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말씀과 새생명을 주시기 위해 온 힘을 다하셨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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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이슬성신절 사진 전시실> 지방 집회 여정 중 교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 모습(1956년 경)

1955년 3월부터 15차례에 걸쳐 전국적으로 개최된 하나님 순회 집회는 1956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집회에서 은혜받은 목사들이 앞장서서 교인들에게 집회 참석을 권고했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참석자들의 행렬로 인해 집회 참석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1956년은 기성교계의 방해가 더욱 심화된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회는 더욱 힘차게 이어졌고, 집회마다 은혜가 폭포수 같이 내리고 수많은 병자들이 치유되었습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집회를 막으려 했으나, 참석자들이 계속해서 증가하며 천막은 증설되었고, 집회기간은 연장되었습니다.
기성교회의 모략중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고름 냄새가 감도는 집회장에서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며 집회를 이끄신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 은혜를 체험하고, 귀한 말씀 들으며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해
1956년 4월, 박태선 장로님께서 청주 외덕교회에 오셔서 6일 동안 집회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교회 앞의 넓은 마당에 천막을 친 집회장에는 외덕교회 교인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그 많은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안수를 해 주셨는데, 어느 날인가 사람들의 머리에 안수를 하시는 순간 밀가루 포대에서 밀가루가 확 하고 쏟아지는 것처럼 사람들 머리 위에 뽀얀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뽀얀 것이 사람들 위로 점점 쌓이고 쌓이더니 나중에는 천막 안이 온통 뽀얗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창 예배를 드릴 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제 온몸을 통과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몸의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 가벼웠습니다. 왜 그리도 기쁘고 즐거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고 그 한없는 기쁨을 표현하려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회 중에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사이에 종이 한 장을 주고받아도 증거가 있거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증거가 없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신이 때로는 뽀얀 이슬과 같이, 때로는 바람과 같이 임하신다는 말씀을 들으며 제가 그동안 집회장에서 체험한 것이 바로 성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 호세아서의 ‘이슬과 같이 내리는 성신’에 대한 구절도 박 장로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제까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본 후 “이 음식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는 설명을 들은 것처럼, 성신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 주시는 말씀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놀라운 은혜를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명확하게 깨우쳐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것을 나는 알았고, 세상에 없는 것을 내가 받았구나!’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드리면서 앞으로 이 한 길을 따르겠노라고 마음 깊이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황은실 승사/기장신앙촌

▣ 죄를 깨우쳐 주시는 말씀 듣고 죄를 회개해
1956년 3월이었습니다. 하루는 저희 집에서 제일교회 교인들이 모여 구역예배를 드렸는데, 그분들 이야기가 박태선 장로님께서 곧 여수에서 집회를 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면 제직회(장로교에서, 교회의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교회 업무를 결정ㆍ수행하기 위하여 여는 모임)에서 제명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직회에 소속된 그분들은 “박 장로님 집회에 꼭 가고 싶은데 어떡하지요? 우리 몰래 보자기를 쓰고 갈까요?” 하면서, 저를 보고는 “당신은 직책이 없으니 마음껏 집회에 갈 수 있겠네요” 하며 부러워했습니다.

4월 2일, 박 장로님의 여수집회가 열리는 장소는 서초등학교 주변의 넓은 운동장이었습니다. 저는 집회 첫날 일찍부터 서둘러서 집회장에 갔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자 하나님께서는 집회장의 군중을 향하여 “마음 문 여세요” 하시면서 “병뚜껑을 닫아 놓으면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듯이 마음 문을 열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제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죄를 해결 짓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으며 성신의 은혜를 받아야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일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십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며 예배당에만 들어오면 천국에 간다고 배웠기에 그런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 부모님께서 항상 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하셔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며 특별히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탐내고 미워하는 것과 같이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깨우쳐 주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 양장점에서재단사로 일했을 때, 한번은 알뜰하게 재단하여 예상보다 천이 남았을 때 제가 그 천으로 옷을 해 입은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남의 것인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스러웠습니다. 지난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앞으로 죄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수 집회가 열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똑똑히 목격하면서 ‘정말 여기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백덕 승사/기장신앙촌

▣ 환자들로 악취가 가득한 장소에서 예배 드리자 공기 맑아지고 좋은 향기 진동해
1956년, 서울 제2운동장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하신 분이 나오신다고 해서 할머니를 따라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운동장 가득히 펼쳐진 천막 안에 들어섰을 때 처음 보는 엄청난 인파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인파 속에 누워 신음하는 환자들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중병을 앓는 환자들에게서 지독한 악취가 풍겨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코를 감싸 쥐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나 싶었는데 박 장로님께서 등단하신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키가 크신 신사 분이 단상에 올라 찬송을 인도하시자 사람들은 집회장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찬송했고 찬송을 잘 모르는 저는 더듬더듬 따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독하게 풍기던 악취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주변에는 여전히 중환자들이 누워 있었지만 공기가 감쪽같이 맑아지며 산뜻하고 좋은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공기 참 좋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2운동장 집회가 끝난 후에는 마포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집회장을 찾아갔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곳은 한강변의 산언덕으로 박 장로님께서 큰 교회를 세우실 자리라고 했습니다. 집회 첫날 박 장로님께서는 운집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안수를 마치신 후 “병 나은 사람은 일어나 사실 그대로 말하세요” 하시자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이 일어나더니, 몇 명은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붙잡고 이야기했습니다. 그중 치마저고리 차림의 젊은 아가씨는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였는데 박 장로님께 안수를 받고 말문이 터져서 말을 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또 중년 아저씨는 앉은뱅이였다가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일어서게 됐다며 펄펄 나는 듯이 단상을 뛰어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도 ‘세상에! 얼마나 기쁠까!’ 하며 가슴 뭉클했습니다. 병이 나았다고 외칠 때마다 집회장의 군중은 크게 환호하며 손뼉을 쳤습니다.                                                                           이복례 권사/기장신앙촌

