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행함의 종교

하나님은 마음이 성결한 자, 마음이 아름다운 자, 마음이 깨끗한 자, 마음이 결백한 자, 마음이 순박한 자를 기뻐한다. 이 다섯 가지는 같은 말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를 볼 때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것은 마음의 성결이다. 마음이 성결해야만 하나님의 신이 그 마음속에 거(居)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마음이 수정같이 맑아지는 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신이 거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을 제일 기뻐한다. 자유율법을 지켜서 의식의 죄라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은 기뻐하는 것이다. 사람은 보지 못하지만 성신은 그 사람 속에서 전부 살피고 있다. 사람의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신(神)이 각 사람의 머릿속과 심장 속과 주변에 셋씩 따라다니는 것이다. 죄를 지으려고 하면 가슴이 방망이질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신이 그 사람의 양심을 두드려 주는 것이다.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두드려 주시는 대로 바르게 행동하며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양심대로 산다고 해도 성신이 작용하지 않으면 성결한 마음을 소유할 수 없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각자의 양심대로 사는 것만이 아니라 자유율법을 지켜서 모든 죄에서 떠나야 하고 성결한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항상 은혜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가운데,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살얼음 위를 걷듯 생활하는 것이 귀하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애쓰며 노력하는 자를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그 향방이 구원의 길에 부합되고, 하나님이 기꺼이 여기시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귀하다. 『마음이 성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오』89)라고 한 것과 같이 자유율법을 지켜서 성결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 마음과 생각을 소유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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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What so-called religious leaders of this world do is mostly fight and split up. They split up, divide again, and then some more, until all’s split up. The devil’s work in this world is jealousy, envy, hate, and finally murder. So it is the devil that splits, divides, and destroys. Whether they number 100, 1,000, 10,000, 100 million, or 1 billion, those in the fold of grace are one. All those in grace become one unit. If there is jealousy, it is caused by those infiltrated by the devil to do the devil’s mischief. There should be unbreakable unity, and there should be no hate. When this state prevails,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be in grace is to be in the Holy Spirit. Then, you can say, “I am within the Lord.” The Lord must be within you, must dwell inside you. Only then comes the kingdom of heaven. The perfect fullness of the Holy Spirit is meant by the passage, “Nor will people say, ‘Here it is’ or ‘There i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All complaints, discontent, and anguish vanish, because the kingdom of heaven is there. Unless your heart turns into heaven, you cannot go to heaven. When all those who have formed heaven in their hearts gather, whether they number a billion, 10 billion, 100 billion, they are one. That is what’s meant by becoming one in the Lord.
It is said, “Endeavor to meet often as the end of time nears.” You must try to meet often. All things working together for good in grace means that this throng of people, though weak and of no account individually, exerts, when united with one heart, the combined strength of a million, 10 million, 100 million. That is the power of unity in grace. That’s the meaning of all things working together for good.
Spoken on October 28 and November 25, 1985

제7부 행함의 종교

제2장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찬송가 326장 ‘기도하는 한 시간’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고하여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네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 시간이 가장 즐겁다.’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속삭이는 시간, 그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순간, 은혜가 허락될 때에 얻어지는 환희와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다. 진실로 구하면 그 음성을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하나님의 귀는 먼 곳에 있지 아니하고 가까이에서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속삭이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는 그 이상 좋은 것이 어디 있는가? 찬송가 418장 ‘진실하신 친구’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모든 것을 고한 사람 복 받네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모든 것을 고찮나 기도는 하나님께 고(告)하는 것이다. ‘걱정 근심 모든 것을 고한 사람은 복 받네.’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고하기 때문에 복을 받는다는 찬송이다. 세상에 걱정과 근심과 괴로움이 없는 자가 어디 있는가? 주께 고함이 없는 고로, 구하지 아니하는 고로, 기도를 드리지 않는 고로, 호소를 하지 않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고하는 사람, 기도를 드리는 사람, 호소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그러나 이 복은 세상의 복이 아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를 구하는 것은 『헛되고 헛되다』90)라고 한 대로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마는 안개와 같고 구름과 같이 헛된 것이다.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한다는 그 복은 하늘의 복인 것이다. 복 받을 모든 조건을 갖추고 향할 때 하나님은 한없는 복을 주시게 되어 있다. 그와 같이 향하는 자에게 『너 쓸 것 미리 아시니 염려할 것 없다』91)라고 하는 것이다.

