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는 설교는 인간의 차원에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차원에서 하늘세계 창조 단계를 말하는 고로, 이건 세상에서 들어 보지 못하던 말을 하려니까 어떤 타임이 돼야 뼈대만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게 되죠.
그런고로 하늘세계에서 되어지는 것을, 여러분들이 영원토록 요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면 영원무궁토록 하늘세계 것 말해 줄 수가 있어요.
세상 교리는, 세상 인간은 하나도 몰라요. 그런고로 천국에 보내 준다 하면서 천국에 가서 그 어떠한 구성으로, 어떠한 구조로 되어져 있는 그 형체를 모르고, 어떻게 돼서 영원히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은 이유는 뭐인지, 여긴 100년도 못 살아 죽는데 거기에는 영원무궁토록 죽음이 없이 산다는 그 이유는 뭐이고, 어떠한 걸 먹고, 여기같이 위장이 있냐 없냐 하는 이 모든 것을 창조주가 아니면 알지를 못해요.
거기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그 조건이 어떻게 돼서 화장실이 없는지, 그 구조를 인간은 알지를 못해요. 그런고로 세상 교리에 하나도 나타나 있지 않고, 하늘세계에 가서 움직이는 걸 도저히 몰라요.
불교는 극락세계 간다고 하는 거예요. 극락세계 가서 뭘로 구성된 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걸 표시된 게 없어요.
그럼 기독교에 예수의 가장 유식하다는 제자가 사도 바울이에요. 그 유식하다는 사람인데 허풍 떤 게 있어요. 자기가 삼층천엘 갔다 그거에요. 사도 바울이 『비몽사몽간에 삼층천(천국)에 갔다』(고린도후서 12:2~3). 가 봤으면 쥐꼬리만치도 본 걸 그대로 표시해야지, 『그건 말할 수 없다』(고린도후서 12:4) 하는 게 결론이에요. 이거 허풍이에요. 보지 못하고 본 것같이 한 거예요.
못 봤다 하면은 그가 자기가 체면이 안 서니까 본 것같이 하면서 허풍을 떤 거예요.
그게 전체 전 세계의 종교예요. 그대로 그 교리에 드러난 게 그 세계 움직임이 드러나야, 그 세계 움직임을 알아야 그 세계 가게 해 줄 수 있는 조건이 서겠지요? 모르고도 가게 할 수 있나요? 가게 할 수가 없게 돼 있어요.
그럼 하늘세계에서 움직이는 걸 잠깐만 말하죠.
거기에는 영원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아요. 그럼 왜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아도 되냐 하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 밤샘해 보면, 한 이틀 새워 놓으면 뭐 그저 흐느적흐느적, 근드렁근드렁 하며 자꾸 졸죠. 그런데 어떻게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고 견디냐 이거예요. 그 이유를 알아야죠.
하늘세계의 존재와 땅의 존재는 완전히 달라요.
첫째가 재창조예요. 없이하곤 또 창조하지요.
자꾸 새로이 되지 않으면 영원토록 살 수가 없어요. 하늘세계에는 신으로도 표현하기가 어렵게 아름답지요. 그러나 그 얼굴 그대로 살면 10년도, 10년 아니라 1년도 가지 못해 벌써 지루하게 돼요. 그런고로 재창조라는 게 되는 거예요. 기도 막히게 표현할 수 없는 하늘세계 아름다운 그 모습이지만 더 기도 막히게 아름다운 걸로 바꿔지는 동시에 거기에 그 광채가 나게 돼 있어요.
그러면 ‘내 얼굴은 요렇게 되면 좋겠다.’하는 그 마음보다 더 앞선 걸로 착착착착 밸런스가 맞춰져 바뀌어져 나가죠. 그런고로 얼굴 변하는 것만 봐도, 영원무궁토록 그것만 봐도 지루감이 없게 돼 있어요.
그렇게 아리따운 얼굴 그대로 전체가 변하는, 바꿔지는 상태에서 눈이 그대로 있지 않고 더 빛나고 더 아름다운 눈이 바뀌어요. 눈이 아름다운 걸로 화하는 고로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고 지루감이 없게 돼 있어요.
