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즘의 부활
독일의 한 호텔에서 ‘퇴마 의식’을 받던 한국인 여성이 침대에 묶인 채 숨진 사건으로 엑소시즘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엑소시즘(exorcism)이란 사람의 몸에서 악령을 쫓아내는 의식으로 가톨릭에서는 구마(驅魔)라고 한다. 엑소시즘의 유명한 사건은 1976년 독일에서 있었다. 가톨릭 신부 4명이 여대생 아넬리즈 미셀에게 구마 의식을 행하다 영양부족과 탈수로 사망케 한 사건이었다. 신부 4명은 과실치사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악령을 쫓아낸다는 명분으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엑소시즘의 역사는 중세의 마녀사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녀는 악령의 지배와 조종을 받는 하수인으로 낙인 찍혀 악령을 물리치고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당시 약제사나 조산부 등 과학과 의학 지식에 능통한 여성들이 지역 사회에서 가톨릭 사제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자 그들이 마녀로 몰리는 일이 많았다. 과학과 이성에 눈뜬 사람들, 가톨릭 교리에 맞서 과학적 사실을 알렸던 사람들, 이를테면 지동설을 주장했던 지오다노 브루노 같은 과학자가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하던 시대였다.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마녀 칙령’을 발표해 마녀사냥을 본격화했고,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쓴 는 마녀의 지정, 고문, 처형의 교과서가 되었다. 마녀사냥의 잔인한 고문은 전 유럽을 공포에 빠뜨렸다. 가시 의자에 앉히기, 눈알 도려내기, 도구를 입에 박아 머리가 터질 때까지 크기 늘리기, 커다란 솥에 넣어 삶기……. 혹자는 ‘진정한 악마는 마녀가 아니라 마녀사냥을 하는 자들’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끔찍한 고문 끝에 마녀가 죽고 나면 다시 전 재산 몰수형에 처해졌다. 마녀는 교황에게 내는 ‘마녀세’를 비롯해 고문과 화형 비용을 지불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살해한 교황과 그 일당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는 셈이었다. 마녀사냥은 암흑기 절대 권력의 종교가 빚은 광란이었다.
요즘 교황 프란치스코는 악령 퇴치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악령이 들린 신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직접 구마 행위를 했다고 알려졌고, 구마 사제 협회를 교황청 공식 기구로 인정하기도 했다. 첨단 과학의 시대를 역행하며 엑소시즘을 적극 부활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에 대한 미련일까, 아니면 악을 퇴치하는 연기로 종교적 권위를 세워 보려는 의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