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성신이 내린 중에 최고로 많이 내린 날이 바로 5월 하순이에요. 그런고로 그날을 이슬성신절로 정했어요. 그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는』 (호세아14:5) 그게 하나님의 신인데,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와 같고』 (호세아14:6) 하는 거예요.
초창기에 그 은혜를 내리면서 감람나무의 증거를 하기 시작했어요. 감람나무는 하나님이다 그거예요. 하나님이 아니면 그 은혜를 내릴 수 없어요. 오늘 이제 여러분들에게 말할 것은 긴 시간을 안 가지고 짧은 시간에 확실히 알게끔, 그건 명확히 오늘 이제 여러분들에게 갈라 줄래요.
초창기에 설교를 시작하는 때에, 그때는 감람나무라는 증거를 하기 위하여 옥내에서 집회를 해도 뽀얗게 이슬 같은 은혜가 쏟아져 교인의 얼굴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 정도까지도 내린 것이에요.
가령 이제 서울 한강 모래사장 집회가 되면, 옥내에선 할 수가 없어요. 왜? 그때 2,000명 이상 들어가는 데가 없고, 수만 단위가 모이는 고로 큰 광장이고 모래사장이 아니면 그대로 집회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한 번 집회하는 데, 아시바(비계)를 많이 매고 그 넓은 수만 명 모이는 데 대개가 열흘 집회를 이제 하는 거예요.
그러면 바로 경상남도에서 집회를 하다가 서울로 이동을 하면 전부 교인이 가는 거예요. 거물들 기성교인 안 따라다닌 사람 없어요. 임영신 총장은 열흘이면 열흘 집회 계속 그대로 참여하고 손바닥 치며 이제 그런 상태가 됐지요.
그때는 또 병자들이 많이 왔지요. 한 번 “일어나라.” 하면 수천 명이 들것을 내던지고 뛰고 이제 하는 상태가 되는. 그건 초창기에 처음 감람나무의 증거를 하기 위하여 내린 거예요.
또 목사들이 수백 명씩 줄을 지어서, 1시간 설교를 얻기 위하여 줄을 지어 기다린 거예요. 왜? 교회를 짓다가 메마른 상태에서 교회를 채 못 짓게 되면 내가 30분이고 그 교회에 가서 설교하면 교회를 짓고 남는 연보가 나오니 은혜 면보다도 그 연보 나오는 재미에 1시간씩 얻으려고 했지요. 수백 교회를, 전국적으로 말하면 한 1,000여 교회에 가서 집회를 해 줬지요.
또 그때에 목사 수라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한 2,000여 명이 몸 안찰을 받은 거예요.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제 병원에서 “당신 고칠 가망이 없습니다. 집에 가서 기다리세요.” 하면 사형 선고 받은 거지요. 죽을 날을 기다리라는 거지요. 그런 목사들이, 다 죽게 됐던 게 일어나 뛰고 한 거예요. 목사들이 은혜를 입고 죽을병이 살아나고 해서 자기네 받은 바 간증을 돌림으로 하기 때문에 열흘 주야 1초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집회가 됐어요. 그럼 어떤 데서 집회를 한다면 못해도 한 20만 명 모이는 정도로, 전국 교인이 다 따른 상태가 되는 거예요.
이슬성신 내리는 감람나무 하나님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사람에게 은혜 부어 구원의 길 깨닫게 하시고
생명물로 죄를 씻어 맑게 하시는 권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썩지 않는 영원한 새생명을 알게 하시다
거기에서 그대로 호세아서에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와 같고』 (호세아 14:5~6) 하는 구절을 탁 터트려 놓으니 그대로 반발하기 시작하는. 이제 설명하면 여러분들 다 알 수 있어요.
어떻든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인간들이라도, 신학자라는, 성경을 많이 본 사람은 감람나무는 하나님이라는 낌새를 알게 돼요. 그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건 하나님, 육신으로 온 하나님이라는 게 묵시록 14장에 있어요.
대개 종교의 지도자들이라는 게 전체 직업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요. 자기네는 틀렸다는 것 알면서도, 밥줄을 위해 움직여요.
성경에도 이제 삯군 목자 그건데, 교인을 어떻게도 구원을 주려고 생명을 내걸고 그 심령을 건지려는 심정이 없어요. 종교의 사명은 그건데, 그게 없으면 그 종교는 죽은 종교죠. 구원을 못 얻으면 소용없지요. 수양적으로 하려면 차라리 대학 교수가 하는 강의나 듣던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세미나를 듣는 게 낫겠죠. 그 해서 교인들 눈가림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 (마태복음 15:14)는 그게 둘 다 지옥 간다는 거지요. 그런고로 눈을 가려 놔야 거짓으로 해서 끌고 나가는 고로, 가려 가지고 나가는 상태가 돼요.
그럼 이제 완전히 내가 판가름 지어 드리죠. 그 축복에 대한 설명을 할래요. 생수라는 것 이제 초창기부터 축복하지요. 물을 이제 플라스틱 통 위에 축복을 해요. 이 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신이 나간다는 증거는, ‘쉭쉭’ 축복을 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의 물로 화하게 되지요. 하늘의 생명물로 화한 게 되지요. ‘저 생명 시냇가에 나 길이 살겠네.’ 하는 게 바로 그 생명물이에요. 하나님의 그 세계의 물입니다. 그 세계 물로 화하는 거지요.
