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발행일 발행호수 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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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인천전도관에서 나오시는 하나님과 교인들(1956년/맨위), 원효로 구제단 예배 광경(1956년/아래 왼쪽), 서울 이만제단 예배 광경(1957년)

▶ 심령을 건지는 전도
제단에 다니면 다닐수록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는데 그 기쁜 마음은 세상 무엇에도 비길 데가 없었습니다. 기쁜 마음을 나눠 주고 싶고 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여겨져, 몇몇 교인들과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찬송을 부르며 노방전도를 다녔습니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젊은 부인과 이야기하며 “우리 제단에 와 봐. 얼마나 기쁜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기쁜 마음이셔. 이 기쁜 마음은 천하를 주고도 못 바꾸지.”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한번 가 보겠다고 나섰다가 그 후 계속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난폭했던 사위가 전도관에
다니며 달라진 모습을 보고
장모도 전도되어 나오게 돼

그 부인의 남편은 성격이 매우 난폭한 분이었는데 하루는 그 집에 관장님을 모시고 교인들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예배드린 후 몸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고 하더니 그동안 잘못한 일에 용서를 구하며 기도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그때부터 제단에 다니며 제일 먼저 새벽예배를 드리러 왔고 전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 후 아저씨의 장모도 전도관에 나오게 됐습니다. 그 할머니는 20년 동안 성결교회에 다녔고, 성결교회 한 곳을 지은 분이기도 했습니다. 난폭했던 사위를 성결교회로 전도하여 새사람을 만들어 보려고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됐는데, 사위가 전도관에 다니며 달라진 모습을 보니 전도관에 뭐가 있긴 있나 보다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기쁨
저는 인천전도관에 다니며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한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하루도 전도하러 나가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었습니다. 좀 더 많은 수를 전도하기 위하여 전도관이 없는 곳을 찾아가 개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곳저곳 다녔는데, 한번은 집사님 두 분과 함께 신천리 마을(현 시흥시 신천동)에 갔을 때 일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전한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하루도 전도하러 나가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었습니다”

신천리에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찬송을 하다 말고 “뭐가 이렇게 꿀꺽꿀꺽 마셔지지?” “뭐가 이렇게 달고 시원하게 넘어가지요?” 하고 서로들 얘기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생수 은혜가 연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에는 생명물 한 컵씩을 마시라고 주었습니다.

그때 폐병에 걸린 아가씨가 두 명 있었는데 다음 날 와서 하는 얘기가 “소화를 못 시켜 죽도 못 먹고 미음만 겨우 삼켰는데, 예배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먹고 심하게 나오던 기침이 멎었다.”고 하였습니다.

신천리 마을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모여들자 가정집은 좁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어 산 중턱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예배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저희가 신천리 마을에 머무는 몇 개월 동안 생명물을 마시고 많은 환자들의 병이 낫는 기사이적이 일어났고, 그 동네 사람들이 많이 전도되었습니다.

▶ 생명물의 권능으로 전도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받은 자는 전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저는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강화제단에서 전도하라 하시면서 200명을 부흥시키면 직접 와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강화제단은 산꼭대기에 아주 크게 있는데 전도사님 한 분에 교인들은 11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200명을 전도하나 걱정도 되었지만 열심히 전도하러 다니던 중, 하루는 강화제단 박두감 집사님이 산 속에서 넘어져 크게 다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부르러 와서 가 보니, 무릎이 완전히 부러져 건들건들거리고, 박 집사님은 다리를 붙들고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저는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명물을 부러진 다리에 계속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는데, 온몸에 불이 확 하고 오는 느낌이 들면서 후끈후끈해지더니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박 집사님한테 일어나 보라고 하니, 벌떡 일어나면서 “나, 다리 붙었어. 다리가 나았어.” 하며 좋아서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동네 사람들을 향해 생명물을 보여 주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물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겠냐고 했더니, 모두 “믿을 거예요.” 라고 했습니다.

그때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단에 왔고,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도 많이 몰려와 몇 개월 만에 300명이 넘는 수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제단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넘쳐서 제단 마당 너머까지 앉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오셔서 안찰을 해 주시고, 피아노도 보내 주셨습니다.

‘반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드릴 때 향취가 콧속에
진동하며 진하게 맡아져

▶ 나도 반사가 될 수 있을까?
일요일 원효로전도관에 갔을 때였습니다. 반사들이 주일학생을 데리고 분반 공부를 하는데 반사 선생님이 질문하면 아이들이 샛별 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대답했습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고 ‘나도 저런 반사가 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 자격은 없지만 반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기도드렸습니다. 간절히 기도드릴 때 순간 향취가 진동하는데 콧속으로 향기 덩어리를 넣어 주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주일학생이 많이 늘어나 반사 선생님을 충원하려고 합니다. 지원자는 자리에 남아 주세요.” 하고 광고를 했습니다. 저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지원자들과 자리에 남아 ‘반사를 허락해 주세요.’ 하고 계속 기도드렸습니다. 잠시 후 박 장로님께서 오시더니 지원자 모두에게 안찰해 주셨고, 토요일마다 반사들 공부 모임이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들 잘 키우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 귀한 길을 가는 우리
1957년 이만제단에 다니며 직조 공장에서 일할 때 직원들을 전도하게 됐습니다. 성격이 활달하고 기성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직원을 전도했는데, 이 직원은 한번 전도관에 다녀온 후로 기숙사에 있는 직원들을 전부 찾아다니며 전도관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제단에 다니는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일요일이면 기숙사에서 나와 이만제단으로 가는 행렬이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 안수 받을 때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하더라고 이야기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2013년 1월 축복일에는 신앙촌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직조 공장에 다닐 때 이만제단으로 전도한 후배였습니다. 서울에서 제단에 다닌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 서로 손을 붙들고 한참을 반가워했습니다. 나이가 20대와 10대일 적에 처음 만났는데 어느새 80대와 70대가 되었다며 함께 웃었습니다. 이 귀한 길을 열심히 걸어가자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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