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행함의종교

내가 초창기부터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라는 것을 말하였다. 찬송은 노래로 하나님께 애원하는 것이요, 노래로 기도하는 것이다. 찬송은 성경 중에서 요절(要節)을 뽑아 만든 것으로 그 전체가 하나님께 향하는 기도이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다. 찬송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고 주시게 되어 있다. 구하는 것이 생명이니 생명을 주는 것이다. 구하는 자의 진심을 보고 주는 것이다. 나는 초창기부터 손뼉을 치며 찬송을 하도록 했다. 『손바닥을 치며 하나님을 찬송하라』88) 하는 구절을 내가 성경에 삽입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기성교회에서 조롱한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기성교인도 손뼉을 치며 우리를 따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계속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것이다. 은혜를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찬송할 때,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손뼉을 치며 그 은혜를 구하고 또 구하는 것이 귀하다. 하나님을 분명히 안 다음에는 찬송으로 은혜를 입어야 된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찬송으로 더 큰 은혜를 입을 수 있다. 찬송을 하면서 모두의 마음문이 활짝 열려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은혜가 순환되면서 얼굴에 광채가 날 정도로 은혜를 입게 된다. 찬송을 하나님이 들어주실 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한없이 흐르게 된다. 성신이 주시는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눈물이 솟구쳐 올라와서 견디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눈물, 남 보기가 창피해도 멈출 수 없는 눈물, 그것이 바로 성신이 주셔서 속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다. 하나님께 향한 진심의 정도대로 찬송이 은혜롭게 되는 것이다. 노래를 잘한다고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진심으로 애원하고 안타까이 구하는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진정과 진심이라는 것이 귀하다. 찬송은 뜻을 알고 불러야 한다. 하나하나 뜻을 알고 부르면 맛이 나게 된다. 찬송은 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것이다. 열흘을 지속해 불러도 싫지 않다. 은혜로써 화해 나가면 그와 같이 된다. 찬송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섬기는 심정으로 드려야 할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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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mns Are Prayers With a Melody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Hymns are prayers with a melody. Those who have stopped singing hymns have no tears. What are hymns about? About the devil? No, they sing about God, about me. Whether you say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the Holy Spirit” or “Mighty power will come from constant efforts at prayer,” it means the same thing. Suppose there is to be singing at a dinner party and the order is arranged to let those who have knelt longest before God sing first. When asked to sing, however, some of these front runners with many hours of prostration to their credit don’t seem to know how to sing. But I have seen them prostrated all the time. Prostrated, they pray, sing hymns, beseech in song, “Grant, O Lord, aid to this fragile thing. Grasp my weak hand as I kneel and guide me.” The hymn is prayer, prayer set to a tune. A person who has stopped singing hymns is like one who has stopped breathing. One who is diligent in prayer does not stop singing. Tears flow. That’s because grace is at work―God has listened to the song. Not because the song is sung well, but because God takes care of the earnest prayer―the true, anxious entreaty, the supplication which comes from the bottom of the heart. The primary focus in grading for salvation is on the amount of time spent on one’s knees and the truthfulness of one’s heart. God sees the heart. When they are made to sing, the singing may not be professional but it’s full of grace. They sing, sobbing uncontrollably, weeping blinding tears, just as they have implored in continual prostration, tears welling up unawares. This is a sight pleasing to God. Excerpt from a sermon given October 3, 1985

Salvation Not Attained By Believing Alone

What could be more blatantly ludicrous than Jesus―who not only fails to find salvation for himself but does not even know its meaning―promising eternal life to anyone who believes in him and his word, for merely calling him “Lord”? Remove the word “believe” from your vocabulary, because it is not needed. The limit of belief in someone is found in expressions like “He can live without law. He is reliable. He can be trusted.” That’s about as far as it goes. What’s meant by belief in God is “God can be counted on.” But can you attain salvation by just being able to count on God? No, you can’t. Consider this analogy: Somebody has come from Paris, France. Would telling him “I believe you” over and over, 10 million times, or reiterating “I believe I’ll be in France” get you to France? No. You must buy the ticket and board the plane to get there. Salvation is not different. It requires more than mere belief. In the beginning I used the parable of the bathtub to distinguish the Christian church from ours. Shouldn’t grace come down from the Spirit of God to wash away the sin of the soul, the grime of the mind? It should. The established Christian church is an empty tub with no water in it. Suppose the Bible is soap and the hymns a towel. Rub the soap on the towel, bone dry without a drop of water, and scrub yourself, shouting “Wash off, grime!” Is it grime that washes off or is it your skin that peels off? It’s the skin. Grime washes off when skin, doused with water, is scrubbed with a towel, soaked in water and lathered with soap, rinsed, then soaked again in a tub and so on. No purpose is served, no matter what you do in a dry, waterless tub. So there should be water, which i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the end God pours forth the grace of the Holy Spirit like dew. Spoken on the National Youth Retreat, August 17, 1980

