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45> 테레사 수녀의 명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①

발행일 발행호수 2650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자료1> 빈자의 성녀라 불리는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는 생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논란이 제기돼 왔지만 여전히 빈자의  성녀라 불린다. 테레사 수녀의 본명은 ‘아네저 곤제 보야지우 (Anjezë Gonxhe Bojaxhiu)’로, 여기서 ‘아네저’는 세례명이다. ‘테레사’는 수도명으로, 세례명과 별개로 수도회 입회시 받는 이름이다. (출처: 셔터스톡)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녀를 꼽는다면, 단연 테레사 수녀(1910~1997년)가 손꼽힐 것이다.<자료1> 수많은 언론과 미디어는 그녀를 ‘빈자(貧者)의 성녀’라 칭하며 ‘가난하고 없는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으로 보도했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자 테레사 수녀의 명성은 세계로 뻗어 나갔다. 가톨릭교회는 이 유명한 수녀를 성인(聖人)으로 지정하여 사후에도 기적으로 기리고 홍보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 위인전과 교과서에 그녀의 행적이 실릴 정도로 테레사 수녀의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테레사 수녀의 명성을 지지하는 이들이 말하지 않는 중대한 사실들이 있다. 사실 테레사 수녀는 생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논란이 제기돼 온 인물이며, 그 논란들은 하나같이 그녀에 대한 평가의 근본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사실들이었다.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의 이러한 논란들을 가리켜 ‘불편한 진실’이라 일컫는 경우가 많다. 이미 두텁게 형성된 그녀의 명성이 그와 불일치하는 사실들을 접했을 때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명성의 그늘 아래 외면 받아 왔던 소위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조명해본다.

▣ 누가 테레사 수녀를 고발하는가

<자료2> 자신이 제작한 다큐『지옥의 천사』에 출연한 크리스토퍼 히친스
1994년, 테레사 수녀를 비판하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다큐멘터리『지옥의 천사』가 발표되었다. 기자들이 테레사에게『지옥의 천사』에 대한 논평을 요청하자,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다는 테레사 수녀는 “그것을 만든 자들을 ‘용서’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히친스는 “우리는 그녀나 다른 누구에게도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며, “무슨 권리로 그녀가 용서할 권능을 참칭하는지”, “기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출처:『지옥의 천사』캡처)

“어느 막돼먹은 인간이 야위고 주름진 자그마한 노파를, 더군다나 가난한 자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사람을 헐뜯겠는가” 이것은 1995년 출간된 테레사 수녀 비판서『자비를 팔다(원제: 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의 가장 첫 문장이다. 위 질문을 먼저 제시함으로써, 이후 고발할 내용들이 음모론적 비난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정당한 비판일 것을 예고하는 저자의 자신감이 드러난다. 저자는 영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로, 그는 1994년에도 ‘지옥의 천사(Hell’s Angel)’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그녀를 공개 비판한 바 있다.<자료2>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의 명성으로써 그녀의 행동과 말을 판단하지 않고, 그녀의 말과 행동으로써 명성을 판단하겠다고 선언하며 공개 연설과 인터뷰, 기록과 증언 등을 토대로 테레사 수녀의 행적을 신랄하게 고발했다.

