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 행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발행일 발행호수 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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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식당 앞 분수대의 눈이 온 모습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의롭고 선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을 행하며 귀한 은혜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테마로 보는 신앙체험기 이번 편은 은혜의 기쁨 안에서 생활하기를 소망하는 천부교인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신앙촌에 들어간 후로 늘 웃음이 나

1957년 4월에는 이만제단에서 개관집회가 열렸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열흘 동안 제단에는 밤새워 찬송하거나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향취가 진하게 맡아지고 안개처럼 뽀얗게 은혜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참 놀라웠습니다.

한번은 철야하며 기도드릴 때 아주 좋은 향기가 ‘확-’ 하고 맡아졌습니다. 주위에 화장하거나 향수 뿌린 사람이 없는데도 그 향기는 순간순간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또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를 때는 갑자기 소나기를 맞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빗줄기는 하나도 안 보이고 옷을 만져 봐도 보송보송할 뿐 전혀 젖지 않아서 어떻게 된 일인지 너무 신기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은혜를 직접 체험하고 보니 ‘하나님 은혜는 이렇게 확실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57년 가을부터는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은혜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신앙촌에 꼭 들어가고 싶었는데, 전도사님이 건설대로 추천해 주셔서 1958년 1월 1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건설대에서 일을 배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몹시 피곤해서 그만 들어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식사하는 동안 피곤이 점점 사라지더니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것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가뿐하고 기운이 솟아올라 다시 현장에 나가 신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저녁 식사 시간에 하나님께서 건설대 식당을 향해 한참 동안 축복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주셔서 그렇게 몸이 가벼웠구나!’ 하며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신앙촌에 들어간 후로 늘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웃에 사시는 어른들은 저를 보시고 “너는 언제 봐도 웃는구나.” “신앙촌이 그렇게 좋아?” 하며 같이 웃곤 하셨습니다. 건설대에서 땀 흘려 일할 때도, 제단에서 찬송을 부를 때도, 신앙촌 거리를 걸을 때도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샘솟는 것 같았습니다. ‘찬송가 가사에 있는 것처럼 주 안에 행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효순 승사/기장신앙촌

어떤 일에서도 느끼지 못한 충족감 느껴

‘누가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줄 수 있을까?’

1974년 서른아홉 살에 문득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청주에서 남편과 같이 사업을 했습니다. 돈도 잘 벌고 아들 삼형제도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를 잘해 남부러울 것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아등바등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남한테 인정받고 열심히 살아도 돌아서면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허무감이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 사는 사촌동생이 와서 전도관에 가니 기쁘고 좋다고 열심히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고 저는 전도관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청주에 있는 전도관을 수소문해 찾아가니 전도사님이 성신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성신이 진짜 있나 의심하면서도 말씀이 조리 있고 분명해 몇 번 더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또 교인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며 축복일 예배를 드리러 기장신앙촌에 가자고 하니 뿌리치기 어려워서 축복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기장신앙촌 대예배실에서 예배를 마치고 일어나 영광을 돌릴 때였습니다. 아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동안 감정이 메말랐던 제가 웬일인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몸이 무척 가볍고, 마음도 언제 그렇게 괴로웠나 싶게 편안해졌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면 참 좋다 하던 사촌동생이 떠오르며 ‘이래서 전도관에 다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일요일마다 청주전도관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자유율법을 처음 배운 날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짓지 않고 자유율법을 지키면 의로운 자 되어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의 소망은 결국 헛된 데로 돌아가는데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말로 표현 못 할 기쁨이 샘솟아 그 나이 되도록 그렇게 기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가슴이 벅차올라서 ‘이 길을 찾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을까?’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성신을 받으면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말씀을 듣고 귀한 성신 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또 전도관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빠지지 않으려고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교인들을 보니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이 제일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당장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잘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 신앙촌 간장을 차에 싣고 나갔습니다. 신앙촌 제품을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보람을 느꼈고, 하루 일을 마치고 올 때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이전에 어떤 일에서도 느끼지 못한 충족감이었습니다.

유정자 퇴임교역자/기장신앙촌

진정으로 가치있는 길을 알리고 싶어

1962년 정도 되었을 무렵,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이 길이 참된 구원의 길임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릴 때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기쁨과 평안은 이전에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나와 같은 사람을 전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길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논산에서 1년 정도 지낸 후에는 서울로 돌아와 홍제동제단에 다니며 주일학교 반사로 활동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틈틈이 주일학생을 돌보며 전도를 했으나 날이 갈수록 전도에 온전히 매진하고 싶다는 갈증이 커져 갔습니다. 전도사가 되면 전도에 전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물 여섯 살에 전도사 교육을 신청했는데, 30세 이상이었던 지원 자격보다 어렸지만 다행히 청강생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만제단에서 전도사 교육을 받으며 하나님 말씀과 성경을 토대로 차근차근 배워 나가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계에 전하노라.” 하는 찬송과 같이 전도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으면 저절로 하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개월의 교육이 끝난 후에 저는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전도사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느낀 기쁨은 어떻게 다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입 전도사들을 격려해 주시며 “각오와 결심만으로 일이 되지 않는다. 실천하고 노력하고 인내함으로써 열매를 맺게 된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교육 과정을 마친 저는 1964년 11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 전도관으로 첫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산언덕에 위치한 원산전도관은 초가집 시골 제단이었습니다. 제단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예배실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미련한 자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첫날의 기도였습니다. 당시 원산전도관은 기존에 있던 교인들이 신앙촌에 입주하거나 교역자로 나가게 되어 새롭게 전도를 시작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교인도 없는 낯선 곳에서 전도를 하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졌으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실을 맺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될지 궁리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토요일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주일학생들을 제단에 모아 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중학생 여러 명이 예배실로 들어왔습니다. 그 학생들은 찬송 소리를 듣고 왔다면서 “우리도 여기에 다녀도 돼요?”라고 했습니다. 마치 누가 학생들을 이끌어 제단까지 데리고 온 것만 같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제단에 나오기 시작하니 저는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성경 구절을 설명하며 ‘이슬 같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이심을 가르치면 두 눈을 빛내며 열심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학생들이 말씀을 깨닫고 전도하는 기쁨을 알게 되면서 친구들과 동생들을 전도했으며 제단에는 항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남일 퇴임교역자/기장신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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