제7부 행함의 종교

제1장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

신앙이란 추상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 곧 성신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간직하여 구원을 얻느냐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성신의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에 부합하는 생활, 즉 자유율법을 지켜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천부교는 성신이 임하는 체험의 종교요, 성신을 받은 다음에는 자유율법을 지키는 행함의 종교다. 이와 같이 행함의 종교라는 것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성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Heaven Has Neither Earth nor Night and Day

천국에는 흙도 없고 밤낮도 없어

Heaven Has Neither Earth nor Night and Day On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Genesis has this statement in Chapter 1, Verse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God is said to have created the sky and the earth. But isn’t it on earth where things rot? Moreover, doesn’t Genesis […]

제6부 구원과 심판

제6장 영원한 천국

제6장 영원한 천국 천국은 영원한 세계 1 이 지구에서 인간이 구원을 얻으면 2차 천국에 가게 된다. 2차 천국은 내가 지금부터 연구해서 건설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영원무궁토록 연구한 것이다. 나에게 그것을 창조할 능력이 있으며 이미 1차 천국과 1차 지옥을 창조한 실적이 있다. 2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창조학을 연구했고 지금도 신의 세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3 성경에 […]

천국과 구원의 근본을 밝혀주신 하나님

2019 추수감사절 방영 말씀

이제 하는 설교는 인간의 차원에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차원에서 하늘세계 창조 단계를 말하는 고로, 이건 세상에서 들어 보지 못하던 말을 하려니까 어떤 타임이 돼야 뼈대만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게 되죠. 그런고로 하늘세계에서 되어지는 것을, 여러분들이 영원토록 요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면 영원무궁토록 하늘세계 것 말해 줄 수가 있어요. 세상 교리는, 세상 인간은 하나도 몰라요. 그런고로 천국에 보내 준다 하면서 천국에 가서 그 어떠한 구성으로, 어떠한 구조로 되어져 있는 그 형체를 모르고, 어떻게 돼서 영원히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은 이유는 뭐인지, 여긴 100년도 못 살아 죽는데 거기에는 영원무궁토록 죽음이 없이 산다는 그 이유는 뭐이고, 어떠한 걸 먹고, 여기같이 위장이 있냐 없냐 하는 이 모든 것을 창조주가 아니면 알지를 못해요. 거기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그 조건이 어떻게 돼서 화장실이 없는지, 그 구조를 인간은 알지를 못해요. 그런고로 세상 교리에 하나도 나타나 있지 않고, 하늘세계에 가서 움직이는 걸 도저히 몰라요. 불교는 극락세계 간다고 하는 거예요. 극락세계 가서 뭘로 구성된 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걸 표시된 게 없어요. 그럼 기독교에 예수의 가장 유식하다는 제자가 사도 바울이에요. 그 유식하다는 사람인데 허풍 떤 게 있어요. 자기가 삼층천엘 갔다 그거에요. 사도 바울이 『비몽사몽간에 삼층천(천국)에 갔다』(고린도후서 12:2~3). 가 봤으면 쥐꼬리만치도 본 걸 그대로 표시해야지, 『그건 말할 수 없다』(고린도후서 12:4) 하는 게 결론이에요. 이거 허풍이에요. 보지 못하고 본 것같이 한 거예요. 못 봤다 하면은 그가 자기가 체면이 안 서니까 본 것같이 하면서 허풍을 떤 거예요. 