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고등공민학교
신앙체험기 속의 천부교 역사1950년 6·25 전쟁 후,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35달러, 문맹률 78%,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인재가 2만 6000여 명에 불과한 지구상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먹고사는 것 다음 순위였다. 당시 전국에 세워지던 전도관에서는 국민 계몽을 위해 전도관 산하에 공민학교(초등과정)와 고등공민학교(중등과정)를 설립, 운영했다.
대도시부터 멀리 시골, 작은 섬까지 전국 방방곡곡 전도관 산하에 공민학교가 세워졌다. ‘시온 고등공민학교’ 또는 ‘시온 중학교’라 불렸는데 당시 신앙신보에는 전국의 공민학교 개교 소식과 활동 기사가 계속 보도되었다. 그중 몇 가지만 간추려 소개한다.
“군산전도관에서는 2년 만에 중학교 3년 과정을 마스터 할 수 있는 주로 미취학 빈곤 아동들을 위한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였다. 5월 24일부터 학생들을 모집한 결과 15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6월 5일에 개교식을 올릴 수 있었다.” (신앙신보 1962년 6월 18일자)
전쟁 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
당시 전도관에서는 국민 계몽을
위해 전도관 산하에 공민학교와
고등공민학교를 설립, 운영해
“라디오 한 대도 없는 어촌에다가 그나마 자녀들의 교육기관이라곤 국민학교도 없어 40여 적령기 아동들은 이웃 섬 월호국민학교로 선편을 이용해서 통학하고 있었는데 자봉전도관의 전도사는 우선 4학년 과정까지 두고 신앙촌의 지원을 받아 유니폼을 사서 입히고 모자까지 쓰게 하였으며 청소를 할 땐 입에 마스크를, 여자들은 앞치마를 두르게 하는 등 실생활 개선의 산교육을 시키고 있다.” (신앙신보 1963년 2월 18일자)
“인구 2만2천여 명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충북 증평에 시온 고등공민학교가 설립되어 주민들 협조 하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4월 신임 전도사가 부임하여 제단을 증축하고 주민 호구 방문 전도를 실시한 결과 상급 학교에 진학 못하는 불우한 10대들이 많음을 보고 이를 구제하고자 동년 10월 학생들을 모아 시온 고등공민학교를 발족시켰다. 신학기를 맞아 제단의 자리가 좁은 실정에 있으며 연중 6개 교실의 교사를 신축할 계획에 있다 한다.”(신앙신보 1968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