영국의 의사 아룹 채터지(Aroup Chatterjee)는 자신의 고향인 인도 콜카타*의 병원에서 근무하다 1985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에 가자, 언론들은 테레사 수녀의 업적을 계속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일했던 곳도 빈민가인데, 테레사 수녀와 그 조직의 활동을 본 적이 없었고, 실제로 목격되는 것은 여전한 콜카타의 빈곤과 부족한 의료 현실뿐인 것에 괴리감이 들어, 테레사의 활동과 명성에 대해 연구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히친스의 다큐멘터리『지옥의 천사』와 저서『자비를 팔다』는 대부분 아룹 채터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 것이며, 채터지 자신도 2002년『테레사 수녀: 최종 판결(Mother Teresa: The Final Verdict)』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연이은 고발에도 불구하고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테레사 수녀를 가톨릭의 복자(福者, 성인의 전 단계)로 선포했다. 이로써 테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공경받는 ‘콜카타의 복녀’가 되었다. 2013년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과 오타와대학 연구팀은 테레사 수녀의 삶과 활동에 관한 287개의 문서를 분석한 논문『마더 테레사의 어두운 면(Les côtés ténébreux de Mère Teresa)』을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연구 동기에 대해 “빈자의 성녀라는 그녀의 명성은 너무나 당연해져, 이제는 집단적 상상의 하나가 되었다. 의심이 허용되지 않는 그런 만장일치가 우리는 의심스러웠다”며 그녀의 삶을 연구해 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 테레사 수녀의 신성화된 이미지는 “사실에 근거한 분석이라기보다 만들어진 것이며, 그녀의 시복 과정도 미디어 캠페인에 힘입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2016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시성했고, 그녀는 이제 전 세계 가톨릭 신자에게 공경받는 성인이 되었다.

2022년에는 영국 스카이의 3부작 다큐멘터리『마더 테레사: 신의 사랑을 위해?(Mother Teresa: For the Love of God?)』가 방영되며 테레사 수녀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수면 위에 떠올랐다. 이 다큐에서는 당시 테레사 수녀의 동료, 직원, 의사, 검사, 기자 등이 나와 자신들이 목격한 현실과 실제 상황에 대해 증언한다. 그녀가 ‘빈자의 성녀’라는 타이틀을 갖기 위해서는 빈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고, 재정이 투명해야하고, 종교 강요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다큐에서는 그녀의 명성과 상반되는, 나아가 명성을 악용했다는 증언들이쏟아져 나온다.

<자료3> 테레사 수녀 논란에 대해 증언한 사람들
테레사 수녀의 명성과 실제가 다른 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테레사 수녀를 고발했다. 사진 속 인물은 왼쪽부터 전 사랑의 선교회 수녀 매리 존슨, 콜카타의 방문 의사 잭 프레거, 테레사 수녀의 명성과 실제를 연구한 영국의 의사 아룹 채터지, 사랑의 선교회 자금 흐름을 추적한 슈테른 매거진의 기자 발터 뷜렌베버, 금융사기꾼의 선처를 요구하는 테레사의 편지를 검토한 검사 폴 털리, 보스턴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의 탐사 보도 기자 마이클 레젠데스, 전 자원봉사자 매리 라우던 (출처:『마더 테레사: 신의 사랑을 위해?』『, 지옥의 천사』캡처)

이처럼 테레사 수녀에 대한 폭로가 꾸준히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누가 공연히 테레사 수녀를 헐뜯겠느냐’는 히친스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녀의 명성이 실제와 다르지 않았다면 그녀를 고발하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자료3> 그들이 목격한 실제는 무엇이었을까? 지금부터는 위 언급한 책, 논문, 다큐들을 비롯, 여러 언론 보도 및 관련 자료들을 종합하여, 진실을 마주한 이들이 알리고자 했던 테레사 수녀에 관한 중대한 사실들을 정리해 본다.

▣ 가난과 고통을 찬미하다

<자료4> 열악한 환경의 테레사의 시설
전 자원봉사자 매리 라우던은 나치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열악한 시설에 경악했고, 그곳에는 말기 환자들 오륙십 명이 한 방에 갇혀 진통제도 제대로 처방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었다고 고발했다. (출처:『마더 테레사: 신의 사랑을 위해?』캡처)

테레사 수녀는 자선가이기 이전에 독실한 종교인이다. 그녀의 종교인 기독교에는 고통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고통의 신학’이 존재한다. 테레사는 이 방면에서 “가난과 고통은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광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빈곤, 고통, 죽음은 신과 합일하고 예수의 수난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이자 그들 신의 사랑의 증거였다. 때문에 그녀는 병자들의 고통을 치료하기보다는 고통을 찬미했고, 기도의 힘으로 이겨낼 것이라며 수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후원금을 받았음에도 시설을 개선하거나, 구호물품과 의료장비를 산다거나, 의료인을 구하든가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간단한 약 처방만으로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어갔다.

