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순신’ 역사 속 발자취를 따라가 보다
<가좌교회 어린이 기자단>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 관람기
■ 동아시아의 거대한 전쟁, 임진왜란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은 일본과 조선 두 나라 만의 싸움이 아니었어요. 대륙을 꿈꾸던 일본과 이를 막으려던 명나라, 그리고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싸운 조선까지, 동아시아 전체가 맞붙은 큰 전쟁이었답니다.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은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단 20일 만에 한양(서울)이 점령당했고, 선조 임금님은 의주까지 피란을 떠나야 했어요.
하지만 위기의 조선을 버티게 한 힘은 바로 바다에 있었어요. 이순신 장군은 옥포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 뒤, 사천, 당포, 한산도로 이어지는 해전에서도 일본 수군을 제압했어요. 특히 한산도 대첩은 학익진 전술로 일본의 보급로를 막아 전쟁의 흐름을 바꾼 전략적 승리였답니다.
■ 명량해전: 철저한 계산의 승리
1597년, 이순신 장군이 모함으로 파직되었다가 복귀했을 때 남은 배는 12척뿐이었어요. 이후 배를 정비한 뒤, 단 13척으로 수백 척의 적군과 맞서 싸운 전투가 바로 명량해전이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기적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철저한 계산이 숨어 있었답니다.
승리의 비밀은 바로 지형에 있었어요.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에 있는 ‘명량’은 바다가 울부짖는 것처럼 격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우리말로는 ‘울돌목’이라고 불러요.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의 좁은 지형과 빠른 물살을 활용해, 적들이 한꺼번에 공격하지 못하도록 길목을 막으면서 승리를 이끌었어요.
■ 마지막까지 다한 책임감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사하셨어요. 전쟁은 막바지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지휘를 멈추지 않았답니다. 『난중일기』에는 승리의 기쁨보다 병사와 백성에 대한 걱정, 전염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더 자주 나와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책임을 다한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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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도로 전도의 길 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