그럼 이제 친척이면 친척이 그대로 사망하면, 그 죽은 시체는 보기가 흉하고 뼈가 굳어지지요. 팔이 이렇게 돼서 굳어졌으면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관에 넣을 수 없어요. 그 이를 조금 어겨 가지고 맹물을 집어넣으면 한 방울도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아요. 그러나 이건 능력의 물이라는 것은 그대로 위에 공간이 있으면 100 숟가락이고 이 입에다 넣으면 목이 열려서 들어가요. 다 들어갑니다.
그건 그대로 시험해 보세요. 그 능력의 물이라는 것 알 수 있죠. 그럼 위에 들어간 다음에는 5시간 정도 지나면 뼈가 노긋노긋해지는 것만 아니고, 송장은 보기가 흉한데 그 얼굴이 전부 환해 그 빛이 나는 동시에 살색이 전부 하얘지는 상태가 되지요. 그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시험해 보세요. 그렇게 하고 마시우면 시간이 걸리지만 그걸 수건에다 해서 바르면 그 시로 송장 얼굴이 보기가 흉한 게 환하게, 어떤 사람은 광채가 나지요. 대개가 얼굴이 피고 살갗이 피지요.
그럼 이제 완전히 목사가 무엇이라는 걸 내가 판가름 지어 드리죠.
목사들에게 맡기는 거예요. 기성교인들이 찬송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하면 시신의 얼굴이 점점 색깔이 죽어가고 꺼메지고 그다음에 뼈가 굳어져 가지고 부러뜨리지 않으면 넣을 수 없게 돼요. 그렇게 되는 동시에 시체를 피게 하기 전보다, 광채가 나게 하기 전보다, 뼈가 처음에 굳어 있을 적보다 더 굳어지는 동시에 눈을 시체가 부릅뜨고 흉하게 돼요.
그러면 무릎 꿇고 “예수여,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이 뼈 굳어진 걸 말랑말랑하게, 노긋노긋하고 광채가 났던 게 이제 꺼메지고 굳어졌는데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관에 넣을 수 있도록 뼈가 노긋노긋하게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하여 주시옵소서.”
그대로 10시간이든 100시간이든 거기에 피도록 구해 보라 그거야. 기도할수록 더 굳어지고 더 흉악한 모습이 되고 송장이 여름에 썩은 물로, 방바닥에 송장 썩은 물이 흐르는 걸 볼 수가 있어요. 그럼 굳어지게 하고 마귀의 모습으로 시체가 더 흉악하게 화하는 거면 목사들이 대마귀 새끼 아니에요, 대마귀 새끼예요? 이거 판단하세요. 그걸로 판가름돼요.
그렇게 광채가 나고 핀 모습이 목사가 만지면 만진 손가락 자리까지 새까맣게 되는 것. 우리 교인들은 누구나 못 본 사람이 없어요. 그 신부고 주교고 추기경이고 갖다 해 보세요. 그 시체가 더 보기 싫게 되고 더 굳어져요. 얼굴빛이 더 괴상해진 걸 보라 그거예요. 그거 목사뿐만 아니라 중 갖다 놔 보세요. 그거 굳어져요. 어떤 종교고 갖다 놔 보세요. 천주교 수녀들 갖다 놓으면 까마귀같이 된다고 내가 말하는 게, 목격하면 어느 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있죠? 하나님을 거짓이라고 뒤집어씌웠던 게 이제 드러나요. 나 하나님 틀림없어요.
시체가 그렇게 시커멓고 살아 있을 적의 100배 흉악하게 보이던 그 모습이 아름다운 걸로 변한다는 것은 죄지은 그것이 맑아진다는 증거가 과학적으로 보여지는 거예요. 없던 은혜의 살이 돋으면서 아름다운 걸로 바꿔진다는 그것은, 생명의 능력이 있어서 죄를 씻어 아름다움으로 화해지는 게 되는 것이에요. 그게 귀중한 것이 생명물인 걸 아세요.
내 ‘쉭’ 하는 이거 분석하면 영생하는 요소, 한 방울 가지고도 우주만 한 보화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물질인 것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이슬성신, 생명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에요.
그럼 그게 포인트인데 예수가 몰랐어요. 그걸 모르면 구원을 모르는 거예요. 예수가 구원이라는 게 어떻게 얻는 것도 모르고 날 믿어라 그런 거예요.
지금까지 지내는 중에 물 같은 성령에 대한 걸, 또한 이슬 같은 성령에 대한 걸 입으로 말이라도 한 자가 있어요, 없어요? 성경을 봐도 뭔지를 모르거든. 그걸 감히 건드려 설교한 사람도 없어요. 그 많은 설교자가 있었지만 목사도 있고 신학자도 있고 선교사도 있고 하지만 이슬 같은 은혜에 대한, 또 생명물에 대한 걸 건드린 자가 없어. 알지를 못하니까. 예수 그대로 뭐 알았으면 온 세상 지금 기성교인이 알 것 아니야. 예수 가지고는 되질 않게 돼 있어.
그럼 이제 이슬 같은 은혜, 마지막에 맑아지는, 아름다움으로 화하는 이슬 같은 성령이 최고의 성령이에요. 하나님이 내리는 것이에요.
그럼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치리라』(요한복음7:38) 한 것이 오늘날 이 말뿐만이 아니고 생명물이 흘러나가는 것이에요. 지금 은혜가 나가고 있는 것이에요. 마지막 최후의 은혜요, 최후의 생명물의 역사요, 최후의 이슬 같은 은혜요, 수많은 수를 백합꽃같이 아름답게 피게 할 수 있는 은혜인 것이에요. 그것이 마지막 최고의 은혜인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