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십년 믿어도 죄는 그대로… 죄를 해결지어야 구원

수십년 믿어도 죄는 그대로... 죄를 해결지어야 구원
발행일 발행호수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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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하나님은 부평, 안동에 이어 군산, 영산포, 밀양, 경주 등지에서 계속 집회를 인도하시고 권능을 나타내시는 동시에 안찰을 함으로 성신을 부어주셨다. 집회 한 번 인도할 때마다 많은 수가 깨닫고 전향하는 큰 역사가 일어났다. 그들은 예배당 문안에만 들어가면 성신 받아 구원 얻는 줄 알았으나 하나님의 손 앞에 죄악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는 죄를 씻어주는 분을 찾겠다고 굳게 맹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거짓 목사들에게 속아 왔음을 자각하고 통분하기도 했다.”

1967년 신앙신보는 당시에 전국적으로 집회를 하셨던 하나님을 수행하며 취재한 수행기를 기록했는데 2월 27일자에는 “죄를 해결지어야 구원”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당시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수행기자는 밀양, 경주, 영등포, 마포, 인천, 능곡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집회의 자취를 따르고 있었다.

1956년 9월에 개관집회를 했던 밀양전도관은 1965년에 12월 17일에 대지 250평에 건평 404평으로 확장하여 신축한 바 있다.

밀양에서의 집회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비행기로 부산에 가셔서 거기서 다시 자동차로 두 시간을 더 달려서 밀양에 도착하시게 된다.

“공로 부산 도착, 밀양까지는 두 시간의 자동차 길. 이미 신칙하였는데도 집회 제단 전도사님이 제단을 비워 가장 중요한 집회참석인원 정리가 소홀했다. 모여오는 인파를 제단에 다 수용할 수 없어 결국 이미 우리 식구된 사람은 자리를 모조리 비워 양보하기로 하고 새식구만 가득차게 했다. 이렇게 정리하느라고 집회는 한 시간이나 늦게 시작, 그만큼 그 제단에 손해가 되었다. 앞으로 각 제단 전도사로서 크게 유의해야할 점이다.”

덕소에서 출발해 비행기와 자동차로 서너 시간을 걸려 도착하신 밀양에서도 하나님의 설교와 안찰 시간은 길었다. “세 시간 반 설교, 두 시간 안찰. 어떤 기성교회 권사 하나는 ‘이 설교 말씀이면 참과 거짓을 구별 못 짓겠나요?’하는 하나님의 질문에 ‘분명히 구별짓겠습니다’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기도 했다.

‘죄를 그대로 가지고는 천당이요? 지옥이요?’ 안타까운 하나님의 말씀에 ‘지옥이지요’ 대답. ‘그럼 권사님 기성교회 수십년 다녔어도 죄 한 오라기 소멸 못 받았다는 것이 드러나면 믿을래요?’ 재차 질문하시는 하나님.

참과 거짓이 여기서 구별되거늘, 진리를 찾고자 애쓰던 사람들은 깨어지고,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맹탕들은 깨닫지도 못한다.

‘필요없어요. 가보세요. 나의 할 책임은 다 했습니다. 지옥 불구렁텅이에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을 때,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받았다는 변명을 못 하게 하기 위하여 이번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 나 할 일은 다했습니다.’냉정하게 끊는 하나님 말씀.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과 독초를 먹이는 거짓 목사들에게 화가 있을진저. 씻음 받지 못하면 그 죄를 가지고 갈 곳이 어디인가? ‘다른 곳은 다 가도 좋으나 박장로 집회에는 가지 말아라’ 이것이 하나님의 집회가 있는 곳이면 기성교회 목사들이 으레 내리는 지시문이다. 성령 은혜 받고 죄 소멸 받아 구원을 얻을까봐 겁이 나서 하는 말이다. 두려울손, 천국 문을 가로 막는 거짓 목자의 받을 화.” 수행기는 여전히 방해 공작이 심한 기성교회의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경주는 지금도 불교가 성한 도시이다. 당시에도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성신의 역사는 이미 전해져있었다.
수행기는 “강팍한 경주땅이었지만 많은 수가 모여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성교인들만 빽빽히 모여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가운데 우리 식구들은 밖으로 나와 마당을 메우고 있었다. 옛 왕조의 고색 짙은 왕도 경주도 하나님의 권세 앞에 깨어져 짧은 시간 중에도 많은 수가 죄 소멸함을 받고 죄씻음을 얻었다”고 적고 있다.

이어서 서울에서 두 차례의 집회. 영등포와 마포에서인데 수행기는 보고 들은 이야기를 생중계 하듯 전하고 있다. 영등포에서는 “모 권사는 자기 교회에서 목사가 자꾸 박장로를 이단이라 하니, ‘내가 보니 이단이 아닙데다’하고 목사와 싸웠다고 한다. 또 오래 예수를 믿었다는 어느 유력 권사는 생글 웃으며 ‘박장로님이 참인 줄 다 압니다’ 한다. 그러나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나님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행함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신다.

“안찰을 받아보니 수십년 믿었다해도 죄악이 그대로 누적된 것이 드러나는지라 된 줄 아는듯 웃던 그 얼굴이 침통하게 변하여 나간다. 또 어느 청년 하나는 하나님의 손이 닿자 ‘으악’ 소리를 치고 잡은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고 만다. ‘저 청년이 귀중한 것을 안 받고 그냥 가네’ 하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은체 만체. 앞으로 이런 생짜는 제발 데려오지 말 일이다”고 수행기는 적고 있다.

마포에서는 모이는 장소가 좁아 많은 수가 서너시간을 기다리는 고로 하는 수 없이 하나님께서 설교와 안찰이 끝난 후 다시 설교와 안찰을 되풀이 하시는 수고를 하셔야 했다. 수행기는 “한 번에 될 것을 공연히 두 번씩하게 하여 하나님의 수고를 더하게 했다. 전도사들이 좀 더 세밀히 주의해야 하겠다”고 지적한다. 또한 안찰을 받으며 아파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슬그머니 빠져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부끄럽지, 소멸받는 게 무엇이 부끄러우냐. 지난 죄는 소멸 받으면 기억도 안 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셨던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도 한다. 목사도 와서 안찰을 받았는데 “그 죄가 평신도 이상이었다”고 적고만 있다. 아마도 안찰을 받으며 죄때문에 괴로워 하는 것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인천에서 열린 집회에는 승려가 참석하여 은혜 받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어쩐지 모르게 전부터 전도관에 끌렸다니 하나님의 감화하심이 분명하다. 안찰을 받고는 죽도록 충성할 것을 맹세하며 헛된 우상 앞에 꿇어 젊음을 산중에서 보내고 있는 동료들을 인도해 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능곡전도관은 1966년 11월에 개척된 곳으로 경기도 고양군 지도면 도당리에 소재한다.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집회를 열어주셨는데 3월 2일 오후 1시에 집회가 열렸다. 입추의 여지 없이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죄와 타협하지 말라”고 외치셨다. 집회를 마치고 서울의 모모한 교회 제직들이 안찰을 받으려고 덕소까지 따라왔다고 한다. 그러나 은혜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였는데 “천만번 부탁해도 안 해드릴 때가 옵니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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