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45> 테레사 수녀의 명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②
▣ 낙태 강요와 강제 개종 논란
그녀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오늘날 평화의 가장 큰 적은 낙태라 생각한다”라는 가톨릭적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낙태를 금지하는 가톨릭의 오랜 전통을 따른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이와 같이 낙태, 피임, 이혼에 대한 독단적인 종교적 견해를 강요하는 것으로도 비판받는다. 2013년 논문『테레사의 어두운 면』의 연구자들은 위 연설 내용이 과도하고 이상한 발언이라며 낙태가 언제나 평화의 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는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빈곤을 심화시키는 일이었다. 심지어 테레사는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이른바 ‘강간 수용소’에서 수천 명의 여성들이 집단 강간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조차도 ‘낙태만은 안 된다’며 피해 여성들에게 가톨릭의 전통을 강요했는데, 연구자들은 위 예시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일인지 물었다.
사랑의 선교회는 낙태 대신 출산 후 아이를 입양 보내는 방식을 제안해왔다. 그런데 2018년 인도 자르칸드주 사랑의 선교회에서 신생아 밀매 행위가 발각되며 인도 전역에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영국 BBC에 따르면, 선교회가 운영하는 미혼 임신부를 위한 센터에서 밀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 테레사 수녀는 강제 개종 혐의로도 비판받는다. 2015년,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 단체 지도자 모한 바그와트(Mohan Bhagwat)는 라자스탄 주의 고아원 개원식에서 “테레사 수녀의 일에는 숨겨진 동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봉사 받는 사람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개종을 이루었다면, 그러한 봉사는 진정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실제로 당시 사랑의 선교회에서 근무했던 수잔 쉴즈는 테레사 수녀가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은밀하게 세례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폭로했다. 인도 국민 대부분의 종교는 힌두교(80%)와 이슬람교(14%)로. 테레사의 시설에 수용된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기독교인이었다. 이에 테레사는 어느 종교에나 천국의 개념이 있다는 것을 이용했다. 수잔 쉴즈는 “수녀들은 죽음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찾아가 ‘천국으로 가는 티켓(ticket to heaven)’을 원하는지 묻는다. ‘그렇다’는 답변은 세례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면 수녀는 그 사람의 이마를 젖은 수건으로 식혀주는 척, 세례에 필요한 말들을 작게 중얼거리며 세례 의식을 마친다. 수녀들이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를 세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고 얘기했다. 기독교에서 세례는 곧 개종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환자는 죽기 직전 자신도 모르게 개종당하게 되는 것이다.
강제 개종 논란은 최근까지도 계속되어 2021년에도 인도 지구라트의 사랑의 선교회가 개종을 강요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고소장에 의하면 보호소 도서관에서 13권의 성경책이 발견되었고, 소녀들은 십자가를 몸에 걸고, 성경책을 강제로 읽어야 했다고 한다.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이곳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교육 제공, 금전적 이익 등을 대가로 사실상 개종을 강제해왔다고 비판했다.
▣ 악인(惡人)의 성녀

<자료5> 독재자의 아내 미셸 뒤발리에의 손을 맞잡은 테레사 수녀
아이티의 장-클로드 뒤발리에 대통령 부부는 노동자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온갖 잔학 행위를 저지르며 재산을 쌓아온 철권통치자였지만, 테레사는 이들에게 훈장과 상당한 후원금을 받았고, 그 반대급부로 독재자의 이미지 세탁과 대중선동에 앞장섰다.(출처: 위키피디아)
지금까지는 살펴본 내용들은 1996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브루노 매독스(Bruno Maddox)가 히친스의 책『자비를 팔다』를 소개하며 요약한 내용과 다르지 않다. 그는 “테레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가톨릭교 확장에 연료를 공급하는 끊임없는 비참함의 원천으로 삼는 데 관심이 있다”고 정리했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앞장서 도운 인물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이티와 알바니아의 독재자들, 금융 사기꾼, 사이비 종교 수장, 프리메이슨 조직 수장, 다수의 소아성애 가톨릭 사제들, 이른바 ‘악인’이라 불리는 이들이었고, 테레사가 도운 것은 그들의 ‘이미지 세탁’이었다.
