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대가

발행일 발행호수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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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6·25전쟁중 국군 전사자는 15만 여명이었고 미군전사자 5만4천여명을 비롯해 영국군 1천여명, 캐나다군 260여명, 프랑스군 190여명, 터키군 70여명 등이 UN군으로 참전하여 목숨을 바쳤다. 국군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했지만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파병되어 생명을 바친 외국의 젊은이들의 희생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부산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UNMCK)이 조성돼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연이 많이 묻혀있다. 그 중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호주군 장교 케네스 존 휴머스톤 대위와 그의 부인 낸시 휴머스톤의 이야기가 있다. 1950년 그들이 결혼한지 3주만에 남편은 6·25전쟁으로 파병됐고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믿고 기다리는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한 장의 전사 통지서였다. 남편을 그리워하며 평생 혼자 살아온 그녀는 91세를 일기로 영면하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데 그것은 남편 옆에 잠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남편과 아내는 한줌의 재가 되어 60년만에 한국 땅에서 다시 만나 UN묘지에 잠들게 된 것이었다.

6·25전쟁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차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남부러울 것 없던 그들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흘린 피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자유와 번영대신 김정일 치하에서 비참한 생을 이어나가며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기념공원의 ‘Freedom is not free”라는 비명(碑銘)이 새삼스럽다. 현충의 달을 맞이하여 신앙촌소비조합에서는 이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3억 원의 원호성금을 기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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