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

발행일 발행호수 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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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을 맞아 사진전시실에 1958년 소사신앙촌 농장에서 무 수확하는 모습이 전시되었다.

올해 추수감사절 사진전시실에는 1958년 소사신앙촌 농장에서 무를 수확하는 사진이 전시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 농장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양한 신앙체험기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 어떻게 이런 곳에 심나?

1957년에 소사에서 여청 총무로 일을 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정문 밖에 배추를 심으라.” 하셔서 나가 살펴보니, 완전히 자갈밭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심나?’ 하고 당혹스러웠지만, ‘심으라 하셨으니 심자.’ 하고 배추, 무, 고구마 등을 심었습니다. 거의 돌을 들고 그 밑에 씨를 놓아 둔 것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가을에 그 자갈밭에서 하나에 1관이 넘는 고구마, 배추, 그리고 손으로 뽑기 힘들 정도의 무를 수확했습니다.

그 다음 1959년에도 심었는데, 그때는 배추가 3포기쯤 나오다가 말라 죽고, 고구마는 씨도 못 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금년에도 많이 뽑아 먹었느냐?”고 물으셔서 사실대로 말씀드리자, 축복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하려고 그러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김도삼 승사/기장신앙촌

■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해

저는 1962년경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여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은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신앙인의 마을이었습니다. 노구산 정상에는 오만제단이 있었고 학교와 주택, 공장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늘 그리던 신앙촌에서 살게 되니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지게를 져도 하나도 무겁지 않아서 훌훌 날듯이 뛰어다니며 ‘지게가 아니라 날개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과수원에서 일했던 저는 농장에서 하는 일이 익숙했지만 신앙촌에서 하는 일은 의미가 달랐습니다. 이 일을 하며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의 어떤 일보다 소중하게 느껴졌으며,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무거운 지게를 먼저 지려고 하고 힘든 일을 서로 하려고 했습니다.

안진옥 권사/기장신앙촌

▲ 소사신앙촌 포도밭에서 포도 재배하는 모습(1950년대 후반)

어딜 가나 찬송 소리가 울리는
신앙촌에서 직원들은
찬송을 부르며 힘차게 일해
자갈밭에 배추를 심으라 하셔서
돌 밑에 작물 씨를 놓아뒀는데
그해 가을 엄청난 수확을 거둬
이듬해에는 작물이 말라 죽어서
사실대로 말씀드렸더니
하나님의 축복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이라 하셔

■ 찬송을 부르며 힘차게 일해

1957년 당시는 전국 방방곡곡에 전도관이 개관되던 때로, 제가 살고 있는 평택에도 전도관이 세워져 저는 아이들과 함께 평택전도관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늘 소망하던 소사신앙촌에 입주해 농장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농장은 농작물 재배, 양계장과 양어장 운영 등 다양한 일을 하며 농작물만 해도 각종 곡류와 채소, 과일까지 재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땅에서 뽑기 힘들 정도의 튼실한 무와 배추, 팔뚝보다 굵은 고구마 등 보기 드문 대풍을 이루어, 신앙신보에 “대풍 이룬 농작물”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찬송 소리가 울리는 신앙촌에서 농장 직원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힘차게 괭이질을 했습니다. 가을날 잘 익은 벼 이삭을 바라볼 때면 만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이지수 집사/기장신앙촌


소사신앙촌 농장은 규모도 크고, 보기 드물 정도의 풍작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농장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음은 과거 본지에 실렸던 소사신앙촌 농장에 관한 인터뷰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 어른 머리보다도 더 큰 고구마 수확

건설대에 들어가려고 함평에서 소사신앙촌에 왔는데 인원이 다 차서 저는 농장으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게 1958년 4월이었어요. 그때 참 재밌게 일했어요. 한 반에 20여 명씩 7반까지 있었는데 저는 2반 반장을 했어요. 우리 반이 워낙 일을 잘 해서 일손이 더 필요하면 다른 반에서 우리 반을 보내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1958년에는 고구마가 잘되어 두 개면 한 관, 4킬로그램이 나갈 정도였어요. 그런데 우리 밭 바로 옆에 있는 사회 사람 밭은 흉작이 들었어요. 바로 옆이니까 다 보이죠. 어른 머리보다도 더 큰 고구마를 하나님께서 들고 이만제단 단에 서셔서 이게 뭐냐고 물으시면 다들 호박이라고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성덕례 권사/기장신앙촌

