인파로 언제나 집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습니다.

당시 박 장로님은 불을 뿜는다 해서 ‘불의 사자’라고 불렸는데, 입에서 불도 나오고, ‘쉭쉭’ 하시면 안개 같은 것도 나오곤 했습니다. 이것이 불의 은혜요, 또 이슬은혜였던 것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 할 것 없이 박 장로님 인도하시는 집회라면 앞자리 다툼으로 치열했고 열광적이었습니다.

천막을 치고 보는 집회였으므로, 비가 많이 내리는 때는 앉은 자리가 빗물로 물구덩이가 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면 수많은 사람을 안수하시는 하나님도 빗물에 종아리까지 빠지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몸은 전체 땀으로 젖어 도저히 뵙고만 있을 수가 없어 사이다 한 병을 사 들고 안수하시는 데까지 헤치고 가서 드렸더니, 잠깐 안수를 멈추시고 드셨습니다. 그때 제심정으로는 정말 이제는 그만하시라고 애원하고픈 심정뿐이었습니다.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 눈물짓는 모습을 보며 저는 마음속으로 ‘무슨 죄를 저리들 많이 지었기에 저럴까?’ 했었는데, 저 역시 하나님께 안수를 받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잠시 일어섰다간 자리를 뺏길까 봐 화장실도 못 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은혜의 창파 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불의 사자, 동방의 1인, 심판주, 육신을 입고 오신 감람나무 하나님이심을 점차적으로 저희들에게 조목조목 발표하시며 하늘의 공부를 시키신 것입니다. 무지몽매한 인생들은 그저 은혜받고 오묘한 말씀에 취하여 하나님의 고초, 고통은 아랑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면 너무나 하나님이 애처로워 엉엉 소리 내어 울게 되는 날이 많습니다. 미소 띠신 따뜻한 모습이 너무도 그립고 그리워 가슴에 사무치게 안타깝습니다.

초창기때부터 “긴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1초 1초 끊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세요. 숨 쉬듯 쉼 없이 섬기세요.”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강명수 승사 (신앙체험기 1집 수록)

■ “마음 문 여세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미소 잊지 못해

인천 전도관이 숭의동 자리에 새롭게 지어져 신축 예배를 드리게 된 때였습니다. 그날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마음 문 여세요.”하고 말씀하신 후 저희가 앉아있는 곳을 향해 ‘쉭’하고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쉭’하고 기운을 부시면서 손을 뻗으실 때, 하나님의 입과 손가락 끝에서 뽀얀 것이 퍼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어머, 손에서 뽀얀 게 나온다.”하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연기가 퍼져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하얀 구름이 퍼지는 것 같은데, 그것이 점점 예배실 전체에 퍼지면서 사람들을 덮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뽀얀 것이 내려서 사람의 얼굴이 분간도 안 될 정도였으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이 보이는 사람도 있고 또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배 마치기 전 할렐루야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단상에서 내려오시는데, 예배실 안이 안개가 덮힌 듯 이슬은혜로 뽀얗게 되니 하나님 모습도 보이지 않고 1m 앞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가시는 모습을 뵈려고 사람들이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안내하는 학생들은 나가서 질서 정리를 하였습니다. 저도 하나님 가시는 길을 사람들이 막지 못하도록 안내하였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면서 저희들을 향해 웃으시는 그 모습은 정말 온 세상의 어떤 미소를 다 모아도 그 아름다움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신 후 아쉬운 마음으로 예배실에 다시 들어오니 제단 안은 그때까지도 이슬성신 은혜가 가득하였습니다.

노정심 권사 (신앙체험기 4집 수록)

■ 부러진 목뼈를 안찰로 고쳐 주신
하나님 “과연 그 마음이 귀한거야”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환자들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장작을 가지러 가는데,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 힘이 드니까 한꺼번에 많은 양을 이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미련하게도 장정들 네 명이 들어서 제 머리에 이어 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양을 머리에 이고 걷는데, 세 발짝을 떼자마자 그 장작 무게에 견디다 못해 목뼈가 딱 소리를 내며 부러진 것이었습니다. 그 몸으로 간신히 식당까지 오긴 하였지만 너무나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한 채 30분 동안 서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집사님들은 깜짝 놀라면서 큰일 났다고 걱정하였습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게 되면서 목을 더듬어 만져 보니 한쪽에 뼈가 부러져서 툭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얼마나 쑤시고 아픈지 못 견딜 정도였는데, 생명물을 수건에 적셔서 목에 감으면 그 순간은 통증이 없어지고 시원해졌습니다.

