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의 역설
국제 유가가 끝내 10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1월 초 장중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이 19일(미국 현지시간) 100.01달러로 마감한 것이다. 종가 기준으로 100달러를 초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장중 가격마저 종전 최고치를 경신, 유가 100달러 시대가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12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와 불안감을 더해 준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미국의 경기 위축은 물론 세계경제는 저성장과 고물가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다가가는 양상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아 세계경제의 파고에 큰 영향을 받는 우리 경제 역시 수출이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세계 경제 침체와 맞물린 수출도 걱정이지만 우선 급한 문제는 물가 불안이다. 지난달 생산자 물가가 5.9% 올랐고, 소비자 물가도 한국은행 관리목표(2.5∼3.5%)를 웃도는 3.9%를 기록했다. 시차를 두고 생산·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수입 물가는 9년3개월 만에 최고치인 21.2%나 급등했다. 이미 라면 등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올라 가계의 주름살을 더해주고 있고,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자동차·조선 등 산업계가 압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유가 100달러가 지닌 역설적 혜택도 있다. 그것은 지나친 유가 상승으로 석유의 소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 부존 자원의 고갈이 초읽기에 들어간 마당에 석유를 물쓰듯 빼 써버리면 지구촌의 운명은 그만큼 빨리 끝장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고유가로 석유의 소비가 현저히 줄어들고 그 시간에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시간을 벌어 지구촌의 문명이 좀 더 연장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유가 100달러의 역설적 순기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