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10> 피의 제사와 성경에 대하여

세계 종교 탐구 <10>
발행일 발행호수 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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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가톨릭 국가 페루에서는 해마다 ‘기적의 주님’이라는 행진이 벌어진다. 화려하게 치장한 예수상을 앞세운 행렬이 지나갈 때 구경하는 사람들은 꽃잎을 뿌리고 사제들은 향을 피워 구름처럼 연기가 피어오르게 한다.

<자료1> 페루의 라스 나자레나스 성당에 있는 예수 벽화 (출처: http://www.generaccion.com/galerias/813/senor-milagros-iglesia-nazarenas) /<자료2> 페루의 ‘기적의 주님’ 행진 화려하게 치장한 예수상을 앞세운 행렬이 지나갈 때 구경하는 사람들은 꽃잎을 뿌리고 사제들은 향을 피워 구름처럼 연기가 피어오르게 한다. 병을 치유하고 위험에서 보호해 준다는 예수상을 보기 위해 수만 명이 몰려드는 이 행진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손꼽힌다. (출처 : 위키미디어)

이 예수상은 라스 나자레나스 성당에 있는 벽화를 모사한 것으로, 신도들은 예수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면 병이 완치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에 ‘기적의 주님’이라 부르고 있다. 병을 치유하고 위험에서 보호해 준다는 예수상을 보기 위해 수만 명이 몰려드는 이 행진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손꼽히는 것이다.<자료1,2>

<자료3> 스페인 마드리드 키벨레스 광장의 ‘키벨레 분수’
서기전 200년대 로마에서는 ‘키벨레’ 여신을 기리는 행진이 있었다. 높은 들것에 실린 키벨레 신상의 뒤를 이어 행렬이 지나가면 꽃잎이 뿌려지고 향을 피우는 연기가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당시 키벨레 여신을 숭배하는 신도들은 여신이 병을 치유해 준다고 믿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신상(神像)을 앞세운 행진은 예수 이전에도 있었는데, 서기전 200년대 로마에서는 ‘키벨레’ 여신<자료3>을 기리는 행진이 있었다. 높은 들것에 실린 키벨레 신상의 뒤를 이어 행렬이 지나가면 꽃잎이 뿌려지고 향을 피우는 연기가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당시 키벨레 여신을 숭배하는 신도들은 여신이 병을 치유해 준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예수교 신도들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둘 다 ‘피의 제사’를 지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키벨레 여신을 받드는 사제들은 황소를 죽여 그 뜨거운 피를 뒤집어쓴 채로 제사를 지냈으며, 예수를 숭배하는 사제들은 예수 피를 마시는 제사를 통해 죄를 씻음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키벨레 숭배는 로마에서 널리 성행했지만 이후 로마가 가톨릭교를 공인하면서 키벨레 신도들은 철저히 탄압받았으며 그 신상을 앞세운 행진과 피의 제사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에 반해 예수 숭배는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 예수상을 앞세운 행진뿐 아니라 피의 제사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예수를 숭배하는 신도들은『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한복음6:55)라는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며 2,000년 동안 피의 제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피의 제사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이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 추적해 본다.

▣ 피의 제사, 피를 통해 속죄함을 얻는다.

<자료4> 성경 레위기의 피의 제사를 묘사한 그림. 성경 레위기에는 피의 제사 방법이 나와 있다. 죄지은 사람이 동물을 제물로 바친 후 그 머리에 손을 짚어 자신의 죄를 동물에게 전가시킨다. 그다음 동물을 죽인 후 일정한 예법에 따라 피를 제단에 뿌리면 그 사람의 죄가 씻어진다고 한다. (출처: https://www.rockofisrael.org/tag/messiah/)

성경 레위기에는 피의 제사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피의 제사는 죄를 씻음 받기 위해 행한다고 하며 다른 말로 속죄제 또는 정결제라고도 한다.

