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57>성수의 성스러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②
▣ 소금으로 부패를 막으며 성스러움을 연출해오다
우선 현행하는 성수 예식에서 성수를 어떤 식으로 축복하는지 살펴본다. 가톨릭교회의 미사 공식 전례서인 『로마 미사 경본』의 ‘성수 예식’에 따르면, 사제는 성수를 만들 때 축성할 물이 담겨 있는 그릇을 앞에 놓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기도문을 낭송한다. 이때 다음과 같이 죄 사함과 병 치유를 구하는 구절이 낭송된다. “믿음으로 이 성수를 사용하는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온갖 질병과 원수의 함정에서 보호하소서.”
또 소금을 넣기 전에도 소금을 축복한다며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낭송한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예언자 엘리사(구약의 선지자)를 시키시어 물에 소금을 넣어 썩지 않게 하셨으니, (중략) 주님, 소금이 든 이 성수를 뿌리는 곳이면 어디서나 성령께서 함께 계시어, 원수의 온갖 공격을 물리치고 언제나 저희를 보호하게 하소서.” 그 후 사제는 말없이 소금을 물에 넣는다. 그리고 나서 성수채를 들고 자신과 봉사자, 성직자,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린다. 또 성당 안을 두루 다니면서 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확인한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소금을 탄 성수에 병을 치유하고 악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로마 미사 경본이 1962년에 현재와 같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보다 노골적으로 질병 치유와 구마의 힘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면 “이 물이 악령을 쫓아내고 질병을 없애게 하소서.”, “어떤 감염의 기운이나 질병을 옮기는 공기도 남아 있지 않게 하소서.”, “소금이 닿은 모든 것에서 모든 부정함을 없애시고 악령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소서”와 같은 구절들이다. 물에 소금을 넣을 때도 그냥 넣어서는 안 되고 십자가 모양으로 넣어야 했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행위들이 축소 및 간소화된 것은 현대인의 지성이 더 이상 노골적인 주술적 연출을 그대로 용인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와 달리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물에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생명의 근원이자 더러움을 씻어내는 특성을 지닌 물에는 치유와 정화의 힘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고대의 종교들은 일반적으로 강과 시냇물의 물을 성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숭배 의례에서도 입문자는 목욕을 한 뒤, 사제가 깨끗한 물을 뿌려 정화하는 절차를 거쳤고, 로마의 미트라교 신전은 샘이나 하천 가까이에 지어졌으며, 입문할 때 물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구약성경 민수기 19장에 의하면,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에서도 부정함을 정화하기 위해 재를 탄 샘물을 우슬초 가지에 적셔 사람과 사물에 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기독교보다 먼저 성행했던 여러 종교들에서 이미 물을 정화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초기 기독교 내부에서 ‘성수를 뿌리는 행위는 이교적’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3세기의 기독교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저서 『세례에 대하여』에서 성수 의례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영적 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들이 물에 똑같은 효능을 불어넣는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렇게 믿지만) 실은 효능이 사라진 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씻는 행위는 그들이 악명 높은 이시스나 미트라스의 신성한 의식에 입문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을 들고 다니며 뿌림으로써, 시골 저택, 집, 신전, 그리고 도시 전체를 곳곳에서 정화한다. 그들은 아폴로니아 축제와 엘레우시스 축제에서는 물에 몸을 담그며, 이를 자신들의 죄로 인한 벌을 사면받는다 믿는다.”
그런데 4세기경, 세라피온 주교의 《교황 예식서》에서 다음과 같은 축성 기도문이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물과 기름을 축성합니다. 이 피조물들에게 치유의 능력을 허락하소서. 이 물을 마시거나 이 기름으로 바르는 이들에게서 모든 열병과 모든 악령과 모든 질병이 물러가게 하시고, 이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제가 되게 하소서.” 이런 주문을 외움으로써 이교의 물과 차별화하고, 자신들의 물은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와 구마의 힘을 지니게 되었다는 명분을 만든 것이다. 이후 신자들 사이에서 성수가 치유와 구마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부 신자들은 성수가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는데,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는 구내염과 눈병 치료를 위해 성수를 바르고, 광견병 치료를 위해 성수를 마시는 행위가 민간요법처럼 퍼졌다.