그렇게 이틀 밤을 지낸 날 새벽, 따르릉 하고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 보니, 하나님께서 전화 하셔서 “빨리 오라우. 많이 아프지? 빨리 오라우.”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쳤다고 아무도 말씀드린 사람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는 치료할 생각도 없이 미련하게 있는 저를 안찰해 주시려고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가니 뼈가 튀어나온 한쪽 목을 안찰해 주셨는데, 얼마나 아픈지 목이 부스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쳐 주실 때는 통증이 조금 덜 하고, 세 번째 쳐 주실 때도 점점 아픈 느낌이 없어졌습니다. 세 번을 쳐 주시고 목을 살짝 안찰하실 때는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안찰받기 전까지만 해도 통증이 심하여 목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던 제가, 안찰받은 후 목을 이리저리 끄덕거려 보아도 통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튀어나왔던 뼈도 감쪽같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계신 그 자리에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리고 그냥 눈물만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지만 다른 사람보다 뼈가 너무 약해. 그러니 절대 무거운 일은 하지 마. 어쩌자고 그렇게 큰 것을 이고 다녀.”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나는 약하지 않은데…….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들어다 저 산으로 옮긴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른 막대기도 들어 쓰시듯이 제가 아무리 약해도 저를 움직여 주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모든 것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과연, 그 마음이 귀한 거야.” 하시며 제 생각을 다 들으신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생각 하나하나를 다 읽으시고, 또 저희가 하는 행동을 모두 보시며 어렵고 힘든 일에 처해 있을 때 반드시 큰 용기와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김영자 승사 (신앙체험기 3집 수록)

■ 다친 부위에 손을 대고 기도해 주셔
“끝까지 참고 이겨 그 나라에 같이 가자”

저는 신앙생활을 더욱 정진하기 위하여 1957년 11월 7일에 소사신앙촌 건설대로 입공하였습니다. 전국에서 300여 명이 모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안찰부터 해 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건설대 A반 반장이 되었으며, 처음에는 집터와 공장 부지 닦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소사역에서 싣고 온 산판 나무를 차에서 내리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 일을 하는데 저와 같이 일하던 사람이 실수로 원목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큰 나무가 제 오른쪽 광대뼈를 치고 땅에 떨어졌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피가 쏟아지는데, 언제 오셨는지 하나님께서 다친 부분에 손을 대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금방 지혈이 되고 아프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손으로 막 비비시며 축복하신 솜을 다친 부분에 붙여 주시며 “자고 나면 괜찮고 흉터도 안 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그 이튿날 부르셔서 갔더니 인절미를 조청에 묻혀서 저의 입에 넣어 주셨고, 이번에는 솜 위에다 축복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랑에 감격하고 고마워 눈물을 흘리니 “끝까지 참고 이겨 그 나라에 같이 가자!”며 인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반창고를 떼어 보니 정말로 흉터 없이 깨끗이 나아 있었습니다.

서기천 집사 (신앙체험기 1집 수록)

1960년대 덕소신앙촌

■ 은혜 주시며 성결케 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
“나 하나님은 아낌없이 주었어”

하나님께서는 덕소신앙촌 건설을 시작하셨고, 얼마 후 저도 덕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푸른 한강 줄기를 따라 들어선 덕소신앙촌은 세련된 양옥 주택과 힘차게 가동되는 공장들이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서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름답게 지어진 신앙촌의 어느 한 곳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덕소신앙촌의 대제단을 건축할 당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서 자갈 모으는 작업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 현장에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진두지휘하시고 돌아갈 때는 직접 배를 운전하셔서 강을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강 위에서 바라보는 덕소신앙촌의 풍경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노을이 번지는 강 위에서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땅 있도다” 하는 찬송을 부르자 하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찬송 잘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소풍을 나온 것처럼 마냥 기쁘기만 했던 그때, 하나님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러던 1966년경 어느 날, 하나님께서 덕소신앙촌 대제단에서 안찰 하실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제가 안찰을 받을 때
“나 하나님은 아낌없이 주었어!”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알지 못했지만 1981년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시기 십수 년 전에 이미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구원을 주시고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성결하게 되기를 원하셨고, 은혜받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앙촌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 귀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형언할 수 없이 안타까워하셨던 모습은 제가 숨 쉬고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 하나님은 아낌없이 주었어!” 구원을 주시고자 그토록 안타까워하셨던 하나님, 그 심정의 만분의 일이라도 깨달을 듯하니 뼈가 저리게 아파 옵니다.

안순식 승사 (신앙체험기 9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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