Spoken Promise of God

하나님과의 언약

When you comprehend the meaning, even a little, the savor of the hymn changes. In this world, contracts are drawn up and promises made in writing, but God gives his word. In a gentle voice I am telling you, “Obey without fail, lest you should fall and be miserable. Obey to the letter and come with me to that world, because there is no salvation unless you go with God. To go together to that world of eternal joy, do not sin. You can go only if you keep the law, the law of liberty, which means you shouldn’t trespass even in thought.” Is this a promise in writing or is it given orally? It is my spoken word. Once made, God’s promise is forever and does not change. But nothing can be done if people sin. Keeping that promise made with a gentle voice, we shall go together. Do not violate my commandments if you want to live in that world forever. Let us go there together by keeping the law without fail, not violating it even in thought. Is that a promise? It is. I don’t change. If you keep your word, I will take you, absolutely. But if you keep committing sin, there’s nothing I can do. As it is said, “The covenant with my Lord is forever and unchangeable,” I am saying that my spoken promise shall not change, for all eternity. Sing, reflecting on the meaning, “As the covenant with my Lord is forever and unchangeable, He will always protect us until we reach that country.” Spoken on Holy Dew Spirit Day, May 28, 1983

제7부 행함의종교

제2장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내가 초창기부터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라는 것을 말하였다. 찬송은 노래로 하나님께 애원하는 것이요, 노래로 기도하는 것이다. 찬송은 성경 중에서 요절(要節)을 뽑아 만든 것으로 그 전체가 하나님께 향하는 기도이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다. 찬송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고 주시게 되어 있다. 구하는 것이 생명이니 생명을 주는 것이다. 구하는 자의 진심을 보고 주는 것이다. 나는 초창기부터 손뼉을 치며 찬송을 하도록 했다. 『손바닥을 치며 하나님을 찬송하라』88) 하는 구절을 내가 성경에 삽입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기성교회에서 조롱한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기성교인도 손뼉을 치며 우리를 따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계속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것이다. 은혜를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찬송할 때,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손뼉을 치며 그 은혜를 구하고 또 구하는 것이 귀하다. 하나님을 분명히 안 다음에는 찬송으로 은혜를 입어야 된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찬송으로 더 큰 은혜를 입을 수 있다. 찬송을 하면서 모두의 마음문이 활짝 열려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은혜가 순환되면서 얼굴에 광채가 날 정도로 은혜를 입게 된다. 찬송을 하나님이 들어주실 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한없이 흐르게 된다. 성신이 주시는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눈물이 솟구쳐 올라와서 견디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눈물, 남 보기가 창피해도 멈출 수 없는 눈물, 그것이 바로 성신이 주셔서 속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다. 하나님께 향한 진심의 정도대로 찬송이 은혜롭게 되는 것이다. 노래를 잘한다고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진심으로 애원하고 안타까이 구하는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진정과 진심이라는 것이 귀하다. 찬송은 뜻을 알고 불러야 한다. 하나하나 뜻을 알고 부르면 맛이 나게 된다. 찬송은 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것이다. 열흘을 지속해 불러도 싫지 않다. 은혜로써 화해 나가면 그와 같이 된다. 찬송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섬기는 심정으로 드려야 할 기도이다.

Hymns Are Prayers With a Melody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Hymns are prayers with a melody. Those who have stopped singing hymns have no tears. What are hymns about? About the devil? No, they sing about God, about me. Whether you say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the Holy Spirit” or “Mighty power will come from constant efforts at prayer,” it means the same thing. Suppose there is to be singing at a dinner party and the order is arranged to let those who have knelt longest before God sing first. When asked to sing, however, some of these front runners with many hours of prostration to their credit don’t seem to know how to sing. But I have seen them prostrated all the time. Prostrated, they pray, sing hymns, beseech in song, “Grant, O Lord, aid to this fragile thing. Grasp my weak hand as I kneel and guide me.” The hymn is prayer, prayer set to a tune. A person who has stopped singing hymns is like one who has stopped breathing. One who is diligent in prayer does not stop singing. Tears flow. That’s because grace is at work―God has listened to the song. Not because the song is sung well, but because God takes care of the earnest prayer―the true, anxious entreaty, the supplication which comes from the bottom of the heart. The primary focus in grading for salvation is on the amount of time spent on one’s knees and the truthfulness of one’s heart. God sees the heart. When they are made to sing, the singing may not be professional but it’s full of grace. They sing, sobbing uncontrollably, weeping blinding tears, just as they have implored in continual prostration, tears welling up unawares. This is a sight pleasing to God. Excerpt from a sermon given October 3, 1985

Salvation Not Attained By Believing Alone

What could be more blatantly ludicrous than Jesus―who not only fails to find salvation for himself but does not even know its meaning―promising eternal life to anyone who believes in him and his word, for merely calling him “Lord”? Remove the word “believe” from your vocabulary, because it is not needed. The limit of belief in someone is found in expressions like “He can live without law. He is reