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탐구 <2> 성서(聖書)의 뿌리를 찾아서

세계 종교 탐구<2>
발행일 발행호수 2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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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 아브라함
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출처: https://biblestudynpt.wordpress.com/tag/abraham/)

” 우르에서 새로운 아브라함을 발견하다. “
(“DISCOVERIES AT UR SHOW NEW ABRAHAM”)

<자료1> “우르에서 새로운 아브라함을 발견하다.(DISCOVERIES AT UR SHOW NEW ABRAHAM)”라는 제목으로 우르의 발굴 소식을 전하는 1929년 3월 17일자 뉴욕타임즈 (출처: 뉴욕타임즈 아카이브)

1929년 3월 17일 뉴욕타임즈는 우르의 발굴 소식을 전하며 이런 제목을 붙였다.<자료1>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현재 이라크의 텔 알무카야르)로 기독교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아브라함은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고향인 우르가 고도로 발달한 문명 도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아브라함이 도시의 정착민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에 관한 기사가 뉴욕타임즈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것을 보면 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데,<자료2> 아브라함은 다윗 왕의 조상이자 예수의 조상이며 무함마드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행적은 유대교의 토라와 기독교의 성경, 이슬람교의 코란에 모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이 세 성서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인물인 아브라함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수천 년 동안 모래 먼지에 뒤덮인 역사적인 사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사건이었다.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발굴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국가를 연구했던 독일 학자 프리드리히 델리취(1850~1922)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금은보화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수천 년 동안 방치된 흙더미를 걷어 내고 땅속 깊이 삽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의 식지 않는 관심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다!” (강연집『바벨과 성경 Babel und Bibel』中)

독일과 영국, 미국과 프랑스 등의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발굴에 매달렸던 것은 이 지역이 구약 성경의 무대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커다란 언덕인 줄 알았던 곳에서 모래 먼지와 흙더미를 걷어 내고 나자 벽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사원(지구라트)이 드러나고,<자료3,4> 그곳이 기독교 성경에서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았다.’고 묘사된 바벨탑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냈을 때 기독교 국가들은 흥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자료5>

<자료3> 우르 유적지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기독교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고 한다. 벽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사원인 지구라트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자료4> 지구라트의 항공 사진 (출처: 이스라엘 타임즈)
<자료5> 바벨탑 Pieter Bruegel 作 (1563년)
성경 창세기에는 인간들이 하늘까지 닿도록 높은 탑을 쌓으려 했던 ‘바벨탑’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의 오만함에 분노한 신이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린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자 혼돈 속에 바벨탑은 완성되지 못했고 인간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구라트가 이 바벨탑의 일부라고 추정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자료6> 우르 발굴 현장의 레너드 울리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는 1924년부터 10년 동안 우르를 발굴했다. (출처: 영국 국립박물관)

영국의 레너드 울리(1880-1960)는 성공회 신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신부를 지망하다가 고고학자로 방향을 전환한 인물이었다.<자료6> 독실한 성공회 신자였던 울리는 1924년부터 10년 동안 우르를 발굴하며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는데, 앞서 소개한 뉴욕타임즈의 기사 또한 울리의 발굴 사실을 보도한 것이었다.

<자료7> 우르 왕릉에서 발견된 유물들 왼쪽부터 덤불 속의 염소 조각, 푸아비 여왕의 머리 장식, 메스칼람두그 왕의 투구 (출처: 펜실베니아 박물관)

울리의 발굴팀은 450개에 이르는 우르 왕족의 무덤에서 세련되고 휘황한 유물을 발굴했으며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문명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는 지금부터 약 7,000년 전 시작되어 수천 년 동안 발달했던 수메르 문명으로, 울리 이전에도 수메르 문명이 발굴되고 연구되었으나 울리는 특히 우르의 왕릉에서 다양하고 진귀한 문물을 찾아내었다.<자료7>

