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부른 찬송의 물결
제45회 이슬성신절 사진전시실이번 이슬성신절 사진 전시실에는 초창기 천막집회에서 찬송하시는 하나님 모습이 전시되었습니다. 그 시절 천막집회에 참석한 분들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모여 앉아 같은 찬송을 수십 번 불러도 지겹거나 싫증이 나는 마음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고 회상합니다. 어느 찬송을 부를 때면 마음이 신나고 즐거웠고, 또 어떤 찬송을 부를 때면 가슴 깊이 회개의 눈물이 흘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찬송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또 한 소절, 한 소절 뜻을 깊이 생각하며 찬송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이슬성신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찬송을 통해 은혜 받으신 분들의 체험기를 모아봤습니다.

초창기 천막집회에서 찬송하시는 하나님 모습 (1950년대 후반) / 사진 전시실
▣ 혼신의 힘을 다해 찬송하시는 하나님 모습에 큰 감동
1955년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서로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빽빽하게 앉은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중간쯤에 앉았더니, 잠시 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셨습니다.
저는 장로님이라고 하여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 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박 장로님은 단정한 양복 차림의 30대 청년이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마음 문 여세요” 하신 후 찬송을 인도하실 때, 한 소절 한 소절 혼신의 힘을 다해 찬송하시는 모습이 제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간절하게 찬송을 인도하시는 박 장로님을 따라 수십 번씩 연거푸 찬송을 부르는데도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자꾸만 더 부르고 싶었습니다.
찬송을 마치신 박 장로님께서는 우렁찬 음성으로 설교를 하셨는데, 설교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죄에서 떠난 생활을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전에는 미처 죄인지 몰랐으나 양심에 어긋나는 죄를 하나하나 분명하게 지적하시는 말씀이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저는 ‘그렇구나! 하나님을 믿으려면 이렇게 믿어야겠다’ 하면서 앞으로 죄와 상관없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김인안 권사/기장신앙촌
▣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이 평안해져
1957년이었습니다. 큰 건물을 예배실로 단장해 놓은 수원전도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간 김 권사님은 예배 시간에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부른다고 하시며 “찬송을 몰라도 힘차게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따라 불러 보세요” 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곧이어 단상에 올라오신 박태선 장로님은 단정한 양복 차림의 신사분이었으며, 군중을 바라보시는 모습이 참으로 온화하고 인자하게 느껴졌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어 찬송을 부를 때 저는 손뼉을 치는 것이 왠지 창피한 생각이 들어 손뼉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손뼉을 치며 기쁘게 찬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기서는 손뼉을 안 치는 것이 더 창피한 일이겠구나’ 하며 저도 손뼉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찬송가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찬송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곡조를 익히고 가사의 뜻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회장의 군중들 속에서 목청껏 찬송을 부르던 중에 “제가 사람 가운데 의지할 이 없으니 슬픈 자가 됩니다~” 하는 찬송을 부를 때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마치 제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찬송가였습니다. 그 찬송가의 가사대로 “맘이 어두웠으니 밝게 하여 주소서” 하고 기도드리면서 그동안 외롭고 막막했던 시간들을 하나님께 다 고했습니다.
부모님을 잃은 후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하며 괴로워했던 근심과 두려움이 서서히 걷히면서 제 마음이 어느새 포근하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깜깜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조각배와 같았던 저에게 등대의 환한 불빛이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이 밝고 편안해진 저는 ‘세상을 살면서 이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을까?’ 하며 잠시라도 집회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가슴속에는 ‘하나님! 끝까지 이 길을 따라가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쉼 없이 울렸습니다. 이제 길을 찾았으니, 끝까지 따라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이정열/기장신앙촌
▣ 찬송을 부르며 죄를 깊이 뉘우쳐
1955년 5월 공설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천막이 가설되어 있었습니다. 잠시 후 감색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으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셨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뵙는 순간 ‘참으로 귀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히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힘찬 음성으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과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하는 찬송을 오래도록 반복해서 인도하셨습니다.
같은 찬송을 수십 번씩 불러도 지겹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고 손뼉 치며 찬송을 부르는 것이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집회장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찬송 소리와 우레 같은 박수 소리로 떠나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는 중에 가느다란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천막 안에 웬 비가 쏟아질까?’ 생각하며 제 옷을 만져 봤더니 뜻밖에도 전혀 젖은 데가 없이 보송보송해서 저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눈물이 계속 흐르며 갖가지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전에 나쁜 마음을 먹고 못된 생각을 했던 일들이 되살아나는데, 일부러 기억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죄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며 그 죄를 가슴 깊이 뉘우치는 눈물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몇 년 동안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저였지만 그토록 진실한 기도를 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김복동 집사/기장신앙촌
▣ 가사의 뜻을 생각하니 마음 깊이 와닿아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
제 나이 스물아홉 살 되던 1955년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마산에서 지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부흥집회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신마산 장로교회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을 모시고 며칠간 집회가 열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거기 가서 무릎이 다 나았어” 하시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도 기쁘고 즐거워졌고, 어머니가 권유하시는 대로 다음 날 박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등단하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찬송가 505장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믿는 맘 가지고 보겠네~” 하는 찬송을 인도하셨고, 찬송의 가사를 설명하시면서 뜻을 생각하며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찬송은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니 얼마나 기쁜 찬송입니까. 그 세계는 영원히 기쁘고 즐거운 곳입니다” 그 찬송을 여러 번 반복해서 오랫동안 인도하셨는데, 뜻을 생각하며 부르다 보니 가사 내용이 마음 깊이 와닿으며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 동안 찬송을 부르고 설교 말씀을 들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나가 버렸고, 그날을 끝으로 집회를 마친다고 하여 저는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후로 찬송을 부를 때마다 그 뜻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방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가슴에서부터 온몸이 불덩어리가 된 것처럼 견딜 수 없이 뜨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태우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여 구역질이 날 것 같았습니다. 10여 분이 지나 그 뜨거움과 고약한 냄새가 차차 사라지면서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솟아올랐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 항상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고, 길을 가다가도 찬송이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정국모 승사/기장신앙촌
▣ 처음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기도드려
집회가 열리는 날 도림동교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등단하신 박태선 장로님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으시고 얼굴이 환하셨는데, 제 느낌으로 아주 훌륭하고 좋으신 분인 것 같았습니다.
박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모두들 힘차게 찬송을 부를 때 저는 찬송가를 몰라 가만히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찬송 부르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공연히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데도 집에 갈 생각이 나지 않고 배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집회 3일째 되던 날, 예배 시간에 갑자기 예전에 잘못했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누가 귀에다 대고 하나하나 일러 주는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날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인 충남 천안에는 밤나무와 대추나무가 많아 어릴 적에 친구들과 함께 밤과 대추를 따다 먹곤 했는데, 내 것이 아닌 남의 열매를 좋아하며 먹었던 일이 죄라고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 안타깝고 후회되는 마음에,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스물한 살이던 그때까지 어른들 말씀에 순종하며 나쁜 일 안 하고 살았다고 생각했었지만, 하나님 앞에는 추하디추한 죄인임을 알게 되었고 그토록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용서를 구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정순례 권사/부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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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밝혀주시고 씻어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