1981년 1월, 아이티의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를 찬양하는 선전지 <공격(L’Assaut)>에 독재자의 아내인 미셸 뒤발리에와 테레사 수녀가 다정하게 양손을 맞잡고 미소 짓는 사진이 실렸다.<자료5> 이날 테레사는 아이티의 최고 훈장과 상당한 상여금을 받았고, 그녀는 뒤발리에 부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며 찬사를 보냈다. 뒤발리에 부부는 아이티 노동자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온갖 잔학 행위를 저지르며 재산을 쌓아온 철권 통치자였지만, 테레사 수녀는 후원금에 대한 반대급부로 독재자의 이미지 세탁과 대중선동에 앞장선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선동한 내용과 달리, 뒤발리에 부부는 가난한 나라였던 아이티에서 무려 수백만 달러를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료6> 광신 집단 수장 존 로저와 테레사 수녀
존 로저에게 성실상과 1억 달러의 기부금을 받은 테레사는 그와 홍보 사진을 찍었다.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었고, 콜카타의 가난한 이들은 나중에 배경으로 합성해 넣었다. (출처: 오마이뉴스)
테레사는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 존 로저(John Roger)와도 교류를 맺었다. 존 로저는 자신이 예수보다 우월한 존재라 주장하는, 기독교에겐 신성모독적 인물이었지만, 그와 교류를 맺은 덕분에 그녀는 존 로저가 주최한 행사에서 ‘성실상’과 함께 1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수상 후에는 그와 함께 홍보 사진을 찍었고,<자료6> 존 로저는 테레사와의 친분을 과시함으로써 그녀의 이름과 이미지가 발하는 위광을 빌릴 수 있었다.

<자료7> 공항에서 찰스 키팅과 농담을 나누는 테레사 수녀
찰스 키팅은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 사건을 일으킨 금융 사기꾼으로, 17,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속여 2억 5천만 달러 이상을 갈취했다. 찰스 키팅은 사기 친 돈으로 테레사 수녀에게 125만 달러라는 거액을 기부했고, 미국을 맘대로 오갈 수 있도록 그의 개인 제트기를 빌려주었다. 테레사는 그 보답으로 키팅이 중요한 일을 할 때 자신의 권위를 써먹도록 허락하며 자기 이름을 새긴 십자가를 선물로 주었고, 키팅은 어딜 가든 그 십자가를 지니고 다녔다. (출처: 애리조나 리퍼블릭)
1992년,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 사건 중 하나인 저축대부 조합 스캔들을 일으킨 찰스 키팅(Charles Keating)은 유죄 판결을 받아 10년형을 복역하게 된다. 그는 17,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속여 2억 5천만 달러 이상을 가로챈 금융 사기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125만 달러라는 거액의 기부금과 미국을 맘대로 오갈 수 있는 그의 개인 제트기를 제공받았던 테레사는 그를 돕기위해 나섰다.<자료7> 테레사 수녀는 “찰스 키팅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주님의 빈자들을 돕는 데 많을 일을 했다”며 판사에게 관용을 간청하는 탄원서를 보낸 것이다.<자료8>

<자료8> 키팅의 선처를 요구하는 테레사의 탄원서
찰스 키팅이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아 10년 징역형에 처해지자, 테레사는 판사에게 그의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출처:『자비를 팔다』)
찰스 키팅 사건을 담당했던 로스앤젤레스 지방 검사보 폴 털리(Paul Turley)는 이 탄원서를 보고 분노했고, 이러한 답장을 보낸다. “친애하는 테레사 수녀님, 그의 범죄 혐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쓰셨더군요. 귀하는 사기로 절도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키팅씨로부터 돈을 받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면죄부’를 허락하지 마십시오. 도둑질한 돈을 갖고 있다면 돈을 돌려줘야 합니다. 제게 연락을 주시면 당신이 지금 갖고 계신 재산의 정당한 주인과 곧장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폴 털리는 테레사 수녀의 답장을 끝내 받지 못했다. 털리는 당시 영향력 있던 저널리스트인 히친스에게 이 편지들을 전달했고, 테레사와 폴 털리의 편지 내용은 1995년 10월 29일 자 워싱턴 포스트에 실렸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테레사는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자료9> 소아성애 성범죄자 맥과이어 신부와 피해자와 테레사 수녀
피해자 존 도 129(가명)씨가 언론사에 직접 제공한 사진으로, 1991년 샌프란시스코 사랑의 선교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맥과이어는 수십 년간 어린 소년들을 학대한 악명높은 소아성애 사제로, 한 피해자만 1000회 이상 성폭행하기도 했다. 그는 테레사 수녀의 개인 고해신부이자 사랑의 선교회의 영적 지도자였다. (출처: BishopAccountability.org)
