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갈증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물은 만물의 근원” 이라고 주장했을 만큼 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물질의 구성 요소이자 인간의 삶과 종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예로 불교에서는 저승을 가는 중에 “삼도천”을 건너야 한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도 천국을 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인도의 힌두교인들에게 갠지스 강은 병자를 치료하는 성수이며 죄를 씻는 물로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 불에 덜 탄 시신들이 강에 던져져 둥둥 떠다니는 바로 옆에서 산 자들은 죄를 씻는다고 그 강물 속에 뛰어든다.
인간의 삶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불치병을 치료해 주겠다며 신도들에게 소금물로 관장(항문을 통해 약물을 주입하는 의료 행위)을 시킨 목사 부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들은 병을 치유한다며 전국 각지를 돌며 치료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매일 소금물로 관장을 시켰고, 참가 기간 동안 약을 먹지 못하게 해 일부 환자들은 퇴소 후 숨졌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소금물로 병이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은 과학의 시대에 그 과학과 의학이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의 절박함을 악용한 것이다. 더욱이 종교인이 신도의 갈급함을 악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회 문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모든 인간에게 예외가 없는 죽음에 이르러는 더욱 그러하다. 고인의 장례식에서 성수라는 물을 뿌리는 행위가 망자로 하여금 죽음을 통과해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고 믿게 하는 경우도 있다. 성수란 사제가 교회의 이름으로 축성한 물로서 물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약간의 소금을 첨가한다고 한다. 소금물로 육을 넘어 영을 위로하는 장례 절차의 의식을 보면서 어쩌면 목사 부부의 소금물 관장도 거기서부터 파생된 맥락이 아닐까? 희망에 대한 인간의 갈증을 악용하는 일들이 어디까지 반복될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