그게 전체 전 세계의 종교예요. 그대로 그 교리에 드러난 게 그 세계 움직임이 드러나야, 그 세계 움직임을 알아야 그 세계 가게 해 줄 수 있는 조건이 서겠지요? 모르고도 가게 할 수 있나요? 가게 할 수가 없게 돼 있어요. 그럼 하늘세계에서 움직이는 걸 잠깐만 말하죠. 거기에는 영원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아요. 그럼 왜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아도 되냐 하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 밤샘해 보면, 한 이틀 새워 놓으면 뭐 그저 흐느적흐느적, 근드렁근드렁 하며 자꾸 졸죠. 그런데 어떻게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고 견디냐 이거예요. 그 이유를 알아야죠. 하늘세계의 존재와 땅의 존재는 완전히 달라요. 첫째가 재창조예요. 없이하곤 또 창조하지요. 자꾸 새로이 되지 않으면 영원토록 살 수가 없어요. 하늘세계에는 신으로도 표현하기가 어렵게 아름답지요. 그러나 그 얼굴 그대로 살면 10년도, 10년 아니라 1년도 가지 못해 벌써 지루하게 돼요. 그런고로 재창조라는 게 되는 거예요. 기도 막히게 표현할 수 없는 하늘세계 아름다운 그 모습이지만 더 기도 막히게 아름다운 걸로 바꿔지는 동시에 거기에 그 광채가 나게 돼 있어요. 그러면 ‘내 얼굴은 요렇게 되면 좋겠다.’하는 그 마음보다 더 앞선 걸로 착착착착 밸런스가 맞춰져 바뀌어져 나가죠. 그런고로 얼굴 변하는 것만 봐도, 영원무궁토록 그것만 봐도 지루감이 없게 돼 있어요. 그렇게 아리따운 얼굴 그대로 전체가 변하는, 바꿔지는 상태에서 눈이 그대로 있지 않고 더 빛나고 더 아름다운 눈이 바뀌어요. 눈이 아름다운 걸로 화하는 고로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고 지루감이 없게 돼 있어요. 눈만 아름다운 걸로 바뀌어지는 게 아니고 시각의 도수가 높아져 가요. 시각의 도수가 높아 가는 고로 천태만상의 것을 그대로 1초만 둬 두면, 창조를 안 하면 그 눈이 보기가 싫어서 볼 수가 없게 돼 있어요. 끝도 한도 없는 그 가짓수가 전체 주위 환경이 화해 나가죠. 그게 한 번이라도 빠지면 결함, 그건 천국이 아니에요. 코가 모양이 예쁜 걸로 자꾸 바뀌어지는 것뿐만이 아니고 취각의 도수가 자꾸 높아 가요. 그런고로 우주의 향기가 1초만 창조한 그 냄새 그대로라면 냄새 맡는 도수가 높아 가는데 향기 창조한 그대로 있으면 구역질이 나서 맡을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그 우주의 향기를 재창조를 해요. 그런고로 거기에는 어떤 보화를 주고라도 쉬쉬한 냄새, 쿠린 냄새, 똥 냄새, 영원무궁토록 가도 맡으려야 맡을 길이 없어요. 향기뿐이에요. 거기에는 기쁨과 즐거움 이외엔 없어요. 그것도, 기쁨도 감수(感受)하는 도수가, 감각이 자꾸 높아 가는 고로 같은 기쁨 가지고는 즐거울 수가 없게 돼 있어요. 즐거움이 빠지는 시간이 없어요. 그러게 영원무궁토록 살지, 지금 이 세상 같으면 어떻게 살아요? 못살아요. 그러니 이게 천국이지요. 내가 설계한. 틀림이 없어요. 누구도 말할 수 없어요. 한 토막을 누구도 꾸며서 말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럼 예수 보세요. 사도행전 1장에 『500명이 예수가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걸 본 거와 같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사도행전 1:9~11) 했는데는 그 항공기가 가는 층만도 못 가는 예수의 천당이라는 건 거기예요? 여객기 타 본 사람이면 새까만 구름에 천둥을 치며, 그 소낙비가 악수 같이 쏟아지는데도 항공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점점 허연 구름이 나타나다간 구름층 위에 올라가면 해가 쨍쨍 뜬 맑은 하늘 뜨지요? 구름이 가는 것은 한계가 있지요? 세상의 인간들이 그거 모방한 게 많아요. 그래 가지고 대개 천사, 선녀, 신선 뭐 하면서 그려 놓은 거는 전부 구름 같은 그 위에 이렇게 서 있지않아요? 그거 하나만 봐도 예수가 그게 신의 하는 일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신격으로 다 알아야 되는데 요 구름층 위에를 모르는 거예요. 그게 인위적이라도 그런 너절한 글은 없다 하는 게 곧 그거예요. 그럼 이제 예수 설계한 천국은 묵시록에 다 있어요. 그건 천국이 아니고 지옥 중의 지옥이다 하는 것 내가 말하는 거예요. 