▣ 하나님 집회를 방해하는 기성교회에도 기성교인과 수많은 사람들 집회에 참석해
군산에서 살 때 집 근처 동북 장로교회에 다니던 중, 1956년 4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동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광고지를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무엇일까 궁금하여 저도 한 장 받아 보았더니,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의 천막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광고지를 받아 들자 무슨 귀중한 보물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참석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회 날짜를 기다렸습니다.

며칠 후 제가 다니는 교회에 갔더니 ‘개복동 교회에서 회의가 있다’고 다들 가라는 광고를 하여 저도 참석을 하였습니다. 개복동 교회에는 군산의 여러 교회에서 목사, 전도사, 교인 등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청년들 몇 명이 회의를 주도하였는데,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박태선 장로는 거짓 선지자니 그 집회에 가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을 보니 여러 기성교회에서 연합하여 며칠 후 군산에서 열리는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사람들을 참석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중에 제가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더 은혜가 많은가 하고 찾게 되는데 왜 못 가게 합니까?”하고 한 마디를 하였더니, 회의를 주도하는 청년들이 저에게 눈총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박 장로님의 집회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회의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다리던 집회가 열리는 날 저녁에 그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기성교회에서 박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려는 노력과는 상관없이, 기성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집회에 모여들었습니다. 넓은 장소에 엄청난 규모의 천막이 쳐져 있었는데,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콩나물 시루에 콩알이 박혀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천막 안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선지 모르게 시원한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습니다. 그러더니 바로 옆에서 깨소금을 찧는 것 같이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소한 냄새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백합화 향기와 같은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순간적으로 코에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잠시 후 박 장로님께서 단에 올라오셔서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찬송을 따라 부르는 도중 갑자기 코를 찌를 듯한 지독한 냄새가 진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부르는 사이에 그 좋지 않은 냄새가 없어지면서 주위에는 너무나도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진동하였으며, 목 안으로 시원한 물이 계속해서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는 며칠 동안 이런 마음은 계속 되었습니다.                                      박진자 권사/기장신앙촌

▣ 기성교회의 행패에도 온화하게 예배를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 모습 잊지 못해
1956년 4월 23일, 대전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한 명을 전도하여 함께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집회 중에 박 장로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는 잠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때 저는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도한 친구와 함께 장로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발걸음이 워낙에 빠르셨지만, 운 좋게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눈 안찰을 위해 엄지손가락을 제 눈에 갖다 대셨는데 어찌나 아픈지 눈알이 뽑히는 것 같았고, 배에 손을 갖다 대셨는데 누가 배를 송곳으로 쑤시는 것처럼 아파서 소리를 지를 뻔 했습니다. 고통이 점차 사그라들 때쯤 몸이 가뿐해지는 것이 느껴져서 ‘안찰을 받으면 죄가 씻어진다는데 그래서 몸이 이렇게 가벼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로는 눈이나 생각으로도 죄를 짓고 싶지 않아서 길에 걸린 간판도 함부로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행동을 조심하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 서울 제2운동장집회에도 참석했습니다. 찬송을 마치신 하나님께서 ‘병자들은 일어나라’고 외치시자 집회장 여기저기서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이 일어나 기뻐 환호하였습니다. 그 광경이 너무나 신기하여 자세히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순간 제 몸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가볍게 느껴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 집회에서는 기가 막힌 향기도 맡아졌는데, 그 향기는 향취 은혜로 세상 향기와는 비할 수 없이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 은혜는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되어 어디를 가든지 향기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향취가 맡아질 때 마다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를 포함해 하나님께 은혜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기성교회에 나가지 않고,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집에 모여 예배를 드렸고, 나중에는 창고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다가 마침내 땅을 사서 전도관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전국 곳곳에 전도관이 지어지기 시작하자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이단으로 몰며 온갖 방해를 일삼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전주에서 열린 두 번째 하나님 집회에서 기성교회 목사와 청년들이 난동을 부렸던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1956년 6월이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어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던 중에 갑자기 장내가 소란스러워 주위를 둘러보니 기성교회 목사와 젊은 청년 무리가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 앉아있는 사람들을 밟아가며 단상에 계신 하나님 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단상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급히 단상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에워싸서 보호했는데, 기성교회 청년 무리 중 한 명이 단상 위에 있던 마이크 대를 집어 들고 하나님을 향해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청년이 휘두른 마이크 대가 허공에서 두 동강으로 부러져 땅에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으셨지만 저희는 너무 놀라 괜찮으신지 여쭤보았고, 하나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시며 오히려 저희를 안심시켜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몇 시간 동안 계속되던 기성교인들의 난동은 경찰이 출동해서야 잠잠해졌고, 엉망이 된 집회장을 수습한 후에야 가까스로 집회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기성교회의 난동과 갖은 행패를 겪으시고도 온화한 얼굴로 예배를 인도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순모 권사/천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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