<자료8> 우르 왕릉에서 발굴한 모자이크 작품 ‘우르의 깃발 (standard of ur)’ 우르의 깃발은 수메르인의 삶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상자 양면에 각각
평화의 시기와 전쟁의 시기를 나누어 묘사하고 있다. (출처: 영국 국립박물관)
평화의 판(사진 위)을 보면 수메르 문명이 왕족과 귀족, 하층민으로 이루어진 계급 사회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상단에는 술잔을 들고 파티를 즐기는 왕과 귀족들의 모습이, 중간에는 가축과 음식을 가져오는 평민의 모습이, 하단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하층민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전쟁의 판(사진 아래)에서는 전쟁을 이끄는 왕과 전장에서 적군을 잔인하게 물리치는 왕의 군대를 묘사하고 있는데, 기다란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군병들이 칼로 적을 베고 벌거벗은 포로를 묶어 끌고 가는 장면, 마차로 적을 깔아뭉개는 모습 등을 생생히 표현하였다. 군사용 마차를 이용할 정도로 발달된 기술을 가졌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상자를 왜 깃발이라고 하는 걸까? 발굴 당시는
그림들이 조각나 있었기 때문에, 울리는 이 그림들을 보고 군대의 깃대에 걸어놓는 휘장(standard)이라고 생각해서 우르의 깃발이라고 이름 붙였다. 짝을 맞춰서 복원을 해놓고 보니 상자였지만 ‘우르의 깃발’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

무덤에서 발굴한 모자이크 작품(보통 ‘우르의 깃발’이라고 불린다.)은 수메르인의 삶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자료8> 진주와 청금석을 박아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이 작품은 예술적인 가치도 뛰어나고 역사 기록으로도 훌륭한 것이다. 평화의 시기와 전쟁의 시기를 나누어 묘사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수메르 문명이 왕족과 귀족, 하층민으로 이루어진 계급 사회를 이루었으며 군사용 마차를 이용할 정도로 발달된 기술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자료9> 수메르인이 만든 쐐기 문자 점토판과 발굴 장면
이 점토판은 밭과 집을 매매한 내용을 기록한 영수증으로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문자 점토판은 수메르의 종교부터 정치, 문화, 일상생활을 기록해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는 문명의 보고(寶庫)였다. (출처: 위키미디어)
점토판을 발굴하는 장면 (출처:https://www.
ancient-origins.net/ancient-places-asia/sumerian-civilization-0011932)

그러나 수많은 유물 중에서 울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했던 것은 쐐기 문자(설형 문자)로 적힌 문자판이었다.<자료9> 문자판은 수메르의 종교부터 정치, 문화, 일상생활을 기록해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는 문명의 보고(寶庫)였기 때문이다.

울리의 발굴팀이 우르 왕릉에서 출토한 설형 문자판은 굽지 않은 점토판으로 수천 년 동안 눅눅한 땅속에 파묻혀 있어 치즈처럼 말랑말랑한 상태였다. 울리는 흙에 쌓인 문자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들어내어 말린 다음 적절한 온도로 구워낸 후 흙을 털어냈다. 그러면 점토판 자체를 단단하게 보존하면서 작은 문자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존된 문자판은 유럽의 설형 문자 해독가들에 의해 의미가 드러나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설형 문자는 1621년 유럽에 전해진 이후로 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었고, 1923년에 이르러 수메르어를 비롯한 다양한 설형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설형 문자의 해독 또한 유럽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는데, 그것은 구약 성경의 무대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기록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일례로 영국박물관에서 설형 문자 점토판을 해독하던 조지 스미스(1840~1876)는 점토판 입수를 위한 비용이 필요했을 때 성경 연구에 열광하는 영국 언론에 호소해 경비를 지원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발굴된 사실은 뜻밖에도 ‘유일무이한 신의 계시’라는 성경의 권위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자료10> 갈비뼈 이야기가 포함된 수메르 점토판 이 점토판에는 인간 창조에 관한 수메르의 이야기가 시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내용이 기독교의 성경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의 갈비뼈에서 여성이 탄생했다는 성경 내용의 원전이 수메르 점토판에서 포함돼 있다. (출처: 펜실베니아 박물관)

미국인 수메르 학자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1897 ~1990)는 그의 저서『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에서 수메르 점토판에 기록된 ‘딜문’이라는 곳에 주목하고 있다. 딜문에 대해 설형 문자 287행으로 기록한 점토판은 현재 펜실베이니아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딜문은 질병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풍성한 경작지와 초원이 푸르게 펼쳐진 성스러운 낙원이다. 이는 성경 창세기보다 최소 1,000년 이상 앞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을 묘사하는 내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러나 크레이머가 이 내용에 주목한 것은 이러한 유사성 중에서도 특히 남자의 갈비뼈와 여자의 탄생에 관련된 것이었다.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여자인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는데, ‘왜 하필 갈비뼈인가? 왜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은 여자를 만들기 위해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갈비뼈가 적당하다고 여겼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이 수메르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자료10>

다신교인 수메르 종교에서는 모든 신의 어머니인 닌후르사그가 신을 창조해 내는 역할을 한다. 닌후르사그는 엔키라는 남신(男神)이 아팠을 때, 그를 치료해 주는 여신(女神)을 만들어냈는데 점토판에서는 닌후르사그와 엔키의 대화로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나의 형제여, 무엇이 그대를 아프게 하는가?”
“나의 갈비뼈가 나를 아프게 하오.”
“나는 그대를 위해 여신 닌-티를 탄생시킨다.”