성수의 사용이 공식 전례로 제도화된 것은 9세기다. 교황 레오 4세는 “매주 주일 미사 전에 성수를 준비하여, 신자들과 성소에 뿌릴 수 있도록 하라.”며 모든 사제가 매주 일요일 자신의 성당에서 물을 축복하고 신자들에게 뿌리도록 명령했고, 랭스의 힝크마르 대주교도 신자들이 성수를 가져가 집, 밭, 포도원, 가축, 가축의 사료, 심지어 음식에까지 뿌리도록 권장했다. 이로써 성수 예식은 가톨릭에서 공식적이고 정기적인, 또 일상적인 의식으로 완전히 자리잡았고, 신자들이 성수의 영험한 힘을 기대하게 만드는 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오랜 세월 성수를 단순한 상징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성수에 현실적 효과가 있는 듯한 예식을 제도화하고 신자들에게 권장해 왔다. 그렇다면 성수의 권능에 대한 실증 요구에 ‘믿음에 기반한 정화와 치유의 상징’일 뿐이었다는 해명은 2천 년간 이어온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는 파렴치한 변명이자 명백한 기만행위다. 그들의 연출을 믿고 성수를 몸에 바르고, 마시고, 환자와 병실에 뿌려왔던 신자들의 믿음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 책임의 범위는 살아있는 신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가 성수에 부여해 온 정화와 보호의 이미지는 죽은 이의 마지막 자리까지 따라가, 사람의 임종 직후, 장례 의식, 고인의 무덤에도 성수가 뿌려진다. 그러나 질병과 감염 앞에서 철저히 무력했던 성수의 한계는 죽음 너머 영역에서도 똑같은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 성수로는 막지 못한 교황 시체의 부패
1958년 10월 9일, 교황 비오 12세가 이탈리아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에서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사망 직후 당시 추기경단장이던 외젠 티세랑 추기경은 교황의 시신에 성수를 뿌렸고,<자료7> 곧 교황의 장례 준비가 시작되었다. 교황의 경우 시신이 공개 조문되기 때문에, 장례식에 앞서 인위적인 방부 처리가 필수적이다. 인간의 신체는 사망 직후부터 조직 분해가 시작된다. 세포 내부 효소(細胞 內部 酵素)에 의한 ‘자가분해(自家分解,autolysis)’와 체내 미생물 증식에 따른 ‘부패’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제어하지 않으면, 가스가 발생해 몸이 붓고 피부색이 변하며 악취(惡臭)가 난다. 때문에 역대 교황의 시신은 대부분 방부(防腐) 처리되어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돼 있다.

<자료7> 교황 비오 12세 사망 직후 추기경단장이 성수를 뿌리고 있다
비오 12세의 시체에는 사망 직후 성수가 뿌려졌지만, 담당의가 방부 처리에 실패하자 급격하게 부패했다. 공개 조문 시 교황의 몸은 녹색으로 변하며 심한 악취를 풍겼다. 급기야 가슴 부위가 팽창해 터지고 코와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면서 일반 조문은 황급히 종료되었다. (출처: people.com)
온몸의 혈액과 가스를 제거하고 방부액을 주입하는 현대의 화학적 시신 보존법을 ‘엠바밍(embalming)’이라고 한다. 엠바밍은 주로 포름알데히드가 포함된 방부액을 사용해 신체 조직 단백질을 화학적으로 고정하는 시술이다. 포름알데히드는 단백질 분자들을 서로 연결해 구조를 안정화하고, 미생물이나 자가분해 효소에 의한 분해를 막는다. 동시에 살균 효과로 부패 원인균을 제거한다. 시술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동맥으로 방부액을 주입해 기존 혈액과 체액을 밀어내는 ‘혈관 엠바밍’, 두 번째는 배나 가슴 속 빈 공간에 방부액을 직접 채워 넣는 ‘체강(體腔) 엠바밍’이다. 이후 외형 유지를 위한 표면 처리와 복원 작업을 거쳐 고인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하면 방부 처리가 마무리된다. 교황 비오 12세의 사례는 이런 방부 처리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비오 12세의 방부 처리를 맡은 사람은 당시 그의 주치의였던 리카르도 갈레아치-리시였다. 비오 12세는 생전 자신의 시신에서 장기(臟器)를 제거(除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리카르도는 고대의 방식을 따른다며 시체 표면을 오일과 레진(resin) 혼합물로 덮은 뒤 셀로판으로 감싸는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체액, 장기 제거나 혈관 약품 주입 없이 시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으며, 게다가 예수의 방부 처리 과정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곧 치명적인 실패로 이어졌다. 셀로판이 공기 순환을 차단하면서 시신 내부에 가스가 축적되었고, 이는 화학 반응과 혐기성 분해를 촉진했다. 그 결과 시체의 부패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급하게 추가 방부 처리를 시도했지만 부패를 막지 못했다. 결국 제대로 된 방부 처리에 실패한 채 비오 12세의 시체는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 3일간 공개 안치되었다.
