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19> 접신과 방언의 뿌리를 찾아서

세계 종교 탐구 <19>
발행일 발행호수 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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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의 장면을 묘사한 세인트 루이스 성당의 천장 벽화 (출처: 두피디아 포토 )

오른쪽의 그림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 성당 천장 벽화의 한 장면으로, 사도행전 2장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자료1>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도행전 2장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한 지 50일째 되는 날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불의 혀가 각자의 머리 위에 나타났고, 그들은 ‘신의 영’을 충만히 받아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는 이날을 ‘오순절’ 또는 ‘성령강림절’이라는 절기로 기념한다. 성령 강림 사건은 사도들이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오순절은
‘초대교회의 탄생일’로도 여겨지며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3대 축일로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신을 받았다며 무아(無我)상태로 내용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방언과 같은 종교 행위는 그리스도교 발생 이전부터 흔히 존재해왔다. 자신들이 신을 접했으며, 신의 말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신의 소리를 듣던 고대의 정신 체계와 방언을 행했던 여러 종교들을 알아보며 접신과 방언의 뿌리를 찾아가 본다.

▣ 신의 소리를 듣다

고대의 사람들은 신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자세히 말하면 머릿속에서 들려온 어떤 목소리를 신의 목소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정신 체계를 ‘양원적(兩院的) 사고방식’이라 한다. 이 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미국의 심리학자, 프린스턴 대학교의 줄리언 제인스 교수다. 제인스 교수는 좌뇌와 우뇌의 역할이 각각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양원제라는 정치 제도의 표현을 빌려 ‘양원적’이란 용어를 명명했다. 고대의 사람들이 들었던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제인스의 저서『의식(意識)의 기원(원제: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에 따르면 신의 목소리라 여겼던 소리의 정체는 우뇌의 명령이다. 일반적으로 우반구가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수합하고 처리하면, 좌반구가 이를 분석하는데, 그 기능이 통제되지 않고 우뇌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처리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우반구의 명령을 환청의 형태로 듣는 것이다. 현대 의학의 관점으로 보면 당시의 정신 체계는 ‘정신분열증적 환각’과 유사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기록들을 보면, 인간들의 통치자는 왕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환각적 목소리였음을 알 수 있다. 서기전 2500년경 라가쉬의 원뿔형 점토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키쉬의 왕 메실린은 그의 신 카디의 명령을 받아 들판의 농원에 경계비를 세웠다. 움마의 왕 우쉬가 그것을 빼앗을 계획을 세웠고, 그는 그 비석을 산산이 부숴 라가쉬 평원으로 진격했다. 신 닌기르수의 의로운 명령으로 움마에 전쟁을 일으켰다. 신 엔릴의 명령에 따라 그의 큰 그물로 덫을 놓았다.”

왕은 신의 명령을 듣고 그를 수행할 뿐, 무엇을 해야할 지 결정해 주는 것은 신의 명령이었다. 서기전 1700년경 라사 왕조 시대 원추형 토기에는 니네갈 여신에 대해 “상담자, 놀라운 지혜의 사령관, 모든 위대한 신들의 공주, 찬양받을 웅변가. 그의 선포에 맞설 자 누구랴”라며 칭송하는 내용이 있다.

신들의 소리를 듣고 조언을 받았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거대한 신전을 짓고 지극정성으로 신상을 모셨다. 신전에서는 신상이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의식을 수행했다. 성수를 뿌려 신상을 목욕시키고, 옷을 차려입혔으며, 즐거운 향을 피우고, 빵과 고기 등의 음식과 음료를 제물로 바쳤다. 신상은 목소리 환각을 더욱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신상을 신전에 안치하기 전에 ‘입을 열어드리는 의식’을 치렀다. 또 환각 음성이 뜸해지던 시기에는 ‘입씻기 의식’을 거행했다. 사제는 주문을 외우며 신상의 입을 성수로 수차례 닦아냈다. 신상의 입을 정성껏 닦으면 신의 말씀이 부활할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명료함도, 출현 빈도도 점차 줄어들어갔다. 양원 정신이 약화된 요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서기전 3000년경,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문자가 발명된 것이다. 기록을 남기고 분류함으로써 사회적 복잡성이 크게 증가되었고, 사람들이 처리하는 복잡성의 수준도 상승했다. 양원적 정신의 사람들은 익숙치 않은 상황이나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내가 할 일의 결정을 신에게 미뤘었다. 하지만 복잡하다고 느끼는 한계치가 높아지자 더 이상 신을 찾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신에 의지하던 양원적 정신 체계는 점점 주관적이며 의식적인 정신으로 전환되어 갔다.

