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은 신의 임재(臨在)를 뜻하는가? 아니면 신의 부재(不在)를 견디기 위해 고안된 언어인가?

진리를 묻다 - 영성이란 무엇인가? <1>
발행일 발행호수 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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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종교 담론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영성(spirituality)’이다. 매년 영성과 관련된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종교 지도자들은 종파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자신의 영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롯되었다며, 영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영성은 무엇일까?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그 어원에 영혼(靈, spirit)을 뜻하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위키백과 역시 영성을 ‘궁극적이거나 비물질적인 실재’와 관련된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영성은 ‘영적인 체험’이나 ‘초월적인 것’을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기에 종교에서 영성을 말할 때, 영적인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교황 레오 14세는 첫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영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페루에서 테러가 만연하던 시절을 겪고, 상상도 못했던 곳에서 일하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도 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영성이었습니다.”

이 발언 어디에도 초자연적 신비나 신의 직접적인 임재(臨在), 특별한 영적 체험을 연상시키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영성은 기적이나 초월적 경험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을 견뎌내게 하는 삶의 태도이자 정서적 안정, 도덕적 확신에 가까운 개념으로 읽힌다.

왜 영성이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일까?

종교는 본래 신비적 체험을 추구하는 영적 활동이었다. 이는 단순한 학문이나 개인적 수양을 넘어, 초자연적 개입과 신성한 존재의 실재적 체험, 눈에 보이거나 감각적으로 확인되는 은혜, 인간을 초월하는 힘과 그 증거를 제시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과학·의학·통계·기술 등 인간의 지식이 발전하면서, ‘신비 체험’이나 ‘기적’은 더 이상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졌다. 초자연적 개입을 주장할수록 그 주장은 검증과 반박의 대상이 되었고, 그만큼 신뢰성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신비를 전면에 내세우던 종교들은 인간의 지성 앞에서 윤리적·논리적 방어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방향을 바꾼 것일까? 결국 종교들은 ‘신이 실제로 개입한다’는 주장보다, ‘신을 믿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강조하는 쪽으로 슬그머니 이동하였다. 다시 말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종교에서 신의 효용을 설명하는 종교로 전환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영성’은 초자연적 실재에 대한 주장보다는,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내면의 수양에 가까운 개념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의 진보가 아닌 퇴보이자 방어전략으로 보인다.

영성이라는 말은 퇴보를 가려주는 유용한 언어이다. 과학적 검증이 요구되지 않고, 영적 체험이 발생하지 않은 실패의 책임을 교회가 아닌 신자 개인의 수양부족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 역시 “신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평안을 얻었으니 의미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종교가 사실 주장 체계가 아닌 심리적 자기 위안 장치가 된 것이다.

결국 오늘날 종교가 말하는 영성은 신이 실제로 임재하고 역사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일지도 모른다.

“영성은 신의 임재(臨在)를 뜻하는가? 아니면 신의 부재(不在)를 견디기 위해 고안된 언어인가?”

종교들이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영성’이라는 단어는 많은 것을 말하는 듯 보이면서도, 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언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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