눈만 아름다운 걸로 바뀌어지는 게 아니고 시각의 도수가 높아져 가요. 시각의 도수가 높아 가는 고로 천태만상의 것을 그대로 1초만 둬 두면, 창조를 안 하면 그 눈이 보기가 싫어서 볼 수가 없게 돼 있어요.
끝도 한도 없는 그 가짓수가 전체 주위 환경이 화해 나가죠. 그게 한 번이라도 빠지면 결함, 그건 천국이 아니에요.
코가 모양이 예쁜 걸로 자꾸 바뀌어지는 것뿐만이 아니고 취각의 도수가 자꾸 높아 가요. 그런고로 우주의 향기가 1초만 창조한 그 냄새 그대로라면 냄새 맡는 도수가 높아 가는데 향기 창조한 그대로 있으면 구역질이 나서 맡을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그 우주의 향기를 재창조를 해요.
그런고로 거기에는 어떤 보화를 주고라도 쉬쉬한 냄새, 쿠린 냄새, 똥 냄새, 영원무궁토록 가도 맡으려야 맡을 길이 없어요. 향기뿐이에요.
거기에는 기쁨과 즐거움 이외엔 없어요.
그것도, 기쁨도 감수(感受)하는 도수가, 감각이 자꾸 높아 가는 고로 같은 기쁨 가지고는 즐거울 수가 없게 돼 있어요. 즐거움이 빠지는 시간이 없어요. 그러게 영원무궁토록 살지, 지금 이 세상 같으면 어떻게 살아요? 못살아요. 그러니 이게 천국이지요.
내가 설계한. 틀림이 없어요. 누구도 말할 수 없어요. 한 토막을 누구도 꾸며서 말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럼 예수 보세요. 사도행전 1장에 『500명이 예수가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걸 본 거와 같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사도행전 1:9~11) 했는데는 그 항공기가 가는 층만도 못 가는 예수의 천당이라는 건 거기예요?
여객기 타 본 사람이면 새까만 구름에 천둥을 치며, 그 소낙비가 악수 같이 쏟아지는데도 항공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점점 허연 구름이 나타나다간 구름층 위에 올라가면 해가 쨍쨍 뜬 맑은 하늘 뜨지요? 구름이 가는 것은 한계가 있지요?
세상의 인간들이 그거 모방한 게 많아요. 그래 가지고 대개 천사, 선녀, 신선 뭐 하면서 그려 놓은 거는 전부 구름 같은 그 위에 이렇게 서 있지않아요? 그거 하나만 봐도 예수가 그게 신의 하는 일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신격으로 다 알아야 되는데 요 구름층 위에를 모르는 거예요. 그게 인위적이라도 그런 너절한 글은 없다 하는 게 곧 그거예요.
그럼 이제 예수 설계한 천국은 묵시록에 다 있어요. 그건 천국이 아니고 지옥 중의 지옥이다 하는 것 내가 말하는 거예요. 『영원토록 서서 할렐루야 영광 돌리고 찬송만 하면』(묵시록 7:12) 아무리 신이라도 끝도 한도 없는, 영원무궁토록 서서 있으면 그게 신이라도 벌서는 중에 그 이상 벌이 없어요. 그런 놈의 천국이라면 여지없다 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설계한 천국의 그 형체는 창조력이 없는 고로, 땅의 물질 가지고 전부 장식을 했다 그거예요. 창조력이 있으면 땅의 물질 가지고 안 할 텐데, 창조력이 하나도 없어요.
『열두 진주 문이요, 홍보석이요, 녹보석이요, 홍마노요』(묵시록 21:19~21) 세상 보석이에요. 그걸 가지고 잔뜩 장식만 한 것같이 만들어 놓은 그런 천국이면 너절해요.