그녀가 도운 인물들은 이 밖에도 많았지만, 가장 많이 도운 이들은 가톨릭교회의 성범죄 사제들이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대규모 아동 성학대 사건이 잇따라 폭로되고, 조직적 은폐가 드러나면서 심각한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에 테레사 수녀는 ‘이미지 관리’를 통해 교회를 도왔다. 테레사 수녀는 교회에 성추문이 터질 때마다 교회로부터 여러 차례 도움 요청을 받았다. 그러면 성학대 사제를 구명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직접 방문하거나 판사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그녀의 개인 고해신부이자 사랑의 선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임명되었던 미국 시카고의 예수회 신부 도널드 맥과이어(Donald McGuire)가 있다.<자료9> 도널드 맥과이어는 수십 년간 어린 소년들을 학대하여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악명높은 소아성애 사제다. 한 피해자만 1000회 이상 성폭행하기도 할 정도로 그의 소아성애적 범죄는 상습적이며 연속적이었다. 그런데 맥과이어의 성학대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60년대 초였지만,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한참 뒤인 2009년이었다. 이에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하던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의 탐사 보도 기자 마이클 레젠데스(Michael Rezendes)는 어떻게 맥과이어가 수십 년 동안 아동 학대 처벌을 면할 수 있었는지 ‘은폐’에 주목했다. 조사 결과, 은폐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테레사 수녀였다.

<자료10> 테레사 수녀가 맥과이어 신부의 복직을 명령한 편지
맥과이어 신부가 성학대로 정직 처분을 받자, 그의 상관에게 그의 복직을 명령하는 편지를 썼다. (출처: BishopAccountability.org)
맥과이어가 소년들을 학대했다는 사실은 1960년대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1991년 이상성애 치료 명령을 제외하고는 실질적 제재를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1993년 한 소년을 성학대 한 것이 문제가 되어 1994년 예수회는 결국 그를 조사했고, 조사 결과 그는 ‘성적 장애가 있고, 착취적인 성향이 있으며, 편집증적이고, 자기애적’이라는 정신감정을 받아 사제직을 일시 정지당한다. 이 소식을 알게 된 테레사 수녀는 1994년 2월 2일, ‘슬픈 사건’이라며 맥과이어의 상관인 시카고 예수회의 브래들리 셰퍼(Bradley Schaeffer)에게 맥과이어의 복직을 요구하는 편지를 쓴다.<자료10>
“맥과이어 신부님이 성치료 센터에 가셨습니다. (중략) 미국에서 사제직에 대한 스캔들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 사제직의 순수성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맥과이어 신부님을 신뢰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중요한 사역이 하루빨리 재개되는 것을 보고싶습니다. 우리 사랑의 선교사들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녀의 편지 이후 맥과이어는 복직했고, 가톨릭교회 성직자로서의 일을 이어갔다. 마이클 레젠데스는 이 편지를 테레사의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테레사 수녀는 당시 살아있는 성자로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인물이었기에, 그녀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 셰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 내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테레사 수녀의 명령 덕분에 맥과이어는 이후 10년 동안 수백 명의 소년을 자유롭게 학대할 수 있었다.
▣ 사기로 만든 성인 칭호
지금까지 살펴본 논란들은 테레사 수녀가 활동하던 시절부터 계속해서 제기돼 왔지만, 그녀의 명성은 논란보다 더 유명했다. 그녀가 사망하자 가톨릭교회는 이례적인 속도로 그녀를 복자로 지정한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교황청이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교회가 비어가는 상황에서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신앙에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그녀의 시복을 강행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그 시복이 ‘사기’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가톨릭에서 복자가 되려면 영웅적 덕행과 1건 이상의 기적을 행해야 한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는 이미 ‘살아있는 성인’이라 불릴 정도의 명성이 있었기에 그녀가 복자가 되는데 필요한 것은 기적이었다. 이때 기적이란 대개 치유 기적을 말하는데, 기도자가 예상 밖의 회복을 겪었다 주장하면 이를 기도 대상자의 기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의 경우 1998년, 모니카 베스라(Monica Besra)라는 여인이 테레사 수녀의 사진에서 빛을 본 후 위암이 치료됐다는 증언을 기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모니카를 검진한 의사들은 완전히 다른 진단을 내렸다.
