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위한 수단인가-②
세계 종교 탐구 <48>■ 고해성사로 범죄를 은폐하다
다음은 10대 초반 시절 본당 신부와 몇 주 동안 여행하면서 성적으로,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한 마크 트로포드의 이야기다. “저는 다른 신부들에게 고해성사하며 학대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개입하여 이 학대를 멈추게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어렸던 저는 신부가 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며 그만두라고 말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요. 기도 몇 번 하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했어요… 마치 제 잘못인 것처럼요.” 크로포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워싱턴주 상원의원 전원에게 보냈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성직자에게 아동 학대 의심 사례를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되었다. 법안을 발의한 프레임 상원의원은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눈물짓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의회는 세대를 거쳐 반복될 수 있는 학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고, 워싱턴 주지사 로버트 퍼거슨도 이 법이 아동 보호를 위해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워싱턴 주 가톨릭 회의는 이 법안에 반대했다. 이 법안이 고해성사의 비밀 유지 원칙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폴 에티엔 시애틀 대교구장은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 5장 29절)’라는 성경 구절을 들어 “가톨릭 성직자는 고해성사의 비밀을 결코 어길 수 없다”며 이를 어기면 파문시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워싱턴주 스포캔의 토마스 데일리 주교는 “고해성사의 봉인을 어길 바에는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낫다”고 얘기할 정도로, 범죄 사실을 알게 돼도 밝히지 않겠다는 가톨릭계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주 측은 “이 법은 종교 탄압이 아니라 아동 보호를 위한 필수 조치”라고 맞섰고, 인권단체인 ‘자유를 위한 종교 없는 재단(FFRF)’은 “종교적 특권을 앞세워 아동학대를 은폐하는 것을 종교의 자유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며, “의무신고법은 제도적 침묵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법안의 의의를 꼬집었다.
이번 워싱턴 주법의 사례 이전에도 고해성사의 비밀 유지 문제는 아동 보호를 위한 명령이 있을 때마다 갈등을 빚어 왔다. 예를 들어 2013년부터 5년간 호주에서 진행된 왕립조사 보고서는 아동 성학대 주요 가해 집단으로 가톨릭 사제들을 지목했고 “고해 비밀이 성학대 신고와 아동 보호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자료7> 또한 보고서는 “아동 성학대에 관해 고해성사한 가해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용서를 받으려 했다는 몇몇 사례들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호주 정부는 성직자가 고해성사 중 아동 성학대와 관련한 내용을 들었을 경우 신고하도록 권고하였으나, 가톨릭계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보고서의 발행 이후 빅토리아주, 퀸즐랜드주 등 여러 주에서 ‘고해성사 비밀 유지 금지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자료7> 호주 ‘아동 성학대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위한 왕립 위원회’와 성학대 조사 최종 보고서
호주 조사 당국이 5년 간의 조사 끝에 아동 성학대 주요 가해 집단으로 가톨릭 사제를 지목했다. 아동 성학대 피해 장소 중 절반 이상 종교 단체였으며 그 중 60% 이상이 가톨릭교회였다. 보고서는 고해 비밀이 성학대 신고와 아동 보호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밝히며 아동 성범죄와 관련한 고해성사 내용을 신고하라고 권고했으나, 가톨릭계는 ‘신성불가침’을 이유로 거부했다. (출처: 호주 왕립위원회 홈페이지, 보스턴 글로브)
2021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가톨릭교회 성학대 피해 아동이 70년간 33만 명에 이르며, 가해자의 3분의 2가 성직자였고, 피해자의 80%는 10~13세 사이의 소년이었다는 프랑스 가톨릭 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CIASE)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자료8> 이 보고서에서도 고해성사가 피해자 침묵과 범죄 은폐에 활용됐다고 명시했으며, 고해실의 폐쇄성과 사제 독점적 위치가 아동학대 위험요소로 작용한다고 경고했다. 조사위원회 장 마르크 소베 위원장은 학대 사건을 인지한 성직자는 이를 검찰에 알리라고 권고했지만, 에릭 드 물랭 보포르 프랑스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은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고해성사 비밀 유지가 프랑스 법보다 위에 있다”며 반대했다.

<자료8> 프랑스 가톨릭 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 최종보고서 발표 현장. 위원회장(左)과 생존자 단체 대표(右)
2021년 프랑스 가톨릭 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CIASE)는 프랑스 가톨릭교회 성학대 피해 아동이 70년간 33만 명에 이르며, 가해자의 3분의 2가 성직자였고, 피해자의 80%는 10~13세 사이의 소년이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생존자 단체 대표 프랑수아 드보는 “이 모든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교회를 강하게 규탄했고, 조사위원회 장 마르크 소베 위원장은 학대 사건을 인지한 성직자는 이를 검찰에 알리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은 “고해성사 비밀유지가 프랑스 법보다 위에 있다”며 반대했다. (출처: 글로벌 뉴스, 엘 파이스)
범죄 사실을 알고도 침묵하는 것은 외국의 가톨릭교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한 취재 대행 유튜버는 “천주교 고해성사에서 신부님이 중대한 범죄 사실을 알게 되어도 정말 비밀을 지키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현직 신부들을 찾아가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실제로 “고해성사의 비밀은 불가침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고해소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살인자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도주자에 대한 부분들도 절대로 발설이 되지 않고요”라는 답변을 들었고, 여러 신부를 취재한 결과, 모두 동일하게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고해소에서 들은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거라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한 가톨릭 언론의 칼럼은 고해성사 때 들은 범죄를 신고하면 안되는 이유로 고해성사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사제가 법에 따라 자신의 범죄를 즉시 신고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범죄자가 자신이 저지른 학대를 자백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고해성사를 아예 하지 않거나, 고해성사에서 해당 범죄를 누락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와 사회는 ‘정의와 치유’에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할 것이다”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정의와 치유는 진실된 사과, 합당한 보상, 그리고 합당한 죄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범죄자가 사과를 하거나 자수를 하거나 적절한 처벌을 받는 대신, 자신의 범행을 용서하고 비밀에 부쳐주는 신을 찾아가게 만드는 제도를 지지하는 자들은 감히 정의와 치유를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그들 신의 법은 용서하지만 사회의 법은 결코 그렇지 않다
콜롬비아 역사상 최악의 아동 연쇄살인범 루이스 가라비토는 1992년에서 1997년 사이 소년 300여 명을 성추행하고 살해한 인물로, 가능한 한 잔인하게 고문하고 치욕적인 방식으로 능멸하며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악명 높다. 한 법의학자가 인터뷰하러 교도소를 찾아갔을 때 그는 성경책 한 권을 건넸다. 그 성경책에는 “신은 나를 이해하지만, 인간은 못한다”라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가라비토만 가진 생각이 아니었다.
파비오 구스망의 책 『교회 안의 소아성애:브라질 가톨릭 사제들이 연루된 성학대 사건에 대한 미공개 보고서(Pedofilia na Igreja: um Dossiê Inédito Sobre Casos de Abusos Envolvendo Padres Católicos no Brasil, 2003.)』에 의하면 브라질의 소아성애 가톨릭 사제 타르시지우 스프리시구의 일기장에서도 비슷한 심리가 내포된 문장이 발견되었다. “신은 용서하지만, 사회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타르시지우 신부는 이것이 자신이 “과거에 겪은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라 얘기했다. 그가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BBC의 다큐멘터리 『성범죄와 바티칸(Sex Crimes and the Vatican, 2006)』에 의하면 타르시지우는 1991년부터 여러 차례 성범죄 사실이 발각돼 전근한 이력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범죄 사실이 발각되지 않도록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범죄를 저지르기로 계획한다. 그의 일기장에는 ‘아동에게 접근하는 법’, ‘비밀을 발설하지 못할 아동을 고르는 기준’ 등을 세세하게 정리한 ‘아동 범죄 지침서’가 적혀 있었다. 그는 사회의 법에 걸리지 않도록 자신을 용서해 줄 신의 권위를 빌려 아이들을 협박했는데, 예를 들어 2001년 13세의 제단 소년 와그너를 성학대하고는 성경을 펼치게 하고, 제단 앞에 무릎 꿇게 한 후, 죄를 고백하도록 강요했고, 예수의 형상 앞에서 비밀을 지킬 것을 강요했다. 2002년 5살 소년 루카스의 옷을 벗기고 성학대한 후에도 예수 형상 앞에서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시키고, 누설할 경우 자신이나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은 용서하지만, 사회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들의 교리대로 자기들 신에게는 쉽게 용서를 받을 수 있으니, 사회의 법에 걸리지 않도록 신중히 범행을 저질러야겠다는 교훈이었던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고해성사의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주장할 때는 “신의 법이 국가의 법보다 위에 있다”,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등 신의 법을 사회의 법보다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범죄를 막기 위한 수준으로 최소한의 규칙을 정해놓은 사회의 법도 지키지 못하는 그들 신의 법이 사회의 법보다 우위에 서게 될 때, 타르시지우와 같은 범죄자들은 이제 어떤 법의 눈치를 보게 될까?
신의 법은 사회의 법 이상의 가치를 위한 고차원적인 법이어야 마땅하다. 사회의 법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 감히 신의 법을 논할 수 있을까?
■ 고해성사로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강요하다
해외에서는 성직자들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들을 ‘생존자들’이라 부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는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사건과 그 은폐를 파헤친 이야기를 다뤘다. 여기서 생존자 필 사비아노가 기자들 앞에서 증언하는 내용에서 생존자란 호칭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다.<자료9>

<자료9> 영화에서 생존자 필 사비아노가 증언하는 모습과 실제 인물(右)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스포트라이트》에서, 생존자 필 사비아노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한 신부에게 그루밍 성범죄 당한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성직자에게 당하면 몸은 물론 믿음까지 뺏긴다며 참담한 상황에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을 ‘생존자’라 부른다고 설명한다.(출처: 스포트라이트 스크린샷, 데일리메일)
“성별을 안 가렸어요. 동성애와 별개로 성직자가 직위로 아동을 강간한 일이에요. 남자든 여자든 애들이면 된 거죠. 전 11살이었어요. 데이빗 홀리 신부에게 강간당했죠. 기도하러 갔다가 변을 당한 거예요. 가난한 집 아이라면 종교에 크게 의지해요. 신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그게 그렇게 좋죠. 심부름이라도 시키시면 특별해진 기분이에요. 하느님이 도움을 청하신 것처럼. 추잡한 농담을 들으면 조금 이상하다가도 그게 둘만의 비밀이 되는 거죠. 그렇게 가까워져요. 그러다 저한테 포르노 잡지를 보여주죠. 그렇게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다 어느 날 자기 물건을 빨아달라고 해요. 그럼 그것도 해줘요. 그렇게 길들여져서 달리 방법이 없거든요. 어떻게 신의 부탁을 거절하겠어요? 이건 신체적 학대를 넘어 영적인 학대예요. 성직자에게 당하면 (몸은 물론) 믿음까지 뺏기는 거예요. 그래서 술이나 마약에 빠지고 그것도 안 되면 자살을 하죠. 그나마 겨우 몇몇 살아남은 자들을 ‘생존자’라고 부르는 거예요”
많은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살을 택한다. 호주 빅토리아주 가톨릭 성범죄 스캔들 조사 결과, 약 620명의 피해자 중 40명이 자살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미국 가톨릭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10만 명당 약 725명이 자살로 사망했다고 발표되었다. 이는 10만 명당 13명인 전체 인구의 자살률과 비교했을 때, 5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육과 영을 모두 학대당한 처절한 상황과 고통 속에서, 그럼에도 용기 있게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생존자’다.
그런데 그런 생존자들에게 이제는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를 강요하고 있다. 관련 기사와 성학대 보고서들에 의하면, 피해 사실을 고해 신부에게 얘기한 많은 생존자들은 오히려 질책을 들었고, 성모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하며 반성해야 했다. 어떻게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예수와 성경은 용서를 반드시, 무한히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를 들면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복음 6장 15절)”라는 구절을 들어,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본인도 용서받을 수 없다며 반드시 용서할 것을 강요한다.
또 베드로가 예수에게 잘못을 지은 자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물어보자 예수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마태복음 18장 21,22절)”고 답한 구절을 들어, 무한히 용서할 것을 가르친다.
또 교회 중직자나 성직자의 범죄 사실이 들통났을 때 자주 사용되는 성경 구절이 있는데, 이는 요한복음 8장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 이야기’로,<자료10> 부적절한 성관계를 한 범죄자이자 가해자인 여인을 예수가 나서서 용서한 사건이다. 간음한 여자를 벌하자는 무리들을 향해 예수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얘기 한다. 그들이 모두 돌을 놓고 사라지자 예수는 홀로 남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면서 여인을 돌려보낸다. 범죄자들은 이 구절을 들어 자신을 용서하라고 주장한다.

<자료10> 예수가 간음한 여자를 용서해주는 장면
요한복음 8장에는 예수가 간음하다 걸린 여자를 용서하는 일화가 나온다. 여자를 벌하려는 무리들에게 예수는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 명한다. 그러자 예수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그녀를 정죄할 수 없었다. 이 일화는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가해자에게 자비를 구하는 맥락에서 자주 인용되었다. (출처: biblevideos.org)
실제로 지난달 몰타의 전 대주교 조지 프렌도는 성직자 학대 피해자들한테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학대자를 용서해야 한다”고 발언해 비판이 쇄도했다. 논란이 되자 프렌도는 “용서는 복음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몰타 사회복지사 협회는 “생존자의 여정은 종종 두려움, 혼란, 분노, 그리고 깊은 정서적 고통으로 점철됩니다. 피해자가 정의를 구하기도 전에 가해자를 용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 책임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치유와 침묵을 위험할 정도로 혼동하는 것입니다”라고 지적했다.
홍콩 기독교협의회의 총무인 조효통(Tso Hiu-tung)은 기독교의 성학대 사건이 드러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 중 하나로 ‘용서’를 들었다. 용서에 대한 가르침이 가해자의 처벌 촉구를 지연시키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었다. 피해 사실을 고백하러 고해실을 찾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한 본인의 잘못’을 반성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된 것도 같은 이유다. 학대의 상황에서 ‘용서의 원칙’은 가해자의 무기가 될 뿐이다.
지난 2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대규모 거리 퍼레이드에 가톨릭 성학대를 풍자하는 조형물이 등장했다. 이 작품은 고해소 앞에 서 있는 제단 소년과, 안에서 뻗어 나온 팔이 손짓하며 소년을 유인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고해소 옆에는 굵은 글씨로 “예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자료11>

<자료11> 독일 쾰른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등장한 가톨릭 풍자 조형물
이 조형물은 고해소안에서 뻗어 나온 팔이 손짓하며 겁에 질린 제단 소년을 유인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 고해소 옆에는 굵은 글씨로 “예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JESUS LIEBT DICH)”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제는 고해소에서 아이들을 그루밍해 학대하는 모습이 공개적으로 풍자될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출처: Kanal13 유튜브 캡처)
이에 쾰른 대교구는 “고해소에 쓰인 문구는 예수와 학대를 직접적으로 연관 짓고 있다. 만약 신의 아들이, 특히 가톨릭교회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대 행위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암시를 준다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선을 넘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쾰른 카니발 위원회 위원장인 크리스토프 쿠켈콘은 “부끄럽고 부적절한 것은 학대의 묘사가 아니라, 학대 그 자체”라며 대교구의 비판을 강하게 반박했다.
2018년 MHG 연구팀(Mannheim, Heidelberg, Gießen 대학 공동 연구팀)의 최종보고서 『독일 주교회의 소속 가톨릭 사제, 부제, 남성 수도자에 의한 미성년자 성적 학대(Sexueller Missbrauch an Minderjährigen durch katholische Priester, Diakone und männliche Ordensangehörige im Bereich der Deutschen Bischofskonferenz)』에 따르면, 1946년부터 2014년까지 독일에서 최소 3,677명이 1,670명의 성직자에 의해 학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13세 이하였으며, 약 3분의 1이 제단 소년이었다.
이제는 고해소에서 아이들을 그루밍해 학대하려는 모습이 공개적으로 풍자될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대교구는 그 풍자가 선을 넘었다며 분노했지만, 정작 선을 넘은 것은 예수가 부여한 면죄권으로 시작된 그들의 2천 년 “성적 집착과 착취의 역사”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