『12,000리의 성 길이와 사방 척수가 나와 있고, 그 성의 높이는 상당히 높고』(묵시록 21:16) 색깔이 다른 걸 알록달록하게 딱 서낭당, 그 노랗고 파랗고 칠한 거와 같은 그런 문이 열두 개 빗장이 꽂혔으니 그게 천국인가요?
도적놈이 한없이 있는 고로 높은 성이 필요하지, 도적놈이 없는, 마귀가 다 박살이 된 천국이야 빗장은 무슨 필요가 있고 담장은 무슨 필요가 있나요? 그런 게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그 세계 사는 것도 모르며 그거 뭐 추상적으로 뭐 그럴 거다 하는 것 가지고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거 거기의 움직임을 전체 알아야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 수 있어요. 근본 정확한 걸 벗기죠.
하늘세계에는 흙이 없어요. 흙이라는 것은 썩어지는 게 나오게 돼 있어요.
창세기 1장이 흙으로 빚었다는 것부터가 그거 엉터리예요. 어떤 물질 쪼꼬방살이(소꿉질)같이 흙을 빚어 가지고 그걸 영생하는 자 만들었다는 그거부터가 허풍이에요. 하늘세계 영원히 사는 건 거긴 흙이 없는 곳이죠.
흙으로 구성된 자는 반드시 썩게 되어 있는데 그래 아담은 흙으로 빚었으니 영생의 인간이 아닌 거예요.
천국은, 영원한 세계는, 아까 영원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은 그 원인을 말했지요. 그런데 영원한 세계는 잠이 없는 곳인데 아담은 쿨쿨 잤으니 그 허풍이에요. 그 창세기가 허풍인 걸 아세요. 구원을 도저히 모르는 소리입니다.
하늘세계에는 구조가 완전히 달라요. 이거 육신은 썩어지게끔 돼 있어요. 이틀 만이면, 여름 무더운 날이면 송장내가 나죠. 이건 썩어지게끔 창조를 했어요.
아무리 신사고 숙녀고, 그 미남 미녀 해도 그거 위장에서 8시간 만에 똥이 돼 가지고 그 장을 통과해 가지고, 어느 타임이 지나면 항문으로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배 속에는 똥이 가득 차 있는 너절한 구조예요. 거긴 썩지 않는 세계예요. 완전히 구조가 달라요.
거기는 피가 없어요. 영원무궁토록 가도 피 한 방울, 피가, 심장이 없고 혈관이 없어요. 혈액이 있으면 거기도 썩어 죽어요. 피 가진 자는 죽지 않는 자 없어요. 피가 썩는 근원입니다.
그러게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 준다는 게 허풍 중의 허풍인 걸 말하지요. 인체에서 뼈, 힘줄, 껍질, 살, 피 다섯 가지 중에 어느 게 제일 빨리 썩어요? 피가 제일 먼저 썩습니다. 썩는 근본이 그거예요.
그럼 제일 썩는 근원 가지고 어떻게 썩지 않는 걸 입겠냐 하는 거 그거 허풍 중의 허풍이에요. 예수의 피 여지없다는 걸 까 버리기 위하여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고린도전서 15:54) 하는 것 삽입했어요. 고린도전서 15장에 있습니다. 썩지 아니함을 입어야 되게 돼 있어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돼야 된다』는 그 생명은 하나님의 신이요, 성신이에요. 완전히 신의 구성체로 바꿔져야 된다는 걸 표시한 거예요. 요게 아주 포인트입니다. 만 가지가, 바로 예수 믿는데 피 가지고 구원 얻는 줄 아는데 구원이 없어요. 구원 없다는 결정적인 설교예요.
기성교회 소경 만들어서 끌고 가는 것같이 소경이 소경을 끌고 가, 같은 구렁텅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좋은 데 가는 줄 알고 가다 지옥 가면 안타깝지 않느냐 그거야. 창세기 허풍인 거, 예수의 보혈로 죄 씻어 준다는 것, 제일 썩는 근원 가지고 썩지 않을 걸 입혀 준다는 이게 허풍이면 예수 구원이 있어, 없어? 구원이라는 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