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혜를 받으면 죄를 멀리하게 돼

<다시 보는 신앙체험기> 前 시온고등학교 교장 석세조 (1)
발행일 발행호수 2618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Seok Se-jo

평양이 고향인 저는 3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나 교회에 다니시는 부모님의 권유로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16세 되던 해인 1946년도에, 공부하러 1년 전에 서울로 떠난 형님을 찾아 월남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북서 나온 사람들은 거의 영락교회를 다녔는데, 저도 그 교회에 다니면서 학습 문답과 세례를 받은 정식 교인이었습니다.
그 후 6․25 전쟁 때 아버지는 지주 계급이라 하여 공산당에게 대동강가에서 총살당하셨다고 했으며, 어머니와 동생들은 1․4 후퇴 때 월남하여 저를 찾는다는 육군 신문인 승리일보의 광고를 보고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월남 이후 저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 가면서 서울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는 한편, 그 당시 젊은이들이 즐겼던 낭만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결코 방탕에 휩쓸려 난잡한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일찍부터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 생각됩니다.

당시 저는 어느 교회에 나가든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는 생각에 전도관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다만 박태선 장로님이 부흥사로서 수많은 병자를 고쳤다는 소문이 나돌아 보통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제 여동생들이 박태선 장로님 부흥집회에 다녀와선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고, 불이 내려와 죄를 태우니 송장 타는 냄새가 나며 향취가 맡아지고 이슬성신이 뽀얗게 내린다며 저에게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실제로 둘째 여동생은 어릴 적에 우차를 타고 가다 소가 놀라 뛰는 바람에 떨어져 뒷머리를 다친 후론 콧물이 나오며 성질이 난폭하여 다른 사람과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에 다니고 하나님께 안찰을 받은 후로 성질이 온순해졌고,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도 찬송을 불렀으며, 또한 콧물도 나오지 않는 등 정말 상상도 못 할 변화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또 첫째 여동생도 눈이 아주 나빠 안경을 썼었는데, 하나님께서 꿈에 안찰을 해 주신 그날 아침부터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이 바로 내 곁에서 일어났는데도 저는 왠지 자꾸 의심이 생겨 전도관에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생들은 참 열심이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집이 있는 을지로 6가에서 원효로 구제단까지 먼 거리를 걸어서 새벽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동생들의 말과 행동을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제가 직접 사실을 알아보려고 원효로 구제단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주일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육군 중위의 신분이었던 저는 같은 부대의 장교 1명과 하사관 몇 명을 데리고 갔었는데, 준비 찬송이 한참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차고 넘쳐 창문 밖에까지 있었는데, 저는 안내를 보는 집사님의 인도로 목사, 장로들이 앉아 있는 단상 위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곁에서 뵙게 되었으며, 단상으로 나오셔서 잠깐 기도하시고는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전도관에 가면 송장 썩는 냄새가 나다가 이슬성신이 내리고 향취가 난다는 소문 때문에, 설교 말씀보다는 무슨 전기 장치 같은 것을 해 놓고 조작하지 않나 의심하며 강대상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장치는 없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40분 정도 하셨는데, 제가 다른 기성교회에서 가끔 열리는 일주일 정도의 부흥집회 시에 들었던 목사의 긴 설교와는 다르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 예배 도중에 하나님과 서너 차례 눈이 마주쳤으나 그때마다 저는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곤 했습니다. 왠지 똑바로 쳐다보기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도관에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예배를 보았는데도, 어떤 사람은 향취를 맡았다고 하고 이슬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으며 생수의 체험도 있었다고 했으나, 저는 아무런 체험도 없이 그저 맨송맨송하기만 하여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새벽제단 쌓기와 수요일 저녁예배, 그리고 주일 낮예배를 빠뜨리지 않고 보러 다녔습니다.

