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가는 길
최근 명동성당 가는 길이 교황청 공인 순례길로 지정됐다. 3개 코스로 이루어진 ‘천주교 서울 순례길’ 중에서 제1코스에 해당한다. 명동성당부터 가회동성당까지 8.7Km에 이르는 길을 “말씀의 길”로 명명하고 대대적인 홍보 중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 길에서 치욕의 역사를 느낀다고 한다. 명동성당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제 치하였던 1911년, 명동성당은 진입로가 막혀 있었다. 성당 주변 진고개가 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지정되고 휘황찬란한 상점이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이 길을 차지해 버린 것이었다. 명동성당의 뮈텔 주교는 진입로 확보를 위해 전전긍긍하던 중 뜻밖의 기회를 맞았다.
그것은 빌렘 신부의 편지였다. 빌렘은 안중근, 안명근 등 독립지사들과 가까이 지낸 신부였다. 빌렘은 안명근의 고해성사를 듣던 중 독립지사들의 활동을 알게 되어 뮈텔에게 편지로 알렸고, 뮈텔은 한달음에 조선 총독부 아카시 장군에게 달려가 이를 밀고했다. 뮈텔과 빌렘은 안명근의 독립운동이 조국을 되찾기 위한 의로운 활동이 아니라 ‘일본을 해하려는 음모’라고 여겼다.
뮈텔의 밀고를 받은 조선 총독부는 즉각 행동에 돌입했다. 안명근 체포를 시작으로 600여 명에 이르는 독립지사를 구금하고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이것이 105인을 검거하고 혹독한 고문을 가해 독립운동의 씨를 말렸던 ‘105인 사건’의 발단이었다. 뮈텔의 밀고는 독립운동 조직을 파괴하는 데 주효했다. 조선 총독부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자 뮈텔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명동성당의 진입로 해결을 요청했다. 일본은 즉시 명동성당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수많은 독립지사의 목숨과 맞바꾼 길이었다.
안명근의 사촌형이자 독립지사인 안중근도 가톨릭 신자였다. 안명근이 고해성사를 하며 독립운동을 이야기한 것과 같이 안중근도 국외에서 거사를 계획할 때 가까운 신부들과 상의했다. 가톨릭 신부가 일본에 밀고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은 사형을 선고받고 죽기 전에 마지막 미사를 간절히 원했다. 이때 빌렘 신부가 그에게 미사를 행한 후 이렇게 말했다. “신이 너의 영혼을 거두어 주실 것이니 안심하고 있으라.” 그러나 영혼을 거두어 주겠다던 가톨릭은 안중근이 살인범이라는 이유로 신자 자격을 박탈했다. 안중근은 사후 100년 동안 가톨릭에서 제명되어 있었다.
그런데 감탄고토인가, 격세지감인가. 2000년대 들어 명동성당은 안중근 칭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가톨릭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움직임까지 있다고 한다. 역사에 새겨진 친일 행위를 가리기 위해 독립지사를 활용하는 것만큼 편리한 면죄부도 없을 것이다.
명동성당 가는 길이 순례길로 지정된 이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길을 걸으며 영혼의 평안과 위로를 받기 원할 것이다. 그러나 자뭇 궁금해진다. 독립지사들의 한이 맺힌 길에서 어떤 평안을 느낄 수 있을까. 영혼의 구원을 배신당한 길에서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