제사 방법은 죄지은 사람이 동물을 제물로 바친 후 그 머리에 손을 짚는데 이때 가볍게 손을 얹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체중을 실어 동물에게 기대야 한다. 이는 자신의 죄를 동물에게 전가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실어 동물의 이마를 짚는다는 것이다.<자료4>

그다음 동물을 죽인 후 일정한 예법에 따라 피를 제단에 뿌리면 그 사람의 죄가 씻어진다고 한다. 죄지은 사람의 신분에 따라 죽이는 동물의 종류가 달라지고 피를 뿌리는 방법도 달라지지만, 피를 뿌려 죄가 씻어진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근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피로써 죄가 씻어진다는 개념은 성경에서 수십 차례 반복될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이 때문에 성경을 ‘피투성이 책, 창세기부터 요한복음까지 피가 철철 흐르는 책’(두란노 서원 홈페이지 中 성경 상식)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7)

그렇다면 피를 통해 속죄함을 얻는다는 개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피와 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기에 피를 통해 죄가 씻어진다는 것일까?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이 개념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현재 이라크와 주변국 일부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는 성경의 무대이자 연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성경의 시대적·공간적 배경일 뿐 아니라 성경의 주요한 개념이 메소포타미아의 문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문헌이 해독되면서 성경이 그 문헌의 주요 내용을 차용해 썼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고, 이 때문에 “성경은 메소포타미아 기록의 번역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학자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 같은 견해에 따르면, 피와 죄를 연관시키는 개념은 메소포타미아 문헌 중의 하나인 <에누마 엘리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문헌은 신들이 인간을 창조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죄지은 신에게 처벌을 내려 피를 흘리게 한 후 그 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죄지은 신의 피가 인간의 몸속에 있다는 개념에 근거해 성경은 죄를 씻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한다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피의 제사까지 성립시켰다고 할 수 있다.

<자료5> 제물을 불에 태워 제사를 올리는 ‘번제’를 묘사한 그림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인물이 제물을 불에 태워 그 연기로 제사를 올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1,700년 후 기록된 성경 창세기에도 노아가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후 번제를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출처:https://www.magnoliabox.com/products/burnt-offering-2547715)

이와 달리 메소포타미아에서 행하던 제사를 성경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있는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 제사를 올리는 번제(燔祭)였다.<자료5> 성경 창세기를 보면 노아가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후 번제를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보다 1,700년 앞서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인물이 제물을 불에 태워 그 연기로 제사를 올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도 성경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종교와 문헌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 메소포타미아 문헌과 성경은 근본적 차이점이 있는가?

메소포타미아 문헌이 일반인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성경과 예수를 신봉하는 신학자와 종교인들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성경이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영향을 받았고 내용이 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학적인 수준은 성경이 훨씬 우월하다는 주장이었다. 지금부터 40년 전인 1980년대 우리나라의 한 종교 신문에서도 이런 주장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와 성경의 노아 홍수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메소포타미아 문헌에서는 신들이 이유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홍수를 일으켰지만, 성경은 홍수를 ‘신의 심판’이라는 깊은 신학적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것이다.(가톨릭신문, 1984.6.10.자)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는 길가메시 서사시뿐 아니라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지우수드라 이야기 등 다양한 문헌에서 발견되는데, 그 문헌과 성경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메소포타미아 문헌 중 하나인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는 인간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심해 신들이 홍수를 내린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이에 반해 성경에서는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신이 대홍수를 내린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두 문헌을 따로 놓고 보면 홍수의 원인이 ‘인간의 시끄러운 소리’와 ‘인간의 사악함’으로 표현돼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문헌에 쓰인 언어를 이해하면 뜻밖의 결론을 얻게 된다.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는 악카드어로 기록되고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됐는데, 두 언어는 같은 셈족 어군(Sem族 語群)에 속하며 자매어라고 불릴 만큼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두 언어를 사용한 나라의 문화력과 국력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히브리어를 사용한 이스라엘은 성경을 집필할 당시 변방의 후진국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지만, 악카드어를 사용한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제국은 최고의 강대국으로 이스라엘을 지배한 나라였다. 일반적으로 후진국은 강대국의 문헌과 문자를 흡수하게 되는데, 성경을 집필한 유대인도 히브리어에 없는 단어를 악카드어에서 차용하거나 악카드어를 히브리어로 번역해서 사용했다.

