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4) 순천집회
순천집회(1955.12.8.~13.)호남지역 집회의 시작인 광주공원집회(1955. 11. 25.~12. 1.)를 성황리에 마치고 일주일 뒤인 12월 8일부터 13일까지 순천에서 하나님의 천막집회가 열리게 된다. 순천역 인근 철도국운동장이 집회가 열렸던 장소이다. 순천역은 1935년 조선총독부 철도국 순천철도사무소로 출범하여 해방후 미군정청 교통국 순천철도사무소, 이후 부명이 바뀔 때마다 이름을 달리하며 교통부 육운국 순천철도국, 철도청 순천철도국 등으로 불리다가 2000년 1월 1일부터 철도청 순천지역사무소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때 직원수도 약 1/4로 많이 줄었다.50년전 순천지역은 호남교통의 요충지였다고 추측해본다.
순천역에서 나와 불과 얼마 걷지 않아도 되는 거리에 철도청 운동장이 지금도 있다. 이름이 철도국에서 철도청으로 바뀌었고, 운동장의 규모가 예전보다 줄었다고 하나 꽤 큰 운동장이다.
1955년의 천막집회가 거의 그랬지만 교통이 편한 곳, 서울 이외의 지방의 경우 거의 철도역 근처의 넓은 장소였다. 그래서 집회가 열리는 도시 인근의 지방에서도 하나님의 집회에 참여하기가 비교적 용이했다.
순천집회 당시의 분위기를 1956년에 발행한 <박태선 장로 설교집 제2편>에서 볼 수 있다. 협회 창립 1주년 기념사에서 1955년 1년을 돌아보며 지난 집회를 정리하는 내용중에 “제14회째의 집회를 순천 신도들의 열성적인 주선으로 철도국 그라운드에서 12월 8일부터 한주일 동안 열렸다.
이미 광주집회에 참석했던 신도들과 순천과 순천 인접도시에서 모여온 신도와 불신자는 거개가 자신의 육신적으로 지병자가 아니면 가족 중에 한 사람을 반드시 동행하여 집회장에는 은혜 받으려는 사람으로 넘쳤다.
새로 나온 사람들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탄할 뿐으로 때로는 박장로를 의사와 같이 취급하여 원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순천은 여수 순천 반란사건의 본거지이며 사망의 혼란이 심한 곳이다. 영남 기호지방과는 비할 수 없는 신앙적 빈곤을 나타냈으나 주야로 기도와 간증설교로 큰 권능은 변함없이 계속 역사되어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슴 벅찼던 것이다. 이곳 역시 상부 지시에 의하여 교회 지도자는 반대 내지 불참하였던 것이다. 12월이라 하지만 따뜻한 날씨에 복된 하늘잔치는 많은 은혜 중에 끝마치었다.”
순천집회도 순조롭지만은 않았던 듯한데 1956년 1월 18일자 신앙신보에 최준호가 쓴 <호남지방 부흥대집회 참관기>를 보면 그 실상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박태선 장로가 인도하는 부흥집회에 참관하지 말자는 결의를 하려고 사발통문을 돌리는 일까지 있었으며 각교회 교역자들이 모여 집회 참석 여부의 가결을 하려고 하였으나 참석하자는 동의자가 다수였음으로 이것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차대하신 역사는 인간의 방법으로는 꺽을 수가 없는 것이다.…극히 반대가 우심하였던 순천집회에서는 밤이 깊어도 수만명의 회중들은 집으로 돌아갈 줄을 모르고 매일 밤 철야기도를 하였고 참회의 기도 소리는 하늘을 찌르는 듯하였다.”
50년전 그 당시 순천집회에 참석했던 남준우집사(78.광양교회)는 그 때 다니던 순천제일장로교회의 교우들뿐 아니라 순천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집회를 하시는 것을 다 알았다고 했다. “그때야 불의사자, 감람나무라고 했지요. 순천시내에 포스터가 다 붙었어요. 집회에서는 목사들이 나와서 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랬어요. 순천제일장로교회 나덕환목사가 당시엔 권위있는 이였는데 그이도 다 나와서 간증하고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집회를 인도하시며 단상을 치면 불이 팍팍 나가는 것을 보았고 가슴이 후끈후끈했어요. 하나님께서는 안개 같은 것에 둘러싸인듯 했었어요.” 그때 집회 이후 다니던 교회는 더이상 나가지 않았다는 남집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전라북도 임실에서 나고 자라 임실의 장로교회를 다니던 이옥례권사(84.기장신앙촌)는 순천에서 하나님의 집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몇몇교우들과 함께 순천집회장소까지 찾아온다.
“도착한 날 저녁은 철야 기도회였고 다음날 아침 하나님께서 단에 서셨는데, 하나님께서 예배 인도를 하시는 도중 단상을 치실 때마다 단상에서 불이 번쩍이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도중 제 온몸이 후끈후끈해지고 뜨거움이 느껴져 겉옷을 벗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간절하게 찬송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죄 지은 것들이 하나 둘씩 떠 올랐다는 이권사는 “아주 조그마한 일까지 생각되어지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한 없이 흐르는데, 죄 지은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보았지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집회가 열린 시기가 12월 한겨울이라 노천에 천막을 친 집회장이 얼마나 추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은혜받는 그 자리는 일상의 기후와는 다른 온도였던 듯하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