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건강하고 밝고 맑게 살라고 하셨던 하나님
대신교회/장숙자 집사잘나가던 수입 의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갖고 있던 100억 대 옷을 다 날리고 재산도 모두 압류가 들어오는 상태에서 자살까지 생각하던 차에, 2년 정도 먼저 교회를 나가던 가족을 통해 저희 건물에 신앙촌상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08년 12월이었고, 그러면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대신교회에 들어서는데 정면의 존영을 뵈면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때는 저 모습이 아니셨는데…
1970년대 중반, 부산에서 당시엔 가장 번화한 광복동에서 맞춤옷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기성복이 잘 나오지만 그때는 모두 맞춤옷이었습니다. 디자이너 여러 명을 두고 수입 원단과 이태리 단추 등으로 최고급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기장에 계셨던 하나님을 고객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주로 재단사나 미싱사 등 실무자들이 갔는데 처음에 인사를 드리러 간 이후 6,7년간 가끔씩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편안하게 해주시던 기억은 분명히 남아있습니다. 신앙촌을 믿으라고는 한번도 말씀 하신 적이 없고, 그저 “여기 공기가 좋지?” 하시며 한번씩 오라고 하시는 정도였습니다.
맞춤옷을 하던 저는 1970년대
하나님을 고객으로 모셨는데
편안하게 대하시며
종교에 대한 이야기 없이
밝고 맑게 살라고만 말씀하셔
어느날인가 “종교는 자유인데, 무슨 종교를 갖고 있냐고 묻고 싶지는 않다”고 하셔서 “저는 종교도 나이론이라, 이 사람이 여기 가자고 하면 여기 가고, 저기 가자고 하면 저기 갑니다”고 말씀을 드리니까 “언젠가는 한번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나와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종교에 시간이 안 난다”고 말씀을 드리자 “나이가 훨씬 들면 종교를 찾게 될 것이니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고 항상 건강하고 밝고 맑게 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종교 성지로써 다시 찾은 신앙촌. 교회에 나간지 2개월 쯤 지나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저를 인도하신 꿈이구나 싶습니다. 꿈에 하나님께서 등을 탁탁 두드리면서 마시라고 물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까 그 물은 생명물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 신앙촌에 드나들 때는 담요나 내복 정도 있는 줄 알았는데 신앙촌상회를 하면서 물건이 이렇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제품 또한 정직하다는 것을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몇 백만 원짜리 취급하던 예전 버릇이 있어 돈을 계산하다가 동그라미를 하나 혹은 둘씩 더 치는 실수를 하고 있지만 신앙촌상회를 하면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지금, 언젠가는 정착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이 딱 맞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부르는 찬송가 가사 하나하나는 다 마음에 와 닿는데 설교 말씀은 자막을 봐도 1년이 넘도록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구나!’ 깨달아지면서 말씀이 와 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