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은 종교의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원로와의 대담] 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한상복 박사(1)
발행일 발행호수 2007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한상복 교수

종교의 과제는 인간의 불안을 극복하는 심리적 과제와 사회의 일체감을 이루는 사회적 과제에 있다고 말하는 한상복 박사.

2001년도 저물어 가는 12월.
인류학자로서의 ‘답사와 관찰’을 위해 지난 11월 천부교 기장 신앙촌을 방문하고 온 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내산(奈山) 한상복(韓相福) 박사를 만났다. 인류의 이상향을 학문의 과제로 삼는 인류학자가 본 신앙촌은 과연 어떠했으며 인류의 오늘과 내일은 어떠한 과제를 안고 있는가. 한 박사와의 대담을 신년 특집으로 2회에 나누어 싣는다. <대담 李鍾培 본사 사장>

한 박사는 일찍부터 신앙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 천부교와 신앙촌은 곧잘 그의 인류학 강의의 테마가 되곤 했다. 처음에 어떤 동기로 그러한 관심을 갖게 됐느냐고 물었다.

“옛날부터 집사람이 시온간장(생명물 간장)을 애용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맛이 있는지 다른 것은 먹을 수가 없더라구요. 꼭 주문을 해서 먹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시온두부(생명물 두부)를 즐겨 먹는데 이게 또 그렇게 맛이 기가 막혀요. 내가 특별히 두부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꼭 동네 수퍼에 가서 생명물 두부를 사다 먹습니다.”

“시온 제품이 좋아서 신앙촌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신 건가요?”

“그것도 원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또 큰댁 할아버지 일가가 천부교 교인이었으므로 자연 관심을 가지게 됐구요. 뿐만 아니라 저의 경기 고교시절 죽마고우였던 김동훈 군(천부교 워싱톤 교회 관장)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 똑똑하던 친구가 어느 날 천부교의 독실한 신자가 돼 있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지요. 천부교에 무엇이 있기는 있구나,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곳이 아니구나 하고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교시절 절친하던 친구가 넷이 있었는데(김동훈 관장, 신경정신과의원 오승환 박사, 조화연 전 감정원 이사) 우리는 졸업후 각기 자기의 길을 걸어왔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한 형제같이 만나며 변치 않는 우정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확신을 가진 그 종교는 어떠한 것인가, 세상이 떠드는 신앙촌은 어떤 곳인가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났지요. 아무튼 그때부터 천부교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또 김춘자 라는 소사신앙촌에 사는 학생이 1964년 우리 학과에 입학하여 제자가 되는 등 천부교와의 인연은 이래저래 많았습니다.”

신앙촌과 천부교에 대한 기성교회의 부정적 소문에 초연할 수 없었지만 정직하고 품질 좋은 신앙촌의 여러 제품을 가까이 접하면서,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의 변화된 생활을 보면서 세간의 소문과 평판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그럴수록 학문적 호기심은 더해져 이제는 인류학자로서 신앙촌을 학문적 연구의 모델로 삼고 싶다는 한 박사.

그는 지난 11월 기장 신앙촌으로 천부교 추수감사절 예배에 참석하여 신앙촌을 직접 답사하고 실증적으로 ‘관찰’을 할 기회를 가졌다.

고교시절 친구가 천부교에 입교한 것 보고
신앙촌 운동에 각별한 관심 가지기 시작해
시온의 ‘젊은 사관생도’는 인류학적 주역될 만

“신앙촌을 본 소감은 어떠했습니까.”

과학을 하는 학자이므로 ‘가치(價値)개념’은 배제하고서라도 그가 본 신앙촌은 인류학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갖춘 모델이었다고 한 박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의 불안과 고통을 극복하는 심리적 과제, 사회 통합과 일체감을 이루는 사회적 과제에 있다고 한다면 신앙촌이야말로 이러한 종교의 모든 과제가 가장 완벽하게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룬 곳이라고 생각되며 거기에 구성원의 경제적 과제까지 포함되니 더 말할것이 없겠습니다.

전원도시로서 식품과 의류공장 및 자동차와 건설등 제조업의 기초 부품 생산시설을 두루 갖추었고 자연 친화적으로 아름답게 가꾸어진 생활 환경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주민들의 여유로운 모습과 그곳에 충만한 평화로움이 인상적이었고 입사생들의 일하면서 배우는 자신 만만한 얼굴에서 이 공동체의 미래를 볼 수 있었지요.

40여년 동안 세계를 누비며 여러 단체와 종교를 보아 왔지만 신앙촌과 같은 곳은 없었습니다.

특히 주주(株主)가 신자들로 구성된 우리사주 형태의 독특한 신앙촌의 회사형태와 이러한 회사가 거의 전 사원에게 장학제도의 혜택을 주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 대학원까지 공부하고 우수 인재는 외국유학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 입사생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회를 관람하였는데 아마추어 사원들이 회사의 지원에 힘입어 거의 프로 수준의 음악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특히 젊은 입사생들 이야말로 ‘신앙촌 사관생도’이며 인류학이 지향하는 미래의 주역은 이런 사람들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 박사는 인류학자로서의 ‘관찰’의 일환으로 천부교인들과 함께 추수감사 예배도 드렸는데 그의 관찰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고 신심(信心)도 큰 것 같다’는 것과 ‘모든 사람들의 예배광경이 매우 진지하였다’고 하였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