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교회 – 천부교 역사가 살아 숨쉬다

발행일 발행호수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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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덕소교회 여성회
1962년 7월 덕소신앙촌이 건설되기 시작하고 두 달 뒤부터 덕소에 사람들이 와서 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진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는 덕소신앙촌의 모습을 “00아파트 자리가 제과공장이고 00아파트 자리는 도매소 자리야.” “나무가 우거져 고개를 넘어가기가 무서울 정도였고, 개천은 물이 어찌나 맑은지 거기서 미역감고 놀았어.” “공장지대가 낮아서 물난리도 자주 났어. 그때 우리는 세수대야를 다 들고 나와 들어오는 물을 밤새 걷어냈거든. 그래서 ‘신앙촌은 세수대야로 한강물을 막아냈다’고 소문이 났어.” “엑슬란 내복이며 수 이불, 캐러멜과 크림빵 등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생산되고 아침에 한보따리 들고 나가면 저녁엔 빈 보자기를 들고 들어왔지. 얼마나 신나게 장사했는지 몰라.” 덕소신앙촌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었다.

시온쇼핑 교문리점 사장이자 2반 오십부장인 김정수 권사는 덕소신앙촌 양재부 출신이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공장을 순회하셨어요. ‘역시 신앙촌 것은 달라. 이 말을 듣게 잘 만들라’ 말씀을 하셨는데 검수도 엄격해서 조그마한 잘못이 발견되면 근무 외 시간에 불평없이 그일을 다 마무리 하곤했어요. 그때 그런 가르침으로 만든 신앙촌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를 지금 시온쇼핑을 하면서 느끼고 있는데 그럴 때는 자부심이 느껴지죠.”

김정수 권사는 한참 잠도 많을 나이인데 피곤한 것도 모르고 즐겁고 기쁘게 지낸 기억밖에 없다며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때는 그 말씀이 이해가 안 갔어요.” ‘생각으로 무슨 죄를 짓는다고 저런 말씀을 하시나’ 그럴 정도로 어떤 잡념도 없이 지냈던 시절을 즐겁게 이야기 했다.

1962년 10월부터 덕소신앙촌에서 살기 시작한 최야순 권사는 현재 시온쇼핑 상봉점 사장님이다. “미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나면 저리도 좋아하는구나 싶어 감동을 받았다”며 산양을 키우던 이야기를 했다.

덕소신앙촌 사업부에서 산양을 키웠던 적이 있다. 그때 양사를 책임맡고 있는데 두 번째로 젖을 많이 짜는 양이 아프길래 끌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으러 갔다. 마침 안찰을 마치시고 잠시 쉬시던 하나님께서는 계단 아래 와있는 양을 향해 축복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축복받은 양이 양사로 안 돌아가려고 버티는 것이었다. “끌고 오면 휙 달아나 하나님 계신 곳을 향하여 씩~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양 웃는 거 봤어요? 하나님 보고 좋아서 웃어요.”

최 권사는 더운 여름날 솥에 빠져 화상을 입은 아들이 하나님께 축복받고 흉터 없이 다 나은 이야기며 소아마비 걸린 아들이 생명물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건강해진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의 분명하신 은혜와 권능을 알기에 최 권사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전하고자 시온쇼핑을 운영하며 전도에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덕소교회 여성회는 1반에서부터 4반까지 있고 그 위에 다시 연합회가 있다. 각 반의 오십부장들은 한 제단의 관장 몫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로 반원을 관리하고 전도와 사업을 주도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올해 1월 교적부를 작성하고 교인이 된 한성순씨는 이번 1/3분기 사업시상식에서 전국 소비조합 중 375등을 해서 상을 받았다. “교적부를 쓰고 나니까 교회에 더 애착이 가고 안심이 돼요. 마음이 좋죠! 이제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사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운전을 배워 한 달만에 면허를 따고 ‘초보운전’을 달고 다니는 한씨는 어려서 어머니의 반대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다르다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꼭 가겠습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가진 회의 시간에 김순덕 연합회 회장은 요즘 시온쇼핑이 점포 크기를 늘려 확장하는 이야기를 하며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현재 생활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행동에 옮겨야 할 때다”라고 했다. 조만간 결실이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는 발언을 했다.

덕소신앙촌의 역사인 안병랑 연합회 총무는 “심방 활동을 활성화 하여 쉬고 있는 분들부터 다시 교회로 이끌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윤용금 관장은 교역자 발령을 받은 첫 해 장례가 나자 장례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면서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고 축복해 줄테니 장례 잘 치뤄주라. 그런 일 하라고 내가 보냈잖아” 하시는 순간 두려움이 싹 가시고 가서 편안하게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장례를 치루는 일뿐 아니라 힘들고 역부족이다 싶은 일이 있어도 ‘그래 이런 일을 하라고 보내신거지, 일거리가 없다면 사람도 필요없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문제에 당면하면 ‘이 일을 하라고 보내셨겠지’ 하는 맘으로 일을 해내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윤 관장은 유난히 장례를 많이 치뤘다고 했다.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며 ‘평생에 한 대로 가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 공짜는 없다”고 강조했다.

덕소교회 여학생 여청년회

덕소교회 넓은 제단 한켠 학생회를 위한 예배실 두 곳과 주방, 반사실 등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마당에는 큰 나무 아래 덤블링(일명 방방)이 있어서 시원한 그늘 아래서 어린이들이 맘껏 놀 수 있다.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교회에 온 제미화(덕소초6), 미선(덕소초5) 자매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오다가 친구들 말만 믿고 중간에 안 다녔는데 다시 교회에 와서 관장님 말씀을 듣고 ‘정말 하나님이시다’ 느껴서 열심히 나오려고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화는 “신의 매”에 대한 말씀이, 미선이는 “자유율법”에 대한 말씀에서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미선이의 장래 희망은 관장님이다.

미화나 미선이처럼 교회에 예전에 다니다가 주위의 말을 듣고 교회와 멀어졌다가 다시 나오고 있는 아이들이 제법 된다. 이는 지금 장서영 학생관장의 숙제이기도 하다. “부모님의 반대로 못 나오고 있는 예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애들을 꼭 다시 찾아내고자 합니다.”

장 관장은 “‘교인 사랑해. 어떻든 내 양이야. 내 그 애착을 가지고 그렇게도 안타까워하지 않아’하셨던 하나님 말씀을 상기하면서 맡겨주신 아이들을 귀하게 알고 하나님께로 이끄는 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것”을 교역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장 관장에게 힘을 보태주는 박선정 학생부 지도교사와 문영실 주교부장. 둘 다 반사 경력이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박선정 교사는 “교회의 풀 한포기를 뽑아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신다는 말씀을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많이 들었어요. 언제인가 교회에서 다른 반사들과 밤 늦도록 다음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간 적이 있어요. 조금은 힘들어하면서 했는데 그날밤 꿈에 반사들이 모여서 일하던 바로 그 자리에, 교회 안인데 뽀얗게 이슬비가 내리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저는 마당에 있어서 제단안에 내리는 이슬은혜를 조금밖에 맞지 못했어요. 온전하지 못했던 제 마음때문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반사 일이란 것이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애들을 보물찾기 하듯이 하는 일이란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마음으로 보석같은 아이들을 열심히 찾을 겁니다.”

문영실 부장도 교회에서 하는 작은 활동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해주신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문득문득 느끼게 된다고 했다.

장 관장은 “반사 선생님들과 함께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푯대삼아 더욱 발전하는 덕소교회가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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