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같은 은혜를 받고, 향기를 맡아 본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여들고, 모여들어” 은혜의 기쁨 신앙체험기➄

발행일 발행호수 2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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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신앙촌 오만제단 신축 부지에서 열린, 연인원 70만 명의 대 군중이 참석한 노구산집회.(1958.6.30.~7.5.) 이날을 기록한 신앙신보 장근수(張根洙) 취재기자는 “참석자들의 찬송은 드높았고, 얼굴엔 흐뭇한 은혜의 표정이 깊었다.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 있었고 우렁찼다. 새벽예배가 오전 10시, 11시까지 계속되어도 지루함보다는 즐거움이, 그리고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다. 정말 체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슬성신의 은혜이다. 나는 취재기자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은혜에 젖어갔다”라고 기록했다.

기성교회에서 핍박을 하기 때문에
은혜를 확실히 아는 교인들도 나를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몇 명씩 모여서 구슬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정을 알고 비로소 전도관이라는 것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80명으로 시작한 전도관은
1년 9개월 만에 70만의 수가 거의 다 차게 되었다.
이슬 같은 은혜를 받고 향기를 맡아 본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여들고, 모여들어 감람나무의 가지가 된 것이다.
『하나님 말씀』 제2부 2장 36절, 37절

원효로 구제단 앞의 전찻길.(촬영 년도: 1955년) 천부교의 첫 번째 교회로 서울시 원효로 3가 52번지에 위치했다.

◇80명으로 시작한 원효로 전도관

김도삼 승사/ 기장신앙촌

1955년 남산 집회 이후, 한강 모래사장 집회까지 참석한 저는 ‘아! 정말 놀라운 성신의 역사로구나.’ 하며 감격에 벅차서 돌아오는데, 어떤 분이 “2, 3일 후 원효로에 있는 박태선 장로님의 집 기도실에서 예배드린다”는 소릴 들었다고 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사실로 인해 그곳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몇십 명이 먼저 와서 기도하며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집이 멀어서 철야 기도를 하게 됐는데, 다음 날 아침 하나님께서 “모인 수가 몇 명인지 세 보라” 하셔서 세어 보니 80명이었습니다.

“오늘부터 하나님 역사를 시작하겠다. 앞으로 제단 짓고 전국적으로 전도하며 여러 가지를 시작하니 너희는 모두 따르라.”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전도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박광자 권사/성남교회

1955년 12월 제 나이 열여섯 살 때였습니다. 친구가 알려준 박 장로님 소식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몇 달 전 박태선 장로님의 남산집회에 참석한 후로 어디서 집회하시는지 늘 궁금했는데 그분 교회가 있다는 말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가 알려준 대로 원효로를 찾아가 보니 기차처럼 기다랗게 지어진 예배실이 있었고 사람이 차고 넘쳤습니다. 제가 간 날은 원효로 전도관의 ‘개관식’ 날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박 장로님 댁으로 몰려들자 마당에 예배실을 마련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배시간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을 부를 때 가슴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원효로 전도관에 다니며 저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차고 넘쳐 무엇을 가진들 이렇게 좋을까 싶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원효로 전도관에 사람이 몰려오면서 예배실 뒤쪽을 늘리고 2층도 올렸지만 주변 도로까지 사람이 차고 넘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만 명이 들어가는 큰 교회를 짓는다고 하셨고 1956년 여름부터 마포 산언덕에 터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교인이 거기 가서 공사를 도왔는데 찬송하며 일하는 시간이 어찌나 즐거운지 하루라도 빠지면 마음이 답답하고 클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의 매일 오셔서 안수해 주셨고 안수를 받고 나면 피곤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친구들과 ‘무슨 일을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며 일을 찾아서 하게 됐습니다.

이듬해 이만제단이 완공되고 여름방학에는 친구와 함께 서울 이문동으로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생명물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은혜가 담긴 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아기가 피똥을 싸고 많이 아픈데 생명물을 줄 수 있냐고 간곡히 부탁하셔서 생명물을 컵에 담아 드리며 수저로 조금씩 떠서 아기 입에 넣어 주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주머니가 달려와서는 아기가 깨끗이 나았다며 무척 기뻐하셨고, 아침상을 푸짐하게 차려 주셔서 맛있게 먹고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이만제단 언덕길에서 예배를 드리러 가시는 어른들을 부축하며 도와드리는데 “학생! 여기 있네!” 하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아이 업은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못 알아보고 누구신지 물었더니 “학생이 전도하러 왔었잖아? 그때 너무 고마워서 전도관 다니려고 물어물어 찾아왔어.” 하셨습니다. 활짝 웃는 아주머니를 보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전도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때 알게 됐습니다.

◇기성교회의 핍박에도 은혜를 못 잊어

신복년 승사/ 동래교회

제가 다니던 성결교회의 목사는 전도관이 이단이라며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1955년 부산 공설운동장집회에 갔을 때 받았던 은혜를 잊지 못한 채 지내던 중 1958년 어느 날, 전에 같은 성결교회 다니다가 이제는 전도관에 다니시는 어느 집사님이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 대집회가 열린다며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반가워서 바로 가겠다고 했지만 교회에서 알게 될까 봐 몰래 그 집사님을 따라갔습니다. 집회 장소에 가 보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향기로운 냄새가 밤낮으로 계속 났고,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한 후 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부산 전포동에 있는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시어머니, 남편과 아이들도 전도해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을 나눠 주고 싶어 찬송을 부르며 전도하러 다녀

1958년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 집회가 열린다고 하여 참석을 하였습니다. 집회 기간 중 어느 날 새벽예배 때 하나님께서 설교 말씀을 하시는 중에, 말씀하실 때마다 하나님 입에서부터 하얀 구름 송이 같은 것이 폭폭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여 옆에 계시는 분께 ‘저것 좀 보세요. 말씀하실 때마다 저렇게 구름 덩이 같은 것이 나오는데, 보이세요?’ 하니, 그 사람은 그것이 안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왜 나한테만 보일까 궁금해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설교 말씀을 끝마치실 때까지 구름 같은 것이 계속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여러 교인들로부터 각자 은혜받은 얘기들을 듣게 되면서, 그때 제가 보았던 것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슬성신 은혜를 보여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마음속에서 기쁨이 넘쳐나는데 그 기쁜 마음은 세상 무엇에다가도 비길 데가 없었습니다. 기쁜 마음을 나눠 주고 싶고 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여겨져, 몇몇 교인들과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찬송을 부르며 노방전도를 다녔습니다.

◇은혜 체험을 하고 전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초등학교 5학년 때, 2007년 10월 천부교 체육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신앙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1월 추수감사절 예배에도 참석했는데, 하나님께서 찬송하시는 모습을 비디오로 보며 찬송을 부르는데, 하나님 손에 이슬방울이 맺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보고 있는데, 그다음에 비디오로 하나님 설교하시는 모습을 뵐 때는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단상에 탁~ 놓으실 때마다 불덩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은혜 체험을 하고 전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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