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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면서 감람나무를 증거하였다. 내가 집회를 하면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기만 하고 그것이 어떤 은혜인지 발표하지 않았을 때는 조용하다가, 이슬 같은 은혜가 바로 호세아서에 기록된 그 은혜인 것을 결부시키자 온 세상이 반발하며 들고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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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깊이 본 사람은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라는 낌새를 알아차리게 되어 있다. 감람나무가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며 감람나무를 증거하니 반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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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나타나면 자기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그 구절을 발표하자 들고일어난 것이다. 진짜가 나타나면 그들이 가짜라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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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이기붕(李起鵬)이 모두 기성교회 장로였고, 그들보다도 더 권력을 휘두른 박마리아 역시 기성교회 여자 장로로서, 그들이 여당 전체의 권력으로 나를 핍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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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내가 석교(石橋) 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나오는데, YWCA의 회장을 지낸 유각경(兪珏卿) 씨가 다가와 “박 장로님, 박마리아 씨 아세요?” 하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알지요. 이기붕 씨 부인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박마리아가 심한 위궤양으로 유명한 병원에서도 고칠 수가 없는데 장로님께서 안찰을 좀 해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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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합시다.” 하고 석교교회 부속실에서 박마리아를 안찰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안찰을 시작하자마자 박마리아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신, 이러이러한 죄를 짓지 않았느냐?” 하고 죄지은 것을 지적했다. 그가 반발하면 죄지은 상대와 시간과 장소까지 내가 일러 주려고 한 것이다. 죄를 지적당한 박마리아는 안찰을 안 받겠다고 뿌리치고 ‘어디 두고 보자.’ 하고 이를 갈면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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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박마리아에게 감히 싫은 소리를 할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어떤 불이익이 닥치는 것을 상관치 않고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그의 죄를 지적해 힐책(詰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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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박마리아는 그가 장악한 모든 권력과 언론을 동원해 나를 괴롭힐 대로 괴롭혔다. 당시 이기붕계(系)의 신문사인 세계일보 기자였던 김경래(金景來)는 정작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온갖 더러운 죄목을 조작하여 내게 덮어씌우는 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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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동아일보가 수십만 부 나갈 때인데 국내 5대 신문과 너절한 잡지까지 전부 합세해서 500여 개의 신문, 잡지와 방송 등 모든 언론 매체들이 나를 총공격했다. 5대 신문에 기사가 나는 것도 모자라 특집과 호외까지 낼 정도였다. 무명의 존재인 나를 대적하여 몇 년 동안을 계속해서 들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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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문, 잡지가 그 정도로 총공격을 하니 삼척동자까지도 나를 조롱하며 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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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이슬성신이 내리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고 대서특필하였다. 분명히 이슬성신이 내릴 때 카메라로 촬영하여 그 모습이 그대로 찍힌 사진인데 그것이 조작된 것이라고 허위 보도를 한 것이다. 그때 나는 기자들에게 내 집회에 와서 직접 촬영해 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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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내가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아 투옥되었을 때도 목사들과 언론이 야합하여 이슬성신이 찍힌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고 법정에서 나를 몰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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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공판정에서 재판장에게 계속하여 요구하기를, 내가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허가해 주고 그때 사진을 촬영해 보면 그 진위를 분명히 가릴 수 있다고 검증(檢證)을 신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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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측과 검찰, 기자와 법원이 모두 내 집회에 참여하여 똑같은 필름을 사서 촬영해 보자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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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판사들이 나의 요청을 수용할 듯 하다가 기성교회의 영향을 받아 종내는 집회를 허가하지 않은 사실은 온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 이슬성신이 사진에 확실하게 찍힐까 봐 두려워하여 집회를 허가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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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합세해서 나를 들이쳤다. 거기에다 여야 전체의 정치 바람보다 10배, 20배 센 종교적 핍박의 바람이 내게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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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옥고를 치른 후 장면(張勉) 박사가 소사신앙촌으로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장면 박사는 내가 당한 정치적 핍박에 대해 듣고 공감하며 자기도 자유당 정권하에서 부통령을 하면서 몹시도 핍박을 당했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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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장면 박사에게 “이제 장면 박사가 집권을 하게 되면 하늘과 직결된 우리 종교를 절대로 핍박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장면 박사는 만일 자기가 집권하면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굳게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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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면 정권은 내가 3․15 부정 선거를 했다며 또다시 나를 구속하였다. 나는 종교인이고 하물며 선거 당시 옥고를 치르고 있던 상태여서 부정 선거와는 아무 연관이 있을 수가 없는데도 구속하고 만 것이다. 막상 내가 구속되자 장면 총리는 깊이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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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대한 인간이라도 그 정도로 곤경에 처하면 사흘도 못 가서 신경을 유지하지 못하고 쇼크사로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열흘을 쳐도 백날을 쳐도 1년을 쳐도, 투옥을 하고 갖은 짓을 다 해도 오히려 10배, 20배 더 강하고 더 날카롭게 설교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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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태를 주시하던 국내외의 뜻있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분은 사람이 아니다. 초인간적인 존재다.’라고 인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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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하나님, 틀림없는 하나님인데 너무도 기가 막히게 핍박을 당한 것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당시 한국의 무명 존재인 나를 대적해 온 세상이 들고일어난 그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이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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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따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온 세상이 그렇게 대적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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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나와 원수가 되는 것은 내가 가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인가, 진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인가? 세상이 빛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어둠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어둠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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