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과 감격으로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하나님을 처음 만나 뵌 순간
발행일 발행호수 2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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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사진은 서울 청암동 이만제단에서 설교하시는 하나님 모습(1957년경).

6.25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 그리고 감동을 주신 하나님. 이번 테마로 보는 신앙체험기에서는 하나님을 처음 뵌 순간들을 발췌하여 엮었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6·25 전쟁 중 1·4 후퇴 때 저와 저희 아이들 넷은 노량진 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야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차 안에 짐과 리어카를 싣고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키가 크고 귀하게 생기신 신사 분이 다가오시더니 “애기 어머니! 애기 어머니!” 하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제 말을 들으세요. 기차에 있지 말고 내려오세요.” 하셨습니다. “누구신데 그러세요? 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이것도 겨우 뚫고 들어온 거예요.” 라고 했지만 그분은 “제 말을 좀 들으세요. 이 차 타면 안 됩니다. 안 돼요.” 하고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기차 위로 올라오셔서 저희 아이들과 리어카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분과 헤어지고 걷다가 바로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그새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이 금방 어두워져서 철로 옆의 빈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지친 몸을 쉬는데 갑자기 폭격 소리가 들리더니 마을 방송이 나왔습니다. 저희가 타려고 했던 기차가 폭격을 맞아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불에 타서 몰살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밖에 나와 보니 멀리서 불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기차에서 내리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셨던 신사 분이 떠올라 ‘그분이 우리 식구를 살려 주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 1955년 3월 남산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참여했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 분이 단상으로 걸어 나오셔서 그분을 쳐다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 통에 저희 가족 모두를 살려 주신 신사 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집회를 인도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분을 다시 뵙게 되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음전 승사/기장신앙촌

허무로 가득한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셔

처참했던 6·25 전쟁을 겪은 저는 이런 비극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허무감에 젖어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부산 초장동의 친척 오빠 집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인생은 어차피 죽게 마련이다. 지금 당장 죽는 것과 조금 더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무런 기쁨도 소망도 없으니 차라리 삶을 마감해야겠다는 허무감이 가득했던 그 순간, 제 앞의 모래밭 위로 키가 훤칠하신 분이 홀연히 나타나시더니 활짝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주변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그분이 서 계신 곳은 빛을 비춘 것처럼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와이셔츠에 수박색과 감자주색 줄무늬의 산뜻한 넥타이, 광채가 나는 얼굴과 형언할 수 없이 환한 미소.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습니다. 어둡고 허무했던 심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계속 함박웃음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분이 계시던 곳을 바라보았는데, 언제 가셨는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후 저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1955년 10월, 지인으로부터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이 초량에서 부흥집회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은 불과 같은 성신을 내려 준다 하여 ‘불의 사자’라고 불리며, 집회를 하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고 불치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 전국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한번 참석해 보고 싶어서 집회가 열리는 날 초량동의 집회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찬송을 인도하던 목사가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신다고 하여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순간, 저는 “아!” 하고 터져 나오는 탄성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와이셔츠와 수박색과 감자주색이 어울린 넥타이, 환한 그 미소. 수년 전 바닷가에서 뵈었던 바로 그분인 것이었습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입으셨던 옷과 넥타이까지 똑같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도대체 저분이 누구시기에…….’ 저는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박 장로님을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안순식 승사/기장신앙촌

▼ 아래는 1957년 4월 30일 이만제단 낙성집회 때의사진. 폭포수 같은 이슬성신의 은혜가 내리는 광경이 사진에 찍혔다.

눈부신 광채가 온 몸에서 뿜어 나와

육군 정훈장교(政訓將校)에 지원하여 소위로 임관된 저는 서울 용산의 육군 본부에서 대외 보도 업무를 맡아 일하게 되었습니다. 1955년 어느 날, 사람들 사이에서 남산 집회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남산에서 집회를 하셨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렸으며, 향기가 진동하고 불이 떨어지는 등 놀라운 은혜를 많은 사람들이 체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즈음 흑석동 교회 예배 시간에 이운집 목사가 박태선 장로님은 은혜를 부어 주시는 분이니 이번에 열리는 집회에 참석해 보라고 권유하여 저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여의도 백사장에 마련된 집회장에 들어섰을 때, 마침 박 장로님께서 단상으로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등단하신 박 장로님을 뵌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리 위에는 눈부신 빛이 드리워졌으며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제일 앞자리로 들어간 저는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놀라움으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광채가 사라지자 박 장로님의 말끔한 정장 차림이 보였는데, 그 순간 어디서 나는지 과일 향기처럼 상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콧속으로 쑥 들어와 배 속까지 내려가며 아주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 이것이 은혜구나. 사람들이 말하던 향취가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경숙 전직관장/기장신앙촌

“이제 일어나세요. 내가 불러냈지요.”

1947년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에서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너무나 밝고 환한 곳에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으신 젊은 분이 편안히 앉아계신 것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그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은 엄지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시며 “내가 성신이야. 내가 주님이야.”라고 하셨습니다. 꿈이 하도 생생해서 잠에서 깬 후에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경기도 평택으로 내려와 살던 1956년 2월 어느 날, 잠을 자는데 전에 꿈속에서 뵈었던 그 젊은 분이 다시 꿈에 나타나셔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시며 “내가 의인이야.” 하시고는 “네가 나를 찾아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인자한 음성과 동작 하나까지 10여 년 전 꿈에서 뵈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셔서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찾아오라고 하셨으니 꼭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에 내리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서 그날 밤은 주변 교회에서 지내고 다음 날 그 분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큰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 할머니에게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는지 물었더니 근처에 있는 전도관이라는 곳에 가 보라고 했습니다. 전도관에 도착해 안내하는 여자 분에게 제 사정을 설명하면서 여기서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새벽에 떠나겠다고 하니, 여자 분은 그러라면서 내일 새벽예배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인도하신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예배실을 가득 메우고 철야 기도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 ‘꼭 그분을 찾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 날 새벽예배 때 단상 옆의 문이 열리며 어떤 남자 분이 들어오시기에 저는
‘저분이 박 장로님인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는 순간, 저는 “아이고 하나님!” 하며 그 자리에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미소를 머금고 인자하게 바라보시는 박태선 장로님은 제가 꿈속에서 두 번이나 뵈었던 바로 그분이셨던 것입니다. 저는 바로 앉을 생각도 못하고 엎드린 채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때 찬송을 인도하시던 박 장로님께서 잠깐 멈추시고는 “엎드린 사람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하시더니 “내가 불러냈지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눈물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려 제 치마와 앉아 있던 마룻바닥까지 적셨습니다. 저는 놀라움과 감격으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오직 뜨거운 눈물만이 쉴 새 없이 흘렀습니다.

이지수 집사/기장신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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