▣ 신의 소리가 사라지다

<자료2> 투쿨티-니누르타 제단의 부조
메소포타미아 역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신이 부재중인 그림이다.
(출처: 구글 아트&컬쳐)
<자료3>『투쿨티-니누르타 서사시』점토판
바빌로니아의 신들이 자신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바빌론 왕에게 화가 나서 아무런 계시도 남기지 않은 채 도시를 버리고 떠나버리는 내용이 있다. (출처: 영국 국립 박물관)
<자료4>『지혜의 주님을 찬양하리』점토판
『지혜의 주님을 찬양하리(루드룰 벨 네메키)』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첫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정식 제목이 아니다. 이 작품은『고난받는 의인의 시』라고도 불리는데, 신에 대한 의무를 다 한 정직한 사람이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약 성서 <욥기>와 닮아 이 작품의 주인공을 ‘바빌로니아의 욥’이라고 부른다. (출처: 위키피디아)

서기전 1230년경 메소포타미아 역사상 처음으로 신이 부재중인 장면이 그려진다. 아시리아의 왕 투쿨티-니누르타의 제단 전면에 그려진 그림이다. 돌로 된 제단에 새겨진 부조에서 투쿨티 왕은 신이 없는 빈 보좌를 가리키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자료2> 그림에서 뿐만이 아니다.『투쿨티-니누르타 서사시』라는 문헌의 서두에는 바빌론의 신들이 자신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바빌론 왕에게 화를 내고, 아무런 계시도 남기지 않은 채 도시를 버리고 떠나버리는 내용이 있다.<자료3> 이로써 투쿨티가 이끄는 아시리아군은 바빌로니아를 점령하고 승리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쓰여진『지혜의 주님을 찬양하리(Ludlul bēl nēmeqi)』라는 시에서는 “나의 신은 나를 버리고 사라지셨다. 나의 여신은 나를 돌보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 내 곁에서 걷던 선한 천사도 떠나버렸다.”며 더욱 직접적으로 신의 부재를 묘사하기도 한다.<자료4> 신이 인간을 저버린다는 생각은 양원적 정신이 뚜렷하던 시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그 무렵 양원 정신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증명해준다.

그런데 양원 정신의 약화는 의도치 않은 변화였고, 사람들은 신의 부재를 불안해했다. 신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신을 찾는 기도는 예배의 중심행위가 되었다. 다음은 메소포타미아의 전형적인 기도의 예시로, 신 나부에게 올리는 기도이다.

“오 주여, 당신은 강하신 자, 모든걸 아시는 자, 눈부신 자, 스스로 갱신하는 자, 완벽하신 자, 마르둑(바빌론의 최고신)의 첫 열매…… 공고히 예배의 중심이 되시며, 모든 숭배를 받으시는 이…… 당신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굽어보시며, 그들의 탄원을 받아들이십니다……. 외롭고 불안하며, 몸은 병들어 있습니다. 당신 앞에 이렇게 고개 숙이고 있사노니,…… 오 주여, 신 중에 현명하신 당신께서 입을 열어 나에게 선한 것을 명하소서. 오 나부신이여, 신 중에 현명하신 이여, 당신의 말씀으로 이 몸이 소생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신에 대한 예찬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개인적 탄원으로 끝내는 메소포타미아의 기도 형식은 큰 변화 없이 현대 종교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 무아(無我)상태를 만들다

종교들은 마침내 기도보다 더 효과적으로 신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식은 종교마다 달랐지만, 접신에 이르는 조건에는 모든 종교에 해당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무아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들은 성적인 환락이나, 술, 환각제, 향 등을 매개체로 하여 자아를 몰아내고 무아상태를 만들었다. 고린도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서 성행했던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아폴로 신의 제의를 통해 예를 들어본다.

아프로디테는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다. 그녀를 기리는 축제에서는 난잡한 성교와 이를 매개로한 황홀경이 행해졌는데, 이는 음란했던 아프로디테의 성품을 재현함으로써 그녀와 정신적 인격적 합일에 이르고, 신의 호의를 얻기 위함이었다. 의식이 흐려진 채 황홀한 상태가 되는 것은 영적인 세계에 이르는 길이며, 신과 같이 되는 신화(神化)의 과정으로 여겨졌고, 이들은 성적인 환락을 통해 무아지경에 도달했다.

