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와의 대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시온의 규모와 비젼을 보니 놀라워요`
발행일 발행호수 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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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961년 문공부를 시작으로한 20년 간의 공직 생활에서 굵직굵직한 일들을 기획하고 추진해냈다. 예술의 전당 건립, 남양주 종합촬영소 건립, 중앙청 박물관 조성, 독립기념관 기획 등이 그것이다.
1988년에는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했고 1992년에는 예술의 전당 사장에 취임했다. 1992년에 문화부 차관을 지냈으며 1993년에는 공연윤리위원회위원장을 역임했다.
1937년 강원도 홍천 출생       경기 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980년 문공부 기획관리실장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1992년 예술의 전당 사장1992년 문화부 차관1993년 공연윤리위원회위원장199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2000년 중앙대학교 첨단영상 전문대학원 연구교수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 PIFF) 집행위원장은 칸 영화제에 참석하고 이태리로부터 돌아온 다음 날인 26일 장흥을 1박 2일에 걸쳐 다녀왔다. 그의 오랜 친구인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촬영 현장에 가서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27일 오후에는 노영심의 피아노 콘서트에 다녀오고 28일 오후 6시부터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 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에 카메오 출연(저명인사가 극중에 짧은 시간 깜짝 출연하는 것)을 위해 연극연습을 했다. 그리고 29일 아침 8시 비행기 편으로 부산에 도착해 신앙촌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The best of Asia’에서 영화제 부문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선정될 정도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톱 영화제로 자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출범 11년 만에 세계 10대 영화제에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부산국제영화제를 꼽을 정도로 성장했다. 전 세계에 영화제가 700~800개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이 어떠한가를 실감할 수가 있다. 이 영화제를 창설하고 이만큼 성장시킨 주역이 바로 김동호 위원장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아시아에는 도쿄 영화제와 홍콩 영화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밀려 영화인들이 거의 찾지 않는 ‘잊혀진 영화제’가 되었다.

“19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됐는데 처음부터 기획, 프로그램, 프로젝트가 좋았다고 봅니다. 목표 설정이 좋았던 거지요.”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전 이유로 다른 영화제와는 다른 기획과 전략을 꼽았다. “아시아의 신인 감독과 새로운 영화를 발굴해 세계에 소개한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3회부터는 부산 프로모션 프로젝트(PPP)를 시작해 아시아 감독들의 좋은 프로젝트를 엄선, 투자자와 연결시켜줬습니다. 그런 작품들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고, 칸 영화제에 나가서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제는 아시아 감독들이 ‘부산에만 내놓으면 세계영화제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AFA)도 김동호 위원장의 중점 추진 사항이다. 아시아에는 감독지망생들이 교육을 받을 기관이 없다. 연간 800편의 영화를 만드는 인도에도 감독 전문학교가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해 아시아 각국에서 28명의 감독 지망생을 뽑아 교육하고 영화도 제작하게 했다. 올해부터는 아시안 필름 마켓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PPP와 촬영박람회, 로케이션 마켓과 함께 완성된 영화를 사고파는 필름 마켓이 창설되면 기획에서 촬영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포용하는 토털 마켓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산업에서 명실 공히 그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을 인정하여 정부는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및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김동호 위원장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또 도빌 아시아 영화제에서도 도빌시 훈장을 수상했다.

고향 홍천에 다닐 때 덕소 신앙촌을 지나면서 여러 번 보았다는 김 위원장은 기장 신앙촌은 처음이라고 했다. 심광수 한일물산 사장의 안내로 시온의 요구르트 공장, 두부공장, 오리엔스 공장 등 식품단지와 산업단지, 그리고 새로 단장한 ‘생명물 받는 곳’을 둘러보고 그 유래에 관한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다. 그는 두부공장에서는 갓 나온 두부를 시식하고 사원식당에서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70세 이상의 신앙촌 노인들에게는 식사가 무료라는 말에 “그럼 나도 무료식사 대상”이라며 웃기도 했다.

이어 신앙촌의 미래에 대해 식품단지, 중공업단지, 연구단지, 교육단지, 유통단지, 주거단지, 의료시설 등 제반 시설과 광활한 단지 사이를 운행할 모노레일 등 교통수단에 이르기까지 모형도를 보며 설명을 들었다. 김 위원장은 실제로 산위에 올라 신앙촌을 살펴보고 그 미래의 규모와 비전이 엄청난 것에 놀랐다고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세미나 실에서 천부교 50년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고는 은혜 받은 체험을 말하는 임영신 씨의 모습을 보고 “임 총장도 이 교회에 다녔습니까?”라고 묻고 “다큐멘터리를 보니 천부교의 50년 역사를 잘 알겠다”고 시청 소감을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이 “지금 천부교의 교주는 누구신가요?”라고 물었는데 한 참석자가 “천부교의 교주는 하나님”이라고 답변했다. 기장 군청까지는 여러 번 와 보았으나 이곳에 신앙촌이 있는지는 몰랐다는 김 위원장은 신앙촌을 본 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1년에 20번 이상 해외 출장을 하고 올해 들어서만 노틀담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비엔나 영화제, 프랑스 도빌 영화제, 그리고 칸 영화제 등에 다녀왔고 6월 14일부터는 카오슝 영화제, 대만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을 위해 출국이 예정되어 있는 등 그의 일정은 시간을 쪼개는 식으로 바쁘게 짜여져 있다. 고희(古稀)의 나이에 그 많은 일정을 소화해내는 김 위원장의 건강 비결은 꾸준한 운동이라고 했다. 매일 4시 30분이면 기상해 5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조깅을 하고 1주에 3회는 꼭 테니스를 즐긴다고 했다. 해외에 나갈 때도 테니스화는 꼭 챙겨나가고 아파트의 13층에 위치한 집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오르내린다고 했다.

그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전용 상영관을 건립하는 데 심혈을 쏟고 있다. 전용 상영관 ‘두레라움’은 1000억 원 이상 드는 대형 사업으로 그는 예산 확보를 위해 재경부로 부산시로 뛰어 다닌다. 그는 전용 상영관 건립에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모델로 하고 싶다고 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우라는 도시에 있는데 빌바우는 조선 공업도시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많이 쇠락을 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개관하면서 도시는 활기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건축물 자체의 조형성이 뛰어난데 독특한 외관을 가진 세계적 건물을 보려는 사람들로 그 도시는 북적거리고 있습니다. ‘두레라움’도 그렇게 지을 것입니다.”

1년에 절반 정도는 세계의 많은 영화제와 관련해서 해외에 머무는 그에게 가장 인상 깊은 도시와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스위스의 바젤을 꼽았다. “세계의 영화제들이 대체로 아름다운 휴양 도시에서 열립니다. 그 도시들이 다 아름답지만 스위스의 바젤이란 도시는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예요. 그런데 바젤에는 바젤 미술관, 틴게리 미술관, 바이에라(Beyeler) 컬렉션, 인형집 미술관, 만화 박물관, 종이 박물관 등 약 30개의 독특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답니다. 도시 자체의 심포니 오케스트라, 심포니에타를 갖고 있는 음악의 도시, 미술의 도시, 박물관의 도시, 미술관의 도시입니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접경에 있는 도시인데 그들의 문화적 전통과 그것을 누리고 즐기는 게 좋아 근처의 영화제에 참석하면 일부러 기차를 타고 그 곳을 꼭 다녀옵니다.”

아무튼 김 위원장이 우리나라 영화문화 사업의 세계화를 위해 더욱 정력적으로 일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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