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미사일 발사 경보가 울렸을 때
핵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핵무기가 전쟁 상대국을 향해 발사될 때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은 상대국의 보복입니다. 상대국이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군사시설 및 주요 시설을 완전히 궤멸시킬 정도의 핵무기를 발사해야 합니다. 핵무기 1발 정도가 아닌 적어도 수십 발 이상을 말입니다.
그럼 상대국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핵무기가 자국을 향해 날아오게 되면 미사일 레이더망을 통해 감지가 되고 즉각 경보음이 울리고 핵무기가 자국에 도착하기 전에 그에 상응하는 대응책을 실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불과 수 분 내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접국의 피해도 전쟁 당사국 못지않기 때문에 인접국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그 날이 바로 인류 최후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1983년에 일어날 뻔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판하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소련은 9월 1일에 우리나라 민간인이 탑승한 대한항공 여객기를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격추시키기도 했습니다.
1983년 9월 26일 0시, 갑자기 소련의 핵전쟁 관제센터에서 비상경보가 울렸습니다. 인공위성으로부터 “미국이 ICBM 1발을 소련으로 발사했다”는 경보가 전달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발사한 ICBM의 숫자는 5발로 늘어났습니다.
소련 관제센터는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모든 핵미사일 사일로와 이동식 발사대에 경보가 걸렸고, 당시 모스크바 외곽의 비밀 벙커 관제센터에서 당직이었던 방공군 중령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핵전쟁의 모든 권한을 졸지에 떠안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습니다. 미국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면 미사일을 다섯 발만 쏠 리가 없었기 때문이고 또 지상 레이더는 별다른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분명 컴퓨터의 오류이거나 탐지용 인공위성의 판단오류일 것이라 결론짓고 핵전쟁 취소코드를 입력한 다음, 상부에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컴퓨터의 오류인 듯하다.”
이 단순한 한 문장이 전 인류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몇 시간 동안 긴장감에 감싸인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핵미사일 발사 경보는 인공위성이 햇빛을 미사일 발사 섬광으로 잘못 인식해서 울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건 직후, 시스템의 결함은 곧 소련 체제에 대한 모욕이므로 소련 군부는 이 상황을 1급 비밀로 분류하고 페트로프를 한직으로 내쫓았습니다.
그의 업적은 소련연방이 해체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전세계에서 그를 칭송하고 고마워했으며, 그는 세계 시민상과 유엔의 표창장, 2012년에는 드레스덴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페트로프는 2004년에 모스크바 뉴스를 통해 밝힌 회고에서 1983년에 자신이 한 일이 영웅적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이 나의 일이었고,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인류를 핵 재앙에서 건져낸 페트로프가 2017년 5월 19일 모스크바 외곽 프리야지노의 자택에서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사실이 9월 18일 알려졌습니다. 평소에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가족들 곁에서 세상을 떠나, 그의 죽음이 4개월 뒤에야 알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