『영원토록 서서 할렐루야 영광 돌리고 찬송만 하면』(묵시록 7:12) 아무리 신이라도 끝도 한도 없는, 영원무궁토록 서서 있으면 그게 신이라도 벌서는 중에 그 이상 벌이 없어요. 그런 놈의 천국이라면 여지없다 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설계한 천국의 그 형체는 창조력이 없는 고로, 땅의 물질 가지고 전부 장식을 했다 그거예요. 창조력이 있으면 땅의 물질 가지고 안 할 텐데, 창조력이 하나도 없어요. 『열두 진주 문이요, 홍보석이요, 녹보석이요, 홍마노요』(묵시록 21:19~21) 세상 보석이에요. 그걸 가지고 잔뜩 장식만 한 것같이 만들어 놓은 그런 천국이면 너절해요. 『12,000리의 성 길이와 사방 척수가 나와 있고, 그 성의 높이는 상당히 높고』(묵시록 21:16) 색깔이 다른 걸 알록달록하게 딱 서낭당, 그 노랗고 파랗고 칠한 거와 같은 그런 문이 열두 개 빗장이 꽂혔으니 그게 천국인가요? 도적놈이 한없이 있는 고로 높은 성이 필요하지, 도적놈이 없는, 마귀가 다 박살이 된 천국이야 빗장은 무슨 필요가 있고 담장은 무슨 필요가 있나요? 그런 게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그 세계 사는 것도 모르며 그거 뭐 추상적으로 뭐 그럴 거다 하는 것 가지고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거 거기의 움직임을 전체 알아야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 수 있어요. 근본 정확한 걸 벗기죠. 하늘세계에는 흙이 없어요. 흙이라는 것은 썩어지는 게 나오게 돼 있어요. 창세기 1장이 흙으로 빚었다는 것부터가 그거 엉터리예요. 어떤 물질 쪼꼬방살이(소꿉질)같이 흙을 빚어 가지고 그걸 영생하는 자 만들었다는 그거부터가 허풍이에요. 하늘세계 영원히 사는 건 거긴 흙이 없는 곳이죠. 흙으로 구성된 자는 반드시 썩게 되어 있는데 그래 아담은 흙으로 빚었으니 영생의 인간이 아닌 거예요. 천국은, 영원한 세계는, 아까 영원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은 그 원인을 말했지요. 그런데 영원한 세계는 잠이 없는 곳인데 아담은 쿨쿨 잤으니 그 허풍이에요. 그 창세기가 허풍인 걸 아세요. 구원을 도저히 모르는 소리입니다. 하늘세계에는 구조가 완전히 달라요. 이거 육신은 썩어지게끔 돼 있어요. 이틀 만이면, 여름 무더운 날이면 송장내가 나죠. 이건 썩어지게끔 창조를 했어요. 아무리 신사고 숙녀고, 그 미남 미녀 해도 그거 위장에서 8시간 만에 똥이 돼 가지고 그 장을 통과해 가지고, 어느 타임이 지나면 항문으로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배 속에는 똥이 가득 차 있는 너절한 구조예요. 거긴 썩지 않는 세계예요. 완전히 구조가 달라요. 거기는 피가 없어요. 영원무궁토록 가도 피 한 방울, 피가, 심장이 없고 혈관이 없어요. 혈액이 있으면 거기도 썩어 죽어요. 피 가진 자는 죽지 않는 자 없어요. 피가 썩는 근원입니다. 그러게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 준다는 게 허풍 중의 허풍인 걸 말하지요. 인체에서 뼈, 힘줄, 껍질, 살, 피 다섯 가지 중에 어느 게 제일 빨리 썩어요? 피가 제일 먼저 썩습니다. 썩는 근본이 그거예요. 그럼 제일 썩는 근원 가지고 어떻게 썩지 않는 걸 입겠냐 하는 거 그거 허풍 중의 허풍이에요. 예수의 피 여지없다는 걸 까 버리기 위하여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고린도전서 15:54) 하는 것 삽입했어요. 고린도전서 15장에 있습니다. 썩지 아니함을 입어야 되게 돼 있어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돼야 된다』는 그 생명은 하나님의 신이요, 성신이에요. 완전히 신의 구성체로 바꿔져야 된다는 걸 표시한 거예요. 요게 아주 포인트입니다. 만 가지가, 바로 예수 믿는데 피 가지고 구원 얻는 줄 아는데 구원이 없어요. 구원 없다는 결정적인 설교예요. 기성교회 소경 만들어서 끌고 가는 것같이 소경이 소경을 끌고 가, 같은 구렁텅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좋은 데 가는 줄 알고 가다 지옥 가면 안타깝지 않느냐 그거야. 창세기 허풍인 거, 예수의 보혈로 죄 씻어 준다는 것, 제일 썩는 근원 가지고 썩지 않을 걸 입혀 준다는 이게 허풍이면 예수 구원이 있어, 없어? 구원이라는 건 없어요. 창조주 아니면 지적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내가 진짜 하나님이야. 창조주 틀림없어요.

