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성신의 권능이 나타난 초창기 천막집회

발행일 발행호수 2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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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5년, 이 땅에 하늘의 은혜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천막집회에서 이슬은혜를 체험한 수가 백만 명을 넘어 병고에서 벗어난 자들의 환호 소리가 천지를 울리고 참길을 깨달은 자들의 찬송 소리가 드높았습니다.
생생한 은혜의 기록인 신앙체험기 중에서 초창기 천막집회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여 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5년,
이 땅에 하늘의 은혜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한강 모래사장 집회
1955년 7월 4일부터 서울 한강 모래사장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시간 첫 찬송의 가사인,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를 수없이 연거푸 부를 때 청중의 마음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때 장로님께서 부르던 찬송을 그치시고 강대상을 힘껏 내려치신 후, “쉭-쉭” 하고 축복하시며 “이제 내게서 성신의 능력이 나갔는데, 병 나은 사람은 일어나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하세요.” 하고 말씀하시자 이곳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제 옆에 앉아 있던 꼽추의 등이 펴진 것을 보았습니다. 18세 정도로 보이는 처녀 꼽추가 일어서라는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감격해 울면서 “내 등이 펴졌어요.” 하고 기뻐 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7세가량 된 처녀 벙어리가 일어서서 혀가 풀려 말을 한다며, 단상에 올라가 “엄마”를 연거푸 부르며 기뻐 뛰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년 남자는 손에 감았던 붕대를 풀고 울부짖으며 자신은 문둥병 환자인데 손에 흐르던 진물이 이렇게 말라 병이 나았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한 중년 남자가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붙잡고, 자신은 사업에 실패하고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하려고 한강에 왔다가 이와 같은 광경을 보고 새로운 삶의 용기를 가졌다며 감격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6 ·25동란을 겪고 좌절과 빈곤에 찌든 민족에게 큰 용기와 삶의 새 소망을 안겨 준 성신의 역사였습니다. /홍영의 승사 (신앙체험기 208회 /5집 수록)

부산 초량집회
1955년 10월 부산 초량집회에 참석했을 때 저는 집회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하여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힘차게 손뼉을 치시며 찬송을 인도하시는데, 그런 것을 처음 봤던 저는 너무 어색해서 손뼉이 쳐지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 “할렐루야!” 하며 팔을 올려서 영광을 돌리는 것도 영 내키지가 않아서 팔을 안 들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집회 기간 중에 사람들은 벙어리가 말문이 트였다, 장님이 눈을 떴다, 불치병이 나았다 하며 환호성을 올렸지만 저는 계속 의심이 되었습니다. ‘혹시 서로 짜고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학으로도 고치지 못하는 장애와 불치병이 어떻게 집회에 참석한다고 나을 수가 있겠나?’ 집회장에 오기 전부터 박 장로님 집회에서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지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 장로님께서 안수하신 후 “병자들은 일어나 뛰어라!” 하고 외치시자 제 옆에 앉은 벙어리 소녀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였는데 그때는 “어머니- 아버지-” 하며 분명히 말을 했습니다. 제가 똑똑히 목격한 그 일을 더 이상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병이 낫는 것을 나 자신이 직접 봤으면서도 의심에 사로잡혀 믿지 못했구나. 내가 아는 것만 고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을 부를 때, 저도 모르는 사이 가볍게 손이 올라가서 그토록 안 쳐지던 손뼉을 힘차게 치면서 넘치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는 은혜를 주심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 팔을 높이 올려서 “할렐루야!” 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안순식 승사 (신앙체험기 346회/ 9집 수록)

마산집회
제가 마산 문창 장로교회에 2∼3년 정도 다녔던 1955년, 어느 날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김석찬 목사가 설교 시간에 하는 말이, “신경통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었는데, 서울에 갔다가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께 안찰을 받고 병이 나아 몸이 가뿐하게 되었다.” 하면서 단 위를 왔다 갔다 하며 자신의 몸이 나았다는 것을 교인들 앞에 보여 주었습니다. 목사는 우리 교회에 박 장로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열어야 되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얼마 후 저희 교회에서는 박태선 장로님을 초청하여 부흥집회를 열게 되었고, 그 이후 마산에 있는 중앙 장로교회, 신마산 장로교회에서도 박 장로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하였습니다. 박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의 말문이 트이는 등 많은 기사이적이 일어나니, 이를 직접 보고 또 저마다 은혜를 체험한 각 교회의 많은 교인들은 박 장로님의 부흥집회마다 몰려들었습니다. /박말임 승사 (신앙체험기 217회/ 6집 수록)

대구 칠성동집회
1955년 6월, 대구에서 장로교회에 다니던 저는 칠성동에서 열린 박 장로님 집회에 처음 참석했습니다. 첫날 예배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니, 이웃에 사는 목사가 “박 장로님 집회에서 어떤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하고 묻기에 아무 은혜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향취가 나고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데 하나도 체험하지 못했습니까?” 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름대로 진실하게 믿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다 받은 은혜를 나는 못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속상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집회장으로 발길을 돌리며 은혜를 받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회가 열린 며칠 동안 박 장로님께서는 종종 “마음 문 여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기도는 오직 마음을 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얼마나 더러우면 귀한 은혜를 못 받는 것인지, 그 안타까운 심정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 낮고 추한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믿노라 했던 것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애타는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다 보면 쉼 없이 흘러내린 눈물로 자리가 흥건히 젖어 있곤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집회가 거의 막바지에 이른 날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상에 서셔서 “쉭! 쉭!” 하고 축복을 하시자, 박 장로님 입에서 뽀얀 안개가 퍼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개가 사람들에게로 오는 것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내렸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닿지 않고 싹싹 피해 갔습니다. 그 신기한 광경에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 은혜는 합당한 자에게만 내리는구나. 은혜가 피해 가는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제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머리 위에 물이 쏟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많은 물이 한꺼번에 쫙 쏟아져 온몸이 흠뻑 젖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리 옷을 만져 봐도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꽃향기인지 너무나 좋은 냄새가 코로 확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제가 은혜를 받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이슬은혜와 너무나 향기로운 향취 은혜……. 귀한 은혜를 주심에 가슴이 벅차도록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이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어느새 시간이 다 지나고 집회는 끝이 났습니다.
/최온순 승사(신앙체험기 309회/ 8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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