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과 교황
오는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올해는 튀니지의 ‘국민 4자 대화기구(Tunisian National Dialogue Quartet)’가 다원적 민주주의 구축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당초 프란치스코 교황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유력한 후보로 알려졌으나 무명의 단체가 깜짝 수상하게 됐다.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상인 노벨 평화상은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 명성만큼 논란 역시 끊이지 않았는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본격화되던 1939년 히틀러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것이 단적인 예다.
교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온라인 베팅업체들이 1순위로 점칠 만큼 수상이 유력시되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면 그것은 2,000년 역사를 가진 가톨릭교회가 인류 평화에 공헌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1901년 노벨평화상이 제정된 이래 교황이 수상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 2003년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1만 여 명의 성직자 앞에서 역사적인 고백문을 읽어 내려갔다. 교황청이 발표한 참회 고백문은 “기억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제목이었다. 고백문에서 가톨릭교회가 스스로 인정한 범죄는 ‘첫째, 1095년 교황 우르반의 칙령에 따른 십자군전쟁의 죄악. 둘째, 중세 종교재판과 고문형, 마녀사냥식 징벌의 죄악. 셋째, 16세기 신대륙에서 자행한 멕시코 원주민 학살의 범죄. 넷째,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던 잘못’이었다. 이 범죄들로 인해 학살당한 사람의 수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6,0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인 5,200만 명을 훨씬 넘는다.
이처럼 인류에 대한 극악한 범죄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후손이 그 범죄에 대한 상처와 기억을 대물림하고,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언론은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2,000년 동안 지구를 피로 물들인 평화의 최고 파괴자’라 평했다. 이러한 단체의 수장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면 희생자의 후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