성경의 노아 홍수 이야기에서 홍수의 원인을 설명하는 부분도 악카드어를 가져와 번역한 것으로, 둘은 같은 단어였다. 악카드어에서 시끄럽게 떠든다는 말과 히브리어에서 사악하다는 말이 동일한 단어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두 문헌을 비교한 학자는 둘 다 홍수의 원인이 모두 ‘인간이 시끄럽게 떠들어 사악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조철수,『수메르 신화』,도서출판 서해문집,2003.,p.123)

이를 보면 메소포타미아 문헌과 성경에서 홍수의 원인이 동일하게 기록되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까지 성경이 가져다 쓴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이 메소포타미아 문헌보다 신학적인 수준이 높다고 하기에는 그 근거가 궁색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성경이 다른 신을 믿는 종교에 영향을 받았으며 인간의 기록을 가져와 썼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한 가톨릭 신학자는 성경과 메소포타미아 문헌을 비교하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성경을 집필한)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은 이웃 종교를 접하고 깊이 성찰했으며 고유한 신앙으로 소화했다. 그 결과 성경을 풍부하게 살찌웠다.”
(주원준, 『구약성경과 신들』,한님성서연구소,2014.,p.5)

성경이 이웃 종교, 즉 메소포타미아 종교의 내용을 받아들여 더욱 풍성해졌다고 설명하는 이 책에서는 성경이 유일한 신의 계시라는 주장을 찾아볼 수 없다. 신의 계시를 자처하던 성경이 어느새 인간의 기록과 같은 자리로 내려왔다면 그것은 전무후무한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에서 피로 죄를 사해 준다는 개념은 지난 2,000년 동안 발전되며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핵심이다. 메소포타미아에 뿌리를 둔 이 개념을 바탕으로 성경은 피의 제사를 확립하게 되었고, 예수 시대에 더욱 파격적인 발전을 이룬 바 있다.

▣ 피의 제사의 발전, 성체성사

예수 이전까지 유대인들은 성경 레위기에 따라 피의 제사를 올렸으며 해마다 속죄일에는 하루종일 단식하며 죄 사함 받기를 갈구했다. 그러나 예수는 제단에 바쳐진 동물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흘린 피가 모든 인류의 죄를 영원히 씻어 준다는 것이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속죄 행위로 모든 죄를 영원히 씻어준다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자료6>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바울’ 1515년 라파엘로 산치오作 예수는 제단에 바쳐진 동물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전파했던 제자 바울은 예수 피로 죄가 씻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역설했다. (출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전파했던 제자 바울은 예수 피로 죄가 씻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역설했다.<자료6> 당시 유대인들은 성경을 철저히 따르며 엄격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율법을 지키고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피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바울의 주장은 파격 그 자체였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이미 죄를 다 씻고 구원을 받았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는 방종과 범죄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일례로 바울이 전도 활동을 다녔던 그리스의 코린토스(고린도)에서 소동이 일어났는데 바울의 설교를 듣고 개종한 사람이 아버지의 후처와 동침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예수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근친상간을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폴 존슨,『기독교의 역사』, 포이에마,2018,p.146)

예수는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 그 십자가의 피를 주기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제사를 창안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한 만찬에서였다. 예수는 떡을 떼어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선언하며 제자들에게 주었고, 식사 후에는 잔을 높이 들어 “이것을 다 마셔라. 나의 피다.”라고 이야기한 후 제자들이 마시도록 했다. 밀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제사 양식을 예수 자신이 직접 정립해 준 것이었다.<자료7>

<자료7> ‘최후의 만찬’ 1562년 후안 데 후아네스作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떡을 떼어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선언하며 제자들에게 주었고, 식사 후에는 잔을 높이 들어 “이것을 다 마셔라. 나의 피다.”라고 이야기한 후 제자들이 마시도록 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먹는 제사 양식을 직접 정립해 준 것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6)

『인자(예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요한복음 6:53~54)

이 구절을 종합해 보면, 예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죄를 씻고 영생을 얻게 되며, 이를 먹지 않고는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근본 이유였고, 예수를 신봉하는 자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행위는 없었다. 그래서 밀떡이 예수의 살이 되고 포도주가 예수의 피가 된다고 믿으며 가장 고귀한 제사 의식으로 지키게 되었다.