■ 거름지게를 져도 향취가 진동

제가 시온농장에 간 것은 1957년 5월 7일입니다. 그날이 바로 제 생일이어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만제단에서 저하고 10명이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가기 열흘 전쯤에 소사교회에서 한 10명이 먼저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온농장에 오셨는데요. 인천교회 단에 서시고 가시는 길에 꼭 들르셔서 축복을 해주셨어요. 처음에 갔을 땐 적산가옥 한 채만 있어서 그곳에서 함께 합숙을 했는데 거기에 있는 우물에 축복을 주셔서 저희는 매일 그 우물에서 생명물을 먹었습니다.

초기에는 큰 통이 장착된 차로 인분을 가져다가 거름으로 만들어 농사를 지었어요. 밭에 뿌릴 때도 거름을 직접 퍼서 뿌렸는데요. 당시에는 거름을 져도 향취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참 행복합니다.

그렇게 수확한 배추는 한 포기에 4관이나 나갔어요. 4관이면 16킬로그램이에요. 배추 한 포기가 한아름 되었습니다. 고구마가 엄청 크게 수확되어 하나님께서 단에서 소개하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최춘길 권사/기장신앙촌

■ 농사가 잘되어 교인들이 구경와

배추 농사가 잘 되어서 이만제단 교인들이 구경온다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배추 한 포기가 한아름이나 되어서 ‘나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배추같이 알찬 열매가 되고 싶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수확된 무가 어찌나 크고 길고 연하던지 무밭에서 무를 뽑다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깝잖아요. 부러져서 땅에 있는 것을 먹었는데 놀랐어요. 배보다도 더 달고 시원했거든요.

주채경 권사/기장신앙촌


신앙신보에 실린 소사신앙촌 탐방기

▲ 1960년 9월 26일자 신앙신보에 실린 소사신앙촌 탐방기

1960년 8월 22일자부터 10월 24일자 신앙신보에는 총 8회에 걸쳐 소사신앙촌 탐방 기사가 연재되어 당시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1960년 10월 17일자 신앙신보에는 소사신앙촌 탐방기 농장편이 다음과 같이 실렸습니다.

“「시온농장」―전답 합해 6만여 평의 광대한 지역에서 수확되는 양곡은 신앙촌 주민들의 급식이 되고 있는바 사실상 신앙촌 건설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1957년 2월경 처음 신앙촌 농장으로 화한 후 기계적인 특수재배 등 종전과는 현저한 수확을 보았는데 특히 포도원의 소득 양은 크다 하며 충해나 자연적인 피해 같은 것은 극히 적다고 한다. 다년간 농업에 종사하여 조예가 깊은 도일경(都日敬=중국인) 집사의 인솔하에 남녀 70여 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는 바 황소가 세 마리, 그 외에 기계화한 농구가 갖추어져 있다.

또한 농원 한쪽에는 양어장이 있는데, 순 금붕어만 해서 현재 2만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 약 5백 평의 논을 적당히 파 가지고 여러 종류의 고기를 따로 따로 분배해 놓았다. 3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겨우 200마리를 구해다 놓았었다고 하는데 그간 고충도 많았으나 지금은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어 어장 안의 고기들을 시가로 따지면 상당한 액수가 되리라고 한다.

이 농장에서는 또한 신앙촌 내 2구 제3직매소를 경영하고 있는데, 소위 신앙촌 안에서는 백화점이라는 곳으로 모든 농작물이 다 진열되어 있다. 장소는 다르지만 괴안리 산비탈에는 약 천여 평의 양계장이 있다. 신앙촌 공장에서 사용되는 달걀을 공급해 주고 있는 이 양계장에는 산란을 목적으로 하여 주로「레구옹」만 2000수를 기르고 있다.

앞으로 신앙촌이 확장됨에 따라 이 농장의 발전은 더욱 기대되고 있다 하는데 주민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지를 확보하는 것이 선결 문제로 현재 집약 농업에 있어 최대의 수확을 목표로 실험 연구한 바가 많다고 하는 바 내다보이는 경인 간의 넓은 평야를 바라볼 때 농장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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