<자료5> 디오니소스 축제 (출처: Speed art museum)

디오니소스는 무아경과 술의 신으로, 디오니소스의 숭배 의식이었던 비밀 야간 집회는 가히 광란의 축제라 할 수 있었다.<자료5> 처음에는 디오니소스 신에게 헌주한 후에 포도주 연회를 벌인다. 축제에 쓰는 포도주에는 밀의 맥각 같은 환각 물질을 첨가했는데, 이는 마약 환각제 LSD와 비슷한 효과를 냈다. 축제가 절정에 이르러서는 술에 취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제물로 바쳐진 짐승, 또는 어린아이를 산 채로 뜯어 먹고 그 피를 마셨다고 한다. 이는 신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상징적 행위로서, 일종의 신과의 합일이라는 뜻이었다. 『델피』의 저자 피터 호일은 디오니소스의 의식에서 입신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입신의 경지에 이르면 그들은 무아의 상태에서 난잡한 춤을 추었고…… 그리고는 ‘에보이!’라고 뜻을 알 수 없는 감탄사를 외쳐댔다. 입신의 절정에 도달하면 그들은 신과 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들은 마침내 디오니소스의 영에 의해 충만하게 되어 신적 능력을 얻게 된다.”

<자료6> 왼쪽 사진은 그리스 델피 신전 (출처: 위키미디어)
<자료7> 델피 신전의 피티아
피티아는 입신적 상태에서 낯설고 이상한 말로 중얼거리며 신탁을 전달했고, 옆에 있는 사제가 그 방언을 번역하여 기록하였다. 델피가 자리한 파르나수스에는 유황 연기가 땅과 바위의 갈라진 틈에서 새어나와 이 독한 연기가 사람들의 의식을 진정시키고 무아경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출처: artsy.net/)

아폴로는 태양의 신이자 진리와 예언의 신이다. 고린도에는 아폴로를 위한 신전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전은 델피에 있는 것이었다.<자료6> 델피의 신전에는 신탁을 받아 전하던 여사제인 ‘피티아’가 있었다. 피티아는 입신적 상태에서 낯설고 이상한 말로 중얼거리며 신탁을 전달했다. 이 방언은 옆에 있는 사제에 의해서 일상적인 언어로 번역되어 기록되었다. 신학자 타티안은 그리스의 신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음료를 마신 여자들은 열광상태에 도달한 뒤에 유황 연기를 들이키고서는 무아경에 돌입하였다. 그런 다음에야 소위 그녀들은 예언의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자료7> 델피가 자리한 파르나수스에는 유황 연기가 땅과 바위의 갈라진 틈에서 새어나와 이 독한 연기가 사람들의 의식을 진정시키고 무아경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물리학자 폴 할펀은 ‘그곳이 신전이 아니라 붐비는 아테네 거리나 시장이었으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을 것’이라 했고, 성서학자 브루스는 사도행전 16장 16절에서 바울이 만났다던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은 피티아였을 것이라고 한다. 또 사도행전 2장에서 예수의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했다며 서로 놀라워할 때, 사람들은 저들이 ‘술에 취했다’며 조롱했다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의 모습은 정신질환자에 가까웠다.

예수의 사도들은 술에 취했다는 조롱에 지금 시간이 낮 3시이니 취한 게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급성몽롱상태라 부르는 상황에서는 대낮에도 장면이 환각으로 나타난다. 대개는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데, 천국이 열리고 신이 나에게 말을 하기도 한다. 시각적 환각이 현실에 섞여 상상의 것들이 나타나거나, 시각적 환각에게서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사람이 뇌사 상태에 빠질 때도 “의식이 없다”, “의식을 잃었다”라고 진단하지만 간질병 환자가 발작을 일으킬 때도 “의식이 없다”, “의식을 잃었다”고 말한다. 전자는 정말 뇌의 활동이 멈춘 것이지만, 후자는 제정신을 잃었다는 뜻이다. 무아경에 빠진 사람들은 마치 간질 환자처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정신이 돌아온 후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 무아경에 이르는 것은 일시적으로 양원적 정신상태를 만드는 것이었고, 예언, 신들림 현상, 정신분열은 양원적 의식이 존재했던 잔재라 할 수 있다.