비오 12세의 시체가 공개된 지 사흘째 되는 날, 조문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교황의 시체가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교황의 몸은 병든 에메랄드색으로 변하며 심한 악취를 풍겼다. 악취가 너무나 지독해서 교황의 시체를 지키던 근위병들은 구토를 하고 심지어 기절하기까지도 했다. 특히 교황의 가슴 부위가 내부 가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팽창하다가 급기야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코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면서 일반 조문은 황급히 종료되었다. 바티칸은 부패로 훼손된 교황의 시신을 급히 수습해 관에 안치한 뒤, 장례 절차를 그대로 강행했다. 가톨릭에서는 장례 미사 후 ‘망자의 죄 사함과 영원한 안식’을 청하는 사도(赦禱)예절이란 의식을 치르는데, 이 예식에서도 성수를 살포한다. 교황의 시체 위에는 또다시 성수가 뿌려졌다. 그리고 시체를 덮은 관뚜껑 위에도 또다시 성수가 뿌려졌다. 이러한 행위들은 실제로 망자(亡者)의 죄(罪) 사함과 영원한 안식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교황의 시체 폭발 사건은 성수가 과연 신성한 힘을 지녔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준다. 비오 12세의 사망 직후, 그의 시체에는 분명히 성수가 뿌려졌다. 그러나 성수라 믿었던 물은 교황의 급격한 부패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끝내 아무런 효과도 보이지 못하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들 신의 능력이 담겼다는 성수는 교황 시체의 부패를 막을 수 없었던 반면, 인간이 개발한 엠바밍 기술은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망자의 안식은 화학약품으로 썩어갈 몸을 억지로 보존하는 데 있지 않다. 만약 그들의 신이 실제로 질병과 부패, 악과 더러움을 물리치는 힘을 성수에 부여할 능력이 있었다면, 교황의 시신은 화학약품의 힘을 빌려 방부 처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성수의 현실적 능력을 검증하는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객관적 사실로 비추어 ‘성수라 믿는 물’에서 믿음을 걷어내자, 성수는 ‘세균에 오염되어 건강을 위협하는 물’, ‘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을 넣어야 하는 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가톨릭교회 스스로도 ‘성수는 그 자체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의미를 갖는다(holy water, a remembrance of baptism, does not have an effect by itself, but only to the extent to which it is received with faith)’며 현실적 효과가 없음을 인정한 바 있다.<자료8> 그러나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가톨릭교회의 행보는 그 해명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질병과 악의 공격에서 보호해달라 낭송하며 성수를 만드는 모습, 성수채를 흔들며 각종 의례에서 성수를 흩뿌리는 모습은 성수에 실제로 어떤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심지어 오염되거나 오래된 성수를 폐기할 때도 하수구에 버려서는 안 된다는 지침도 있다. 이는 오염된 성수도 여전히 성스럽기 때문에 더러운 하수구에 버리는 것은 종교적으로 무례한 행위가 된다는 논리로, 마지막 폐기의 순간까지 성스러운 연출을 유지하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었다.

<자료8> 성수의 현실적 능력에 대하여
교황청 신앙교리부 산하 신학 자문기구 국제신학위원회에서는 ‘성수는 그 자체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출처: 교황청)
그런데 2024년 8월, 스페인 소리아의 마르티네스 시장은 마을에서 열린 수호성인 축제에서 가짜 포프모빌에 올라타 교황처럼 사람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흉내를 냈다.<자료9> 주목할 점은 코르시카에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수채를 들었다면, 시장이 손에 든 것은 변기 속 오물을 닦는 변기솔이었다. 이는 그동안 가톨릭에서 공들여 연출해온 성수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성수를 신적 권능이 깃든 물처럼 믿게 만들어온 종교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과학과 이성이 주도하는 현대사회에서 ‘평범한 물을 성수라 선언한다고 해서 진짜 성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간단한 사고만으로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들 신의 축복이 임했다는 소금물이 실제로 성스럽다는 근거를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가톨릭교회는 정화와 보호를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을 인질로 잡은 ‘영적 사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료9> 가짜 교황 전용차에서 변기솔로 물을 뿌리고 있는 시장
2024년 8월 스페인 소리아의 시장 마르티네스가 교황처럼 포프모빌을 타고 양동이에 받아놓은 물을 변기솔로 뿌리고 있다. (출처: 데일리모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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