Paul’s Fiction about Visiting Third Heaven

삼층천에 가봤다는 바울의 허풍

Apostle Paul, reputed to be the most learned of Jesus’ disciples, was boasting, spewing nonsense, and had to come up with a way out in case he should be cornered with no ready answers to skeptical queries. That’s why he said, “Fourteen years ago I knew a man in Christ.” (2 Corinthians, Chapter 12) He made it seem as if the stories were about a fellow Christian. But, close examination of the context shows that Paul is actually talking about himself. In short, just in case, he had prepared an escape clause, saying that the man was somebody else. Paul says he went to the third heaven, which was none other than paradise itself. The word “paradise” was inserted in the Bible by me, and Paul had no knowledge about it. If he had been to paradise, shouldn’t he announce what he had seen, be it as trivial as a rat’s tail? But he makes no such announcement. He merely says, “God knows.” If he bore witness, wouldn’t he talk about what he saw? Instead, his report is “God knows.” Does that make sense? Clearly it does not. It’s self-evident that God knows. Simply citing it, Paul does not say anything himself when he should, implying that it is out of some sense of humility. But that’s nonsense. Paul simply did not know. So no human on earth knows heaven. If Apostle Paul, the most learned, cannot report seeing anything, can other humans conceivably know heaven? Do believers of Jesus know? They do not. Can they, ignorant of heaven, guide others to heaven or not? Obviously they cannot. Spoken on October 20, 1986, August 18, 1986

제6부 구원과 심판

제5장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한 이래 3조 년 동안 평균 5,000년마다 인간을 심판하였다.
이 지구는 좁아서 평균 5,000년이면 한계점에 이르러 심판을 하지 않으면 인간이 더 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한 번씩 지구를 심판할 때마다 몇 명만 넘어오게 하고 나머지는 전멸 상태가 되게 하였다. 노아 심판 때는 여덟 명이 넘어오게 하였고 그전 심판 때는 네 명이 넘어오게 하였다. 노아 때는 하나님이 물로 심판을 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할 것을 알리고 방주를 지을 것을 명하여 120년 후에 방주가 완성되자 40일 밤낮으로 비가 쏟아지게 하여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노아가 120년에 걸쳐 전도와 경고를 했어도 그것을 무시했던 사람들은 마침내 홍수가 시작되자 모두 산으로 피난했다. 그러나 물이 점점 차올라 설 땅이 없어지자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난투극을 벌이고, 양식이 없어 굶어 죽는 비참한 광경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결국 가장 높은 산까지 물에 잠겨 육지를 찾아볼 수 없게 되자 노아의 여덟 식구가 탄 방주만이 떠 있게 되었다. 그런데 ‘40일 정도 폭우가 쏟아진다고 어떻게 세상의 제일 높은 산까지 다 잠겨서 육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강우량과 비가 내리는 시간, 땅의 면적과 물의 유속을 계산해 보면 40일 동안 폭우가 아무리 쏟아져도 지구가 모두 물에 잠길 수는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온 세상이 물에 다 잠기기까지는 하늘에서 내린 비의 양보다는 땅에서 흙이 매몰돼 올라온 물이 더 많았다. 40일간 쏟아진 폭우로 산 둘레의 흙이 무너져 강과 바다를 메워 물이 산꼭대기까지 차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또 폭우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노아의 방주가 어떻게 그 물에 부서지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지금과 같이 육지가 있어도 바다의 파도에 배가 파선하는데 노아의 홍수 때는 산이란 산은 다 잠겨 버렸고 거치는 데가 없이 지구 전체가 모두 물바다로 변했다.
그때 바람이 불면서 치는 파도의 크기란 태평양의 파도보다 10배, 20배의 유(類)가 아니었다. 그런 속에서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므로 노아의 방주는 유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시일이 지나서 노아가 방주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놓아 주니 감람나무 이파리를 물고 돌아와서 육지가 드러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을 물고 온 것은 세상을 구원할 존재는 감람나무인 것을 상징한 것이다.