당시 방문 의사로서 콜카타에서 봉사했던 영국의 의사 잭 프레거(Jack Preger)는 그곳, 테레사의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Home for the Dying)’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절망적이었다고 얘기한다. 수녀들은 주삿바늘을 찬물로 씻어 살균도 하지 않은 채 재사용했고,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왔는데도 진통제가 없어 그가 몰래 구해다 주었다고 한다. 전 자원봉사자 매리 라우던(Mary Loudon)도 ‘나치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열악함에 경악했다.<자료4> 그곳에는 말기 환자들 오륙십 명이 한 방에 갇혀 진통제도 제대로 처방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었고, 주삿바늘을 찬물로 헹구고 있는 수녀들에게 왜 소독을 하지 않느냐 묻자, 수녀는 “그럴 필요가 없고, 시간도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프레거는 “사랑, 이해, 보살핌을 주고 싶었다면, 바늘을 살균해 사용했을 것”이라며 그들의 행태를 “미친 믿음”이라 비판했다.

테레사의 시설은 치료 가능한 환자와 죽어가는 환자, 결핵 같은 전염병 환자와 아닌 환자를 한 공간에 몰아넣어,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도 감염과 치료 부족으로 사망할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의학전문지『랜싯』의 편집장 로빈 폭스(Robin Fox) 박사는 1994년 테레사의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에 방문하고는 그 광경을『랜싯』1994년 9월 17일자에 실었다. 기대에 부푼 상태로 방문했던 그는 수녀와 봉사자들이 검사도 하지 않은 채 기준 없이 능력껏 진단을 내리는 모습, 처방전에 적절한 진통제가 들어 있지 않은 사실을 목격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심각한 의료 과실 행태를 고발했다. 히친스는 폭스 박사가 묘사한 상황이 ‘재해 발생 지역의 빈약한 아마추어 진료소에서조차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테레사는 30년간 엄청난 돈과 물자를 지원받아 전혀 빠듯한 형편이 아니었다”고 지적하며 “그녀의 시설이 폭스 박사가 묘사한 열악한 지경에 처한 것은 테레사가 그 상황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테레사 수녀의 공인 전기 작가인 캐서린 스핑크(Kathryn Spink)에 의하면, 실제로 테레사는 평소 “우리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다. 우리의 소명은 반드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고난당하시는 그리스도를 본다.”라고 얘기했으며, 1997년 워싱턴 기자 회견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운명을 견디라고 가르치십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세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사랑의 선교회 내부의 모순과 운영 실태를 고발한 전 사랑의 선교회 수녀 매리 존슨(Mary Johnson)은 “그것은 고통을 덜어준다며 설립된 단체인 사랑의 선교회에서 나타나는 ‘정신분열적인 태도’이다.”라고 얘기했다. 이같은 정신분열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테레사 수녀는 말기 암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던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에 분노한 환자는 “그렇다면 그 입맞춤을 제발 멈추라고 말해주세요”라고 부탁했지만, 그녀는 ‘그들 신의 축복’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테레사 자신은 말년에 병환과 싸울 때 서양에서 가장 비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가난하고 열악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은 많은 지원을 받는 데 유리했고, 테레사 수녀에게는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가난한 이들의 영적 복지’가 중요하다는 명분하에 금욕을 강조하며 빈자들의 실생활 개선에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 막대한 자금이 환자의 치료와 환경 개선에 쓰이지 않았다면, 어디에 사용된 것일까?