(“my brother, what hurts you?”
“my rib hurts me”
“to the goddess ninti I have given birth for you”
이것은 수메르 문자를 영어로 해석한 내용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다.
Samuel Noah Kramer, 『History Begins at Sumer: Thirty-nine Firsts in Man’s Recorded History』, 1981년, 147p.)

‘갈비뼈’에 해당하는 수메르 단어는 ‘티’이며, 이 단어는 ‘생명을 만드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또한 엔키의 갈비뼈를 치유하기 위해 창조된 여신의 이름은 ‘닌-티’이며 이는 갈비뼈의 여성이라는 뜻과 생명을 만드는 여성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보면 갈비뼈와 여성, 생명이라는 복합적인 뜻을 가진 수메르의 단어와 이야기가 성경 창세기까지 이어져 갈비뼈에서 여성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프랑스의 설형 문자 학자인 피에르 셰일과 미국의 동양학자인 윌리엄 올브라이트, 그리고 수메르 학자인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가 제기하고 있는 내용이다.

크레이머에 따르면 흙먼지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수메르 문명이 발견되면서 성경 창세기보다 앞선 최초의 성서가 밝혀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수메르의 종교가 그 후에 나타난 유대교와 기독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증거라는 것이다.

<자료11> 15세기 화려하게 장식된 성경 아가서 수메르의 종교는 성적인 결합을 신성하게 여기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인식은 후대의 성경에도 계승되었다. 기독교 성경 아가서는 남녀의 결합에 관한 내용으로 양식과 주제, 모티브와 어법에 이르기까지 수메르 점토판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출처: 월스트리트저널)

또한 ‘신성한 결혼’이라고 명명된 수메르 점토판 두 점도 다른 종교와의 관련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여신과 왕의 첫날밤을 자세히 묘사하는 선정적인 내용으로, 수메르의 종교는 성적인 결합을 신성하게 여기는 특징이 있었다. 풍요와 생명을 주관하는 여신이 왕과 결합해 풍요로운 결실을 허락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신성한 결혼식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수메르 점토판에는 성행위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기독교 성경의 아가서와 광범위한 유사성을 보여 준다. <자료11>

아가서 또한 남녀의 결합에 관한 내용으로 형식과 주제, 모티브와 어법에 이르기까지 비슷해서 수메르 점토판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신성한 결혼이라는 인식이 후대의 성경에도 계승된 것임을 여기서 알 수 있다. 덧붙여 특이한 점은 크레이머가 성경의 아가서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점토판은 영국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영국과 미국, 독일 등 기독교 국가들의 열망과 기대로 시작된 수메르의 발굴은 뜻밖에도 기독교가 수메르라는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방증하게 되었고, 이는 유일무이한 신의 계시를 자처했던 성경의 기록이 결국 앞선 문명의 영향 아래서 쓰인 인간의 기록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했다.

다음『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다른 종교의 뿌리가 된 수메르의 종교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한다.


‘수메르 문명’이란?

수메르 문명과 우르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 가장 먼저 발달한 문명이자 인류 최초의 문명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이라크 남부의 도시 우르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우르는 기독교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고 한다.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

수메르는 최초의 문자, 최초의 법전을 비롯해 관개 수로를 이용한 농업, 주민 투표, 60진법과 12진법, 바퀴 달린 수레, 맥주 제조 등 인류 최초로 이룩한 문화들이 많았다. 수메르는 다양한 직업과 학문이 발달했으며 현대의 사회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발달한 문명이었다.


‘아브라함 종교’ 비교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들 세 종교는 아브라함의 종교라 불린다.
믿음의 조상이 같은 세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자.


문명과 종교의 주요 연표

문명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연표를 통해 문명이 발달한 순서와 주요 종교의 발생 시점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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