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묻다] 허상이 실체를 집어삼키다
‘신비’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현대 과학으로도 밝혀내지 못한 우주의 기원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기적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비를 떠올린다. 이처럼 신비란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 말 그대로 불가해(不可解)한 영역을 가리킨다. ‘신비(神祕)’라는 글자에 ‘신의 비밀’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만 봐도, 신비가 초월의 영역을 가리킨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그런데 최근 교황 레오 14세가 ‘신비’를 언급한 일이 있었다. 지난 2월 18일,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청중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설교했다.
“교회를 설명하고자 할 때 ‘신비’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비란 모호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드러난 실체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지각 가능한 형태로 드러난 신비입니다.”
교회가 곧 지각 가능한 신비라는 교황의 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교회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신념을 공유하고 의례를 행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일반적인 사회 현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교회는 신비’라는 명제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까? 우선 교회에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초자연적 현상이 있어야 하고, 다수가 목격한 기적 등의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하며, 이러한 현상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교회 안에 초월적 개입이 있다”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고, 그때 ‘신비’라는 단어를 사용할 최소한의 근거가 생긴다.
그러나 교황은 이 모든 단계를 완전히 생략했다. 증거도 없이, 검증 절차도 없이, 오직 선언만으로 “교회는 지각 가능한 신비”라고 못 박았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지각 가능하다”고 표현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지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증명을 우회하는 교묘한 전략이 숨어 있다. 바로 선언만으로 현실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교회가 곧 신비’라고 단언하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능력을 잃고, 교회에 어떤 초월적 실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그 전제를 의심하기 어려운 인식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허구를 사실로 둔갑시키는 행위이며, 오랫동안 그들이 수행해 온 현실 조작의 핵심이다.
이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허영심 가득한 임금 앞에 사기꾼이 나타나 솔깃한 제안을 한다. “폐하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특별한 옷은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후, 사기꾼은 임금을 찾아와 빈 허공을 가리키며 화려한 몸짓으로 “보십시오, 이 찬란한 옷을!” 하고 외친다. 임금은 당황했다. 눈을 씻고 봐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애초부터 옷은 없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던 임금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연다.
“정말 아름다운 옷이구나.” 그러자 주변의 신하들도 너도나도 옷이 훌륭하다며 맞장구를 친다. 임금과 신하들은 자기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실제로는 옷이 존재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결국 임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옷을 입고 마을을 가로질러 위풍당당하게 행진한다. 벌거벗은 임금의 행진을 지켜보는 군중들 역시 당혹스러웠지만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들 역시 보이지 않을 뿐 옷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이, 존재하지도 않는 옷이 진짜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이처럼 허상이 실체를 집어삼키고 진실 행세를 할 때, 공동체의 합리적 의심은 차단당하고 믿음만이 강요된다. 사회의 이성과 상식은 바로 이러한 구조 속에서 마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황의 발언은 수사적 과장을 넘어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신비라고 부를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데 “지각 가능한 신비”라고 하는 것은 지적 사기(intellectual fraud) 또는 도덕적 기만(moral deception)의 요소를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비록 종교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다 하더라도, 근거 없는 주장을 사실처럼 유포하는 행위는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고도화된 구조적 사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성’에 이어 ‘신비’라는 개념까지 왜곡하는 이러한 현상은, 초월적 실재 대신 제도적 자기 정당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한계를 드러낸 것일까? 아니면 신의 실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종교가 생존을 위해 어떤 비윤리적 수단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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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묻다] 그들이 말하는 믿음과 영성은 기만인가, 사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