▣ 막대한 기부금은 어디로

사랑의 선교회는 회계 감사를 받지 않았고, 회계 처리가 매우 불투명하여 그 많은 기부금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끝내 사랑의 선교회의 계좌를 찾아내 기부금의 행방을 추적한 사람들이 있었다. 1998년, 독일 슈테른 매거진의 저널리스트 발터 뷜렌베버(Walter Wüllenweber)는 콜카타 출신의 지인에게서 테레사 수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는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했고, 그렇다면 그 많은 기부금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취재하기 시작했다. 취재를 마친 그는 “테레사 수녀: 그녀의 막대한 돈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장문의 폭로글을 기고한다.

뷜렌베버는 전 회계 담당 수녀 수잔 쉴즈(Susan Shields)를 만날 수 있었다. 뉴욕 사랑의 선교회의 수잔 쉴즈는 사람들이 기부한 돈이 뉴욕 브롱크스 지사에만 1년에 5천만 달러가 모였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서는 최소 연간 1억 달러 이상 모았을 것이고, 10년이면 1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금액이 된다. 이는 유니세프가 인도 전역에서 쓸 수 있는 돈의 3배나 되는 돈이었다. 중요한 점은 은행 계좌가 점점 불어나는 동안 그 자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잔 쉴즈는 한 일화를 예로 들었다. “에티오피아에 기근이 들었을 때, ‘에티오피아의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라고 적힌 수표가 많이 도착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회계 담당 자매에게 그 많은 수표를 모두 합산해서 에티오피아로 보내야 할지 물었습니다. 자매는 ‘아니요, 우리는 아프리카로 돈을 보내지 않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부자들에게 ‘에티오피아를 위해’라는 영수증을 계속 보냈습니다.” 또한 본인을 포함해 “당시 회계 사무실에서 일을 보던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관해 입을 다물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고도 밝혔다. 쉴즈는 9년 반 동안 사랑의 선교회 회원으로 일했지만, 그녀가 목격한 기만과 가식, 위선은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결국 환멸을 느껴 선교회를 탈퇴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법적으로 모든 자선단체가 자신의 은행 계좌를 공개해야 했지만, 테레사의 조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뷜렌베버는 인도 재무부에 문의해 봤지만, “기밀 정보”로 분류되어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테레사의 조직은 전 세계적으로 약 500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데, 그들의 은행 계좌 대부분은 비공개로 유지되었다. 다행히 영국은 자선 단체의 은행 정보 공개를 허용하는 국가였고, 그들의 계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기부금의 7%만이 수녀회 사업에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바티칸 은행으로 보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전 사랑의 선교회 수녀 매리 존슨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로마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사람들이 현금 기부금을 들고 와서 제 가방에 그 돈을 가득 채워넣었고, 저는 그것을 바티칸 은행으로 가져갔습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었죠. 사랑의 선교회가 받은 기금 중 상당 부분이 결국 바티칸 은행에 쌓이곤 했습니다.”

테레사의 실제를 연구하던 의사 채터지도 영국과 인도에서 사랑의 선교회 계좌의 거래 정보를 찾아냈다. 채터지는 이들의 계좌에서 바티칸 종교사업연구소(IOR)로 수백만 달러가 송금되었으며, 수녀들의 여행경비로 수만 달러, 또 120개국에 있는 수녀회의 수녀들의 집을 짓는 데 수백만 달러가 사용되었다며,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영웅이란 명성으로 얻은 기부금을 가톨릭을 위한 경비로 사용하는 것을 비판했다.

사람들의 기부금이 바티칸으로 보내진다는 사실에 대해 뷜렌베버는 이렇게 얘기한다. “테레사는 바티칸 은행에 전체 국가보다 더 많은 돈을 기부했다. 기부자들이 자신의 돈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으며 바티칸 은행에 저축됐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분노했을 것이다. 80년대에 수십억 달러가 있었다면 뭔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테레사 수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슬픈 일일뿐만 아니라 ‘죄’다.” 이러한 사실들은 대개 테레사의 생애에서 비교적 후반 또는 사후에 연구되었고, 이 사실을 모른 채 그녀가 한창 명성을 떨치던 1979년, 테레사 수녀는 ‘고통받는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 공로’를 사유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