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타락과 개신교의 시작
기독교 ‘개신교’의 시작[요약] 16~17세기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며 등장했던 개혁운동.
# 교회의 타락
15세기 말, 성 베드로 대성당을 다시 짓기 위해 큰돈이 필요하자 교회는 면죄부를 대량으로 만들어 유럽 전 지역에 팔았어요. 면죄부는 지은 죄를 로마 교황의 이름으로 없애주는 증명서예요.
교회보다 왕의 힘이 강했던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면죄부를 많이 팔지 못했지만, 교황보다 황제의 권력이 약했던 독일에서는 성직자들이 영주와 농민들에게 면죄부를 마구 팔아 그 돈을 로마 교황에게 보냈어요.
#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교황이 면죄부를 판매하는 이유가 죄를 없애주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호주머니를 불리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사람들의 불만이 점점 높아지자 독일의 신학 교수였던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회 정문에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붙였어요. 루터는 공개 토론까지 열어 교회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어요.
# 신교의 탄생
1521년, 로마 교황은 결국 루터를 파문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황의 지나친 경제적 수탈로 인해 먹고살기 힘들어진 많은 사람들이 루터를 따르게 되었고, 루터는 ‘새로운 종교’란 뜻의 ‘프로테스탄트(신교)’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기존 가톨릭교와의 오랜 싸움 끝에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게 됐어요. 이후 종교 개혁 운동은 칼뱅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보이며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어요. 하지만 신학자들의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해 다양한 종파로 분열돼 더욱 혼란스러졌어요.
[궁금해요!] 종교개혁으로 종교는 개혁이 되었나요?
종교개혁은 신교를 만들어냈지만, 가톨릭과 큰 차이점이 없었어요.
첫 번째로 가톨릭교와 같이 미신적 요소가 많아서 근대성의 특징인 합리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한 예로 루터는 성경의 내용에 반대되는 지동설을 제기한 코페르니쿠스를 비판하며‘그 바보가 천문학을 송두리째 망쳐놓을 거다’라고 했지요.
두 번째로 신교도는 관용주의자가 아니었어요. 그들은 다른 교파의 신교도에 대해서 가톨릭교도보다 더 큰 박해를 가했어요. 예를 들면, 중세 가톨릭이 이단자와 마녀의 처벌에 주로 사용했던 화형은 신교에서도 사용되었답니다.
세 번째로 신교도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어요. 귀족에게 박해받던 농민들이 루터의 개혁 사상에 힘입어 농민 전쟁을 일으키자 루터는 자신의 지원 세력이었던 귀족의 편을 들었어요. 그리고‘자신의 주인을 모르는 무리들은 마치 미친개를 때려잡듯 해야 한다’라고 말해 10만에 달하는 농민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