God’s Judgment, All Too Fair

너무도 공정한 하나님의 심판

At the hour of judgment all humans born since Creation, even those bound for hell, will transform temporarily into gods. Hearts and sins are measured as if on a scale with zero tolerance for error, yielding totally reliable and accurate measurements of sin. Becoming godlike, everyone can observe everything, seeing each other clearly. God’s judgments are meted out instantly. So, some may express surprise, “Ah, that person was guilty of that sin. He appeared so gentle, but still committed such a sin.” Seeing their own penalties measured out so fairly, those destined for hell move in that direction without hesitation, while those to be saved step aside. Their destinations so determined, no one destined for hell can complain, because my guidance had already been offered countless times and ignored during their mortal lives. They thought their sins went unnoticed, but they were measured with such meticulous detail, precision and fairness, without error, not even the smallest of errors, as if with a scale that has zero tolerance for error. Seeing their sins, hearts and all so weighed, they go to hell and suffer its eternal pain without a word of complaint. Not even one soul can contradict me.
They know they have consistently ignored my advice. All too clear are the sins of disobedience delineated before them and all too just are the calculations by which punishments for such disobedient actions are meted out. Upon momentary transformation to divine intelligence, capable of surveying the totality of sin, the two classes separate, one bound for hell and the other for salvation. Spoken on Holy Dew Spirit Day, January 2, 1982

제6부 구원과 심판

제4장 인간의 행함과 구원의 조건

하나님이 구원의 조건을 공포하면 그것을 어떠한 결과로 만드는가 하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
만약 하나님이 죄로 인해 어떤 나라를 멸한다는 조건을 공포했을 때 그 경고를 듣고 그 백성이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멸할 것이로되, 그 백성 전체가 통회하고 자복할 때는 뜻을 돌이켜서 구원해 주는 하나님이다.
니느웨성의 회개는 오늘날 이 교훈을 위하여 내가 예비한 것이다. 니느웨성은 악한 도성으로 하나님은 요나를 통하여 그 성이 멸망한다는 것을 선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가는 그 성에서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채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하였다. 그러나 요나는 큰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지게 되었고, 그때 하나님이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요나를 삼켰다가 며칠 후 육지에 토하게 하였다. 고기 배 속에서 잘못을 회개한 요나는 니느웨성에 가서 “회개하라. 이제 40일이 지나면 이 도성은 멸망한다.” 하고 외친 것이다. 요나의 외침을 듣고 니느웨성의 백성은 전부 식음을 전폐하고 회개하였다. 왕도 보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였다.1)
그 회개가 하나님의 심금을 울리게 되어 하나님은 니느웨성을 멸하려던 뜻을 돌이키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진정한 회개를 받고 진노를 거둔 것이다. 만약 그때 니느웨성의 백성들이 요나의 외침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니느웨성을 완전히 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느웨성의 전 백성이 진심으로 회개했기 때문에 진노를 거두어 멸하지 않은 것이다. 니느웨성의 죄악이 컸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조건은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함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