꿈에서 처음으로 은혜를 체험해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는데 하나님께서 오셔서 저에게 안찰을 해 주셨습니다. 평상시에 저는, 안찰을 받으면 죄지은 것이 들통나고 아프면 소리 지르게 되어 주위 사람들 보기에 창피해서 안찰을 받으러 가자고 해도 거절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꿈 중인데도 하나님의 손이 내 몸에 닿자마자 그 고통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여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라고 수없이 부르짖었고, 어느덧 고통의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기막힌 향취가 나며 입안이 시원해 옴을 느꼈습니다. 박하사탕 수십 개를 입에 넣은 것같이 시원한 것이 목구멍으로 내려가며 배 속까지 시원하고 아랫배까지 뻥 뚫리는 속 시원함 뒤에 온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눈을 뜨니 새벽 1시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입에서는 저절로 찬송이 나오며 하늘을 날 듯한 기쁨이 지속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전도관에 다니며 말로만 듣던 첫 은혜의 체험이었습니다.
이런 꿈의 체험이 있은 다음다음 날 새벽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단에 서시자마자 “그저께 꿈에 안수나 안찰을 받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하시기에 깜짝 놀라 손을 번쩍 들고 바라보니 수십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꿈꾼 것을 어떻게 아시나!’ 하며 감탄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꿈에 안찰을 받은 사람은 의심이 많은 사람,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을 위해서 축복해 주었다고 말씀하시며, 지금 부끄러워 손을 안 든 자까지 지적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지금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모든 의심이 사라졌으며, 하나님이신 것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앞으로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꼭 시간을 봐 둬라. 내 시간과 맞나 보자.”고 하셨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몸이 무겁고 답답하여 시간을 보니 오후 2시에서 4시까지였습니다. 그리고 전과 같이 예배시간에 저와 똑같은 시간을 말씀하시며 그때에 은혜의 줄을 끊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점점 굳게 믿게 되었으며 한편으론 두려운 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새벽예배의 중요성을 깨달아
1956년도 11월경에 전국 순회 집회를 하시느라 일요일에만 서울제단에 서셨던 하나님께서 ‘영적 수도 공사’(메마른 심령 위에 생명수의 은혜가 강같이 흘러넘쳐 ̒심령 수도 공사̓라 부른다.)를 하신다며 서울 시내 전 교인의 가정을 심방하셨습니다.
저희 집도 차례가 되어 아침 식사를 하시기로 되어서, 전날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을 다니며 새 그릇과 새 수저를 준비하고, 머리도 감고 몸을 단정히 하여 식사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오셨는데 마중 나온 저의 어머니를 보시고는 “제단 잘 안 나오시죠?” 하셨고, 제 남동생한테는 “오늘 저 동생 소고집을 빼고 가야지.” 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장사하시느라 일요일에 손님이 많다고 제단에 못 나가고 있었고, 동생은 기성교회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의 사정을 이렇게 잘 아시니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꼐서는 식사를 마치고 안찰을 시작하셨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자리에 누웠더니 하나님께서 “새벽기도에 나와서 많이 씻음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눈 안찰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눈에서 별이 번쩍번쩍 빛나며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옆구리와 배를 안찰해 주시는데, 손이 닿을 때마다 창자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한참이나 계속되다가 시원하다고 느껴질 때 손을 떼셨습니다.
안찰을 받은 후 어머니는 배에 손자국이 나 있었고, 동생은 배를 안찰하시며 이놈의 고집을 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동생도 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안찰을 받은 다음 날이 친구의 결혼식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피로연에 댄스파티가 있었는데 그전까지는 제가 주관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가기가 싫었고 늦게 참석하여 사진만 찍으니 친구들이 야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워 국도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데 머리가 띵하니 아파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전 같으면 자막으로 보고 원어로 듣고 하여 2번씩이나 보았을텐데 그날은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안찰을 받은 후에는 극장 가기도 싫어졌고 친구의 결혼식에 가는 일도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든 일이 자연히 싫어지면서 제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고, 새벽제단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주일예배 때 하나님께서, 극장에 가지 말라고 하시며 거기는 영적으로 좋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
1957년도 10월 초에 하나님께서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리에 앉으셔서 부친의 사진을 바라보시는 순간 저는 이때다 하고 하나님께 “저희 아버님입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세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효도 한번 못 해 드리고 비참히 돌아가신 아버님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시 눈을 감으시더니 약 30초간 기도를 하시고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 “이 말은 절대로 하지 마.”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떠오라고 하시며 축복해 주시고 가셨습니다. 저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른 채 그냥 듣기만 하였습니다.
그 증거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인지 이틀 후에 어머니가 꿈을 꾸셨는데, 부친의 모습이 평소에는 강기슭에 죽은 시체로 떠 있는 모습으로만 보이더니 이날은 부친께서 깨끗한 옷을 입고 부엌으로 걸어오셔서 물을 달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모친이 저 그릇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이므로 안 된다고 했더니 막무가내로 그 물을 마시고는 이젠 됐다며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꿈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후 이 말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님께 사진을 가지고 가서 축복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신앙촌 식품단지의 가을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