▣ 방언을 신성하게 여기다

당시 이런 종교들의 입신이나 무아경은 경멸스러운 행위나 저급한 광신도의 징표가 아니라 종교의 진정성과 능력을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증표가 되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드러내기를 원했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했다. 대중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 불안과 공포에서 구원받고자 했고 무녀들은 종종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철학자 플라톤도 그의 저서에 무아경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는 “델피를 비롯한 다른 그리스의 무녀들이 넋이 나간 채 무아경적 발성을 했고, 그것을 통해 그리스에 많은 유익을 끼쳤다”고 평했다. 유대 작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무아경은 오직 소수의 선량한 현자에게만 주어지는 신적인 영의 현존을 드러내는 최고의 증거’로 여겼고, 그리스도교에서도 방언을 ‘영적인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지’로 간주했다.

접신 상태에서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형성되던 당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방언’이란 개념은 기독교 신앙의 특징이 아니라 고대 종교의 통속적인 특징이었고, ‘방언을 말하다’는 표현은 선교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신성히 여겼던 행위를 차용해온 것이다.

<자료8> 마가복음 9장에서 예수한테 귀신들린 소년을 보여주는 모습 (출처: jw.org)

하지만 서기전 5세기부터는 신들림에 대한 태도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겼다. 신들림이라는 형태의 신성한 축복에서 귀신들림이라는 형태의 저주로 바뀐 것이다. 고대 후기에는 질병과 정신이상의 원인을 귀신으로 지목하는 추세로 변화했다. 마가복음 9장에서도 귀신 들린 사람을 ‘경련을 일으키고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렸다’며 간질 증세와 흡사하게 묘사했다.<자료8> 귀신에 대한 믿음은 악의 존재에 대한 그럴듯한 근거를 대중에게 제공했으며, 새로 등장한 기독교가 이교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기보다는 귀신으로 지목해버리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신성한 방언’의 능력이 있다던 그리스도교는 이제 ‘귀신들림’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는 종교로 탈바꿈하였다.

1976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가톨릭 구마 의식을 받던 여성이 과실치사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간질성 정신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던 아넬리제 미헬은 환각과 환청, 우울증에 괴로워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미헬은 자신의 몸에 악마가 들어왔다고 생각했고 신부들에게 구마를 요청했다. 하지만 구마는 실패했고 신부들은 과실치사 혐의로 법정에 올랐는데, 그들의 변호인은 그녀가 정말 귀신에 들린 것이라며 구마 의식 당시 상황을 녹음한 테이프를 재생했다. 그녀는 실제로 종종 악마가 떠든 것이라고 주장되는 괴이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간단한 외국어를 구사하기도 했다. 이는 성서에서 묘사했던 방언의 특징과 일치하지만 그녀는 방언을 한 것이 아니라 귀신 들린 것이라며 가혹한 구마 의식을 당하게 되었다. 한편 녹음 테이프를 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신부는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및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 현대에 방언을 다시 유행시키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신약시대 사람들은 방언이 구약성경 요엘서 2장의 예언이 신약시대에 실현된 것이라 믿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 사도행전 2장 16~18절

또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이 한 말을 보면,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이상한 언어로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 고린도전서 14장 2절, 5절

1914년,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이 현시대에도 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오순절 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성령 체험을 강조하며 빠른 속도로 선교해 나갔다. 개신교에서 이를 ‘오순절 운동’이라 한다면, 가톨릭에선 ‘성령쇄신운동’하여 1967년부터 시작되었다. 가톨릭 대사전에 따르면 성령쇄신의 활동은 주로 세미나와 성령기도회(성령기도=방언)로 나누어지며 기도회나 세미나 때 체험하는 성령세례(접신)가 중요하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현존과 그리스도의 사랑 등 갑작스런 체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1971년에 도입되었고, 1973년에는 가톨릭 성신운동협의회가 창설되었으며 현재도 가톨릭성령쇄신봉사자위원회로 개칭되어 활동하고 있다.

<자료9> 멕시코 하나님의 성회 전국 청년 대회에서 방언 기도를 하는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방언이나 심령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소리를 빠른 속도로 중얼거린다.<자료9> 이때 과하게 심취하여 흐느끼고, 울고, 절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들이 과연 신을 만난 것이라면, 50년간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며 괴로워하던 테레사 수녀와 “신이 주무시는 것 같다”며 신의 대리인인 교황직에서 자진 사임한 前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고민은 부질없던 것일까?

“제 안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갈망의 고통이 너무나 커질 때마다 저는 단지 주님을 바라고 또 바랍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 하느님은 저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고통과 괴로움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더 데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中

오는 6월 5일, 다가오는 ‘성령강림절’, ‘성령강림대축일’에도 성령의 강림을 믿는 이들은 이를 기릴 것이다.<자료10>

<자료10> 작년 성령강림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출처: 바티칸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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