<자료8> 성체성사를 하는 모습 예수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죄를 씻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하여, 오늘날에도 ‘성체성사’라는 이름으로 이 제사 의식을 지내고 있다. (출처: http://eucaristiaenelcaminoneocatecumenal.blogspot.com/2018/05/significado-y-tradicion-de-los.html)

죄를 씻고 영생을 준다는 이 의식을 오늘날에도 ‘성체성사’라는 이름으로 계속하고 있다.<자료8>

성경과 메소포타미아 문헌을 비교했을 때 그 내용이 유사하다 하더라도, 바로 이 지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점이 뚜렷해진다.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기록된 제사는 오늘날 행해지지 않지만, 성경에 기록된 성체성사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키벨레 여신을 앞세운 행진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만 예수상을 떠받드는 행진은 수만 명씩 사람들이 모이며 계속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9>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 (1694-1778)
그는 성체성사에서 밀떡과 포도주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 것을 “수리수리 마수리 식의 요술 같은, 이름만으로도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성체성사에서 “단 몇 마디 말로 순식간에 예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제나 수도사가 일반 신도들에게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부각되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출처: 위키피디아/ 볼테르,『광신의 무덤』,바오,2019.,p.226.)

다만, 앞에서 소개한 대로 페루에서 병 치유의 기적을 일으킨다는 ‘기적의 주님’ 행진은 작년과 올해 취소되었다. 이 행사는 17세기에 시작돼 400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왔는데, 코로나19 감염병으로 페루의 사망자가 세계 최고를 기록하면서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기적의 주님 원본 벽화가 그려진 라스 나자레나스 성당에서도 발열 체크를 거치고 2중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에 한해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니 기적의 예수를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예수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기적이 일어남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성체성사에서 밀떡과 포도주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기적이 지금도 계속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적을 믿는 종교에 대해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1694~1778)는 이런 말을 남겼다.<자료9>

“우리는 아직도 눈을 뜨지 못했다. 아니 눈을 반쯤은
떴으나, 그 불길한 우상을 아직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기독교에서 바울의 영향력

바울은 오늘의 기독교가 있게 한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신약성경 27개 문서 가운데 그의 서신이 13개에 달할 정도로 기독교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크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예수가 죽은 후 환상을 통해 예수를 보고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다. 바울은 이를 예수의 계시라 주장했지만, 증거라고는 바울 자신이 기록한 서신들 뿐이었다. 예수를 직접 만나지 못한 바울이 기독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 예수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지만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다.

예수가 죽은 후 그를 따르던 열두 제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십자가에 매달려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예수가 구세주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미 죽어 없어진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 어부였던 예수의 제자들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신학 체계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었다. 이때 합세한 인물이 바울이었다.

바울은 그리스어 수사학과 웅변술을 익혀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바울은 전도하면서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정치적 사회적 이유에 대해서는 아예 설명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대신에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바울은 예수의 역할과 지위, 구원의 방식 등 기독교의 중심 교리를 구축했고 이로써 사멸될 위기에 몰렸던 기독교는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역사가들이 “예수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지만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바울이 명령한 ‘거룩한 키스’가 가져온 결과

‘바울’ 1482년 바르톨로메오 몬타냐作 (출처: smithsonianassociates.org)

키스에 관한 내용은 신약과 외경에 두루 등장한다. 일례로 낯선 여인이 예수의 발에 키스를 멈추지 않았던 일과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자주 키스했다는 내용 등이다. 그중 ‘거룩한’ 키스는 유일하게 바울만이 기록하고 있다. 키스하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바울의 독창적인 설명이었다.

바울이 언급한 거룩한 키스는 모두 “-하라”의 강한 명령형으로 기록돼 있다. 즉 거룩한 키스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 사항이었던 것이다. 교인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듯이 거룩한 키스로 문안했다.

이처럼 교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키스를 나누다 보니 잘생기고 아름다운 교인은 여러 차례 키스를 반복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통과하는 일도 생겨났다. 때문에 한 사람에게 키스가 집중되는 것을 금하는 규례가 제정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 신자가 외간 남자와 입맞추는 것을 보고 그 남편이 의혹을 품는 등 스캔들이 우후죽순처럼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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