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교회 – 시골이지만 하나님 발길이 닿은 곳이라 소중한 영덕
시골이지만 하나님 발길이 닿은 곳이라 소중한 영덕영덕은 유명한 대게의 고장이다.
게 크기가 커서 대게가 아니라 그 다리의 모양새가 대나무 같다고 하여 대게다.
영덕 사람들 말로는 제주도 다음으로 바람이 많다고 하는데
신 자원으로 각광받는 풍력발전소도 바닷가에 있다.
뿐만 아니라 영덕엔 천부교 역사 초창기 일찌감치 전도관이 개관을 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영덕을 서울에서 찾아가는 길은 멀다.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안동까지 3시간을 간 후 그 곳에서 내릴 손님 내리고 일부 손님을 더 태워 영덕으로 향한다. 먼 길 다행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연두빛 이파리들이 싱그럽다. 깊은 산골로 이어지는 길은 대관령 고개길을 방불하는 굽이굽이 고개길이다. 1시간 30분 가량을 더 가서 영덕이다.
이 시골까지 찾아와 반갑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김정임 여성회 관장. 2006년 정년퇴임 후 2년 만인 2008년 다시 현직에 복귀해 영덕교회를 개축하며 3년째 시무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인데 오랫동안 공석으로 있다보니 교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이 시골 영덕은 1957년 60평 교회를 신축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린 곳이다.
● 여성회 김 회장
현재 영덕교회 여성회 관장은 김정임 관장이다. 여성회 회장은 김숙자 권사이다. 교회의 알뜰한 살림을 사는 총무이자 영덕의 오랜 터줏대감은 김엄정 승사이다. 학생회는 김현수 학생관장이다. 대한민국에 성씨로 김씨가 많다지만 모두 김씨다.
김숙자 회장은 그 옛날 김엄정 승사와 쌍둥이 동생인 김차정 권사(소사교회)의 전도로 전도받아, 전도자인 김엄정 승사와 한 동네인 후포에 살고 있다.
김 회장은 “이런 인연도 쉽지 않죠. 그때 전도 받은 곳에서 아직까지 같이 살고 있으니, 물론 중간에 다른 도시에 가서 살기도 했지만요” 깊은 인연을 말했다.
김엄정 승사는 “1957년 서울의 이만제단 낙성집회와 함께 있었던 전도관 체육대회 때 영덕에서 농구 한 팀을 만들어서 올라갔다”며 화려했던 영덕교회 초창기 활동을 말한다. 체육대회 때의 기억이 지금도 큰 버팀목이 된다는 김숙자 회장은 “함께 갔던 교회 언니 오빠들이 밖을 보라고 해서 봤더니 운동장 밖에는 비가 오는데, 운동장에는 비가 안 왔어요. 나중에 운동장에 도착한 사람들도 밖에는 비가 오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김 회장은 감회에 젖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의 은혜에 대해 말했다.
1957년 처음 짓고 하나님 모시고 개관집회를 가진 곳
2008년 개축하고 재개관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영덕교회
하나님 함께 하시는 은혜를 알기에 뜨거운 마음 가지고
‘런’을 통해 신앙촌을 알리고 천부교회를 소개해
● 꽃집의 김 회장
영덕교회에 또 한 명의 김 회장이 있다. 영덕교회 개축과 함께 교회에 오기 시작한 영덕 토박이 김양자 회장이다. 워낙 많은 사회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단체에서 회장직을 맡아 한 김양자씨는 최근까지 영덕 전의경 어머니회 회장을 맡아 아는 사람 많고, 발이 넓다.
영덕 출신 김미숙 관장(전농교회)의 고향 후배다. 어렸을 적엔 그곳에 전도관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는데, 2008년 개축과 함께 김미숙 관장의 적극적인 권유로 교회에 오고 있다.
“미숙이 언니 덕분에 이제야 하나님을 알게 된 복을 누린다”고 말하는 김 회장은 교회 바로 앞에서 금호타이어를 운영하는 올케를 교회로 인도하고 있다.
올케인 김명순씨는 주일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관장님 계세요?’하며 사택으로 찾아왔다. 혼자 계실 줄 알고 왔다는데, “오늘 설교가 속 시원하고, 감명 깊었다”는 말을 하려고 온 것이다.
강구 출신이라는 김명순씨는 이곳에 전도관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담장 밖으로 우렁차게 찬송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 강구의 안 여사
영덕으로 오는 요구르트 ‘런’의 90%는 강구에서 소비가 된다. 교회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강구는 항구로 영덕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 높다.
그곳에서 요구르트 ‘런’ 판매에 큰 도움을 주는 안정순 여사. “전부터 신앙촌 간장이며 시럽 메리야스 등을 썼는데, 관장님을 통해 ‘런’을 먹게 됐어요. 신앙촌에서 나온거니까 믿고 먹었죠.”
안 여사는 대상포진이 아닌 단순포진으로 고생했는데, ‘런’을 먹은 후 바이러스가 맥을 못 추더라며 이제는 여행을 가도 꼭 ‘런’을 챙겨간다고 했다.
“우유도 방부제가 들어간다고 해서 안 먹는데, 좋은 거는 찾아 먹어야죠. 먹고 좋으니 가까이 지내는 분들에게 소개해요. 주위 사람들도 먹고 좋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니까 이제는 자원해서 먹겠다는 사람도 많아요. 제가 80년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새마을 운동 영덕군 회장할 때, 경북의 31개 시군 가운데 가장 낙후되어 29, 30위 하던 곳이 영덕인데 이런 곳에 이렇게 좋은 식품이 들어온 것은 다 천부교회 덕분이고, 관장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고맙게 생각하고 먹고 있습니다.”
안 여사와 비슷한 알레르기 증상으로 고생하던 남군자씨도 런을 먹고 깨끗해졌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남씨는 안 여사의 소개를 듣고 “약으로도 안 됐는데 요구르트 먹어서 되겠냐?며 반신반의하며 ‘런’을 먹었는데 지금은 깨끗이 나았다”고 했다. “신앙촌에 가서 공장을 견학하고 나니 더 믿음이 간다”며 ‘런’은 약이 아니라 식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