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불법방영사건(10)박마리아, 김경래 그리고 탁명환⑤
'두 얼굴'의 종교 연구가로 낙인‘지원금’에 영향받는 탁명환의 이단 시비, ‘두 얼굴’의 종교 연구가로 낙인
탁명환의 ‘직업적인 종교연구가’ 행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이른바 ‘통일교 사건’과 박모 목사 ‘사진 조작사건’으로 그는 기성교계에서도 완전히 신뢰를 잃게 된다. 통일교 사건이란 1978년 그가 ‘이단 사교’의 대표로 매도하던 통일교로부터 ‘지원금’ 300만원을 받고서 태도를 돌변하여 5대 일간지에 대서특필 사과광고를 낸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장로회 평동노회 김만규 노회장 이름으로 탁명환에 대한 규탄성명이 발표되는 등 탁명환은 기성 교회로부터도 ‘이적 행위’를 한 ‘두 얼굴’의 종교 연구가로 따돌림과 공격을 받기에 이른다.
또 탁명환은 대성교회 박모 목사와 친밀한 관계였으나 박모 목사가 지원금을 끊자 분개한 나머지 박모 목사를 매장하려고 시도하였다. 박모 목사가 여자 교인들과 찍은 사진을 구하여 주위의 사람은 오려 내고 옆에 있는 여자와 단둘이 찍은 것처럼 조작한 후에 박모 목사가 스캔들이 있다고 자기가 운영하는 잡지에 공개했던 것이다.
교계의 탁명환 비판가이며 시인이기도 한 교회여론조사연구소 총무 김덕환씨는 『탁명환 그는 과연 박수무당인가?』(1983년 9월 8일 정원문화사 간), 『탁명환 그는 과연 가롯유다인가?』(1983년 정원문화사 간) 라는 탁명환 비판서를 저술한 바 있다. 김덕환씨는 탁명환 비판서에서 탁명환의 본색은 사교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교회, 목회자 등의 약점과 비리를 파헤쳐 그들을 괴롭혀 온 인물이며 `한국교회에 가장 큰 악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그를 비판하고 있다.
`탁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월간 『현대종교』에서 광고 등을 지원해 줄 때는 침묵을 지키다가 그것을 끊으면 가차없이 이단으로 몰아 부치며 인신공격과 비방 모략을 일 삼는다. 탁씨는 누구의 비리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등의 구실로 공갈배로 돌변하는 것이다.
누가 탁씨의 치졸한 글과 거짓증거를 받아 주겠으며 누가 탁씨의 주장과 발표를 믿어주겠는가? 그는 오로지 밥벌이를 위하여 사건을 조작하여 멀쩡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탁씨의 종교연구 동기는 자기도취와 허세와 감정적 갈등으로 인한 히스테리로 점철되어 있다.
탁씨의 생활이념은 어떠한가. 이에 대해 모 인사는 20년간 사이비 기자노릇과 교수를 사칭하며 적자투성이의 종교잡지를 운영하는 등 뚜렷한 직업 한번 가진 적이 없이도 이제까지 연명해 오고 있는 것은 종교계의 등을 쳐서 피를 빨아온 기생충과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라고 호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를 가려내고 그들의 비리를 폭로한다는 명분아래 탁명환이 자행한 좌충우돌식 ‘종교 비판’ 행태뿐만 아니라 그의 문란한 사생활 문제로 그는 점점 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종교인’이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는 그의 여자편력에 대하여 김덕환씨는 그의 비판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는데 J 모 여인, 고아원의 K양, 수행 비서 라고 태우고 다니던 혜은이, 대구 양말공장 아가씨 등에 대한 소문들을 거론하고 그들이 탁명환의 여인들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1983년 9월 7일 오후 5시경 필자(김덕환)가 국제 종교문제 연구소 사무실에 막 들어 섰을 때 한 여인이 사무실을 안절부절 왔다 갔다 하며 ‘그 불결한 사람하곤 일을 못해. 설마 그럴 리가’ 라고 말하면서 ‘그 년이 있는 곳이 어디냐 신지도가 어딘데 그 년을 거기다가 숨겨뒀어. 탁씨가 그곳으로 원고 쓴다는 핑계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무실 직원들에 의하면 그 여자는 탁명환이 자본주 사장으로 고용한 사람인데 신지도 고아원에 있는 K양의 문제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K양 뿐만이 아니라 탁 소장이 강연하러 다닐 때 자가용에 태우고 다니던 혜은이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탁 소장 부인도 탁 소장과 혜은이의 관계를 알고 그녀를 만나면 얼굴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 후 십여 일이 지나서 필자는 부흥사 H목사에게 탁 씨와 대구 양말공장 여자와의 관계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대성교회 교인 임홍천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직접적인 이유도 어떤 종교와의 교리적 갈등 때문이 아니라 어떤 여인과의 불륜현장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종교 연구가’의 말로로서는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대성교회 교인 임홍천이 탁명환을 살해하게 된 경위와 전말은 다음과 같이 밝혀졌다.
임홍천은 군을 제대하고 대성교회에서 잔 심부름을 하면서 장차 목회자를 꿈꾸던 충직한 청년이었다. 그는 탁명환이 자기 교회 목사의 스캔들을 퍼뜨리며 괴롭히는 것을 보고 의협심이 발동하여 탁명환을 혼내 주려고 결심 하게 된다. 그는 탁명환을 미행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뜻밖에도 탁명환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탁명환 살해사건 수사 팀장이었던 송경엽 형사에게 임홍천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처음에는 죽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혼만 내 주려고 했지요. 그러나 종교인의 가면을 쓰고 남을 비판한다는 자가 정작 자기는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어처구니 없는 현장을 목격하였을 때 ‘이런 자는 죽어 없어져야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죽였다는 현실에 대해 유가족과 사회에 죄송스럽게 생각하지만 자신은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신학도로서 하늘의 심판을 대신한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하고 미련이 없습니다. 그날 탁명환이 여자와 밀회하는 현장을 목격하지만 않았어도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계속하여 임홍천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살펴보자. 임홍천의 진술은 탁명환을 미행하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는 데서부터 시작 된다.
`저는 탁명환의 『현대종교』 사무실이 그 건물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라 우선 중간부분의 출입문에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채 5분도 되지않아 탁명환이 젊은 사람과 같이 나오더니 탁명환은 곧 들어가고 젊은 사람은 차를 손보고 있어 곧 탁명환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기다렸습니다. 탁명환이 다시 나오자 젊은 사람이 운전대를 잡고 탁명환이 조수석 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제 차로 달려가 탁명환의 차를 뒤따라갔습니다.`
여기서 젊은 사람이란 탁명환의 아들 탁지원이었다.
`탁명환이 조수석에 타니 차가 출발을 하였는데 탁명환이 탄 차는 마치 누가 미행을 하는 것을 따돌리려는 듯 똑바로 가지를 않고 직진과 좌회전 우회전 유턴을 반복해 가며 진행하다가 포장마차가 많은 시장 골목길 같은 데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어딘가를 갔다 오더니 이번에는 탁명환이 운전을 하여 프라자 빌딩 앞에 차를 세우고 젊은 사람은 차에서 내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임홍천의 미행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