암도 기적도 없었고, 대신 결핵과 난소낭종이 있었다. 주치의에 따르면, 그녀는 9개월 동안 약을 먹으며 치료했다. 또 테레사의 시복 과정을 연구한 인도 과학 및 합리주의 협회 회장 프라비라 고샤(Prabīra Ghosha)에 따르면, 그녀의 마을 주민들은 모니카 부인의 종양이 “몇 달에 걸쳐 점차 사라졌다”고 확언했으며 “이 기적은 허구”라고 말했다. 모니카의 남편 세이쿠(Seiku)는 타임 아시아(Time magazine Asia edition)에 두번이나 이렇게 말했다. “내 아내는 기적이 아니라 의사의 도움으로 나았습니다. 이 기적은 사기입니다.”(2002년 10월 15일) “제 아내는 기적이 아니라 의사의 도움으로 치료되었습니다[…] 모니카는 여전히 기적을 믿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2002년 10월 22일) 인도 콜카타의 신문 아즈칼(Aajkaal)은 2002년 10월 18일 자 기사에서 “마더 테레사가 일으켰다는 기적은 이 세기의 최대 사기”라고까지 언급했다.
고샤는 테레사 수녀의 성인 지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모니카 가족의 생활 조건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먼저, 소위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은 사랑의 선교회 사람들이 모니카와 그녀의 가족이 사는 빈민가에 자주 갔다고 증언했다. 그 후 이상하게도 그들의 생활 여건이 크게 개선된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가족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었으며 모든 비용은 사랑의 선교회에서 지불했다. 억울함을 토로하던 남편 세이쿠는 어느 순간 아내가 테레사 수녀에 의해 치유된 게 아니라는 주장을 멈췄다. 이에 고샤는 이 사건을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들은 의문만 남긴 채 점차 잊혀지게 되었고, 콜카타의 복자라는 테레사 수녀의 명성만 남게 되었다.
위 내용이 담긴 2013년 논문『마더 테레사의 어두운 면』을 읽은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다니엘 바릴은 ‘마더 테레사: 사실이 거룩함의 냄새를 없앨 때’라는 제목의 글을 쓰며 “거룩함의 이미지는 미디어가 조작한 것이며, 시성은 지적 사기, 심지어 거짓말에 근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톨릭교회에서 이렇게 기적을 복자나 성인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기적을 신과 소통한다는 증거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7년, 테레사가 50여 년간 천국과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어둠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자신의 영적 조언자들에게 보낸 비밀편지를 연대순으로 엮은 책『마더 데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원제: Come Be My Light)』의 기록을 보면, 그녀는 일생동안 “제 안에는 마치 모든 것이 죽어 버린 듯 끔찍한 어둠이 있습니다.”, “그 고통과 괴로움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신이 아니시라는, 신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고통입니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제 영혼 안에 주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등의 고통을 호소하다 생을 마감했다.
가톨릭의 성인, 곧 가톨릭에서 가장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는 인물 중 하나인 테레사 수녀가 신을 찾지 못했고, 기적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가톨릭교회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 불편한 진실은 없다
2013년의 논문『마더 테레사의 어두운 면』의 저자들은 논문 첫 장에 핵심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한 요약문에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왜 그녀에게 가해진 비판을 바티칸이 무시했는지 궁금하다.”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마무리한다. 이미 연구를 마친 연구자들의 이 물음은, 단순한 의문의 표출이 아니라, 연구팀 측에서 직접 잘못을 지적하는 것 대신, 사실을 제시한 뒤 그들 스스로 양심을 돌아보게 하려는, 보다 날카로운 비판에 가깝다.
테레사에게 가해진 비판은 비단 그녀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사상을 형성한 것, 그녀가 활동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지원한 것, 그녀를 성인으로 만들고자 한 것도 가톨릭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녀와 자신들에게 가해진 비판은 그들에게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정확히는 진실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 두 가지 방법으로 불편함을 해결하려 한다. 진실을 받아들이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면 기존의 그릇된 믿음은 폐기되어야 하기에, 그들은 앞으로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에서 추구하는 가치인 선(善), 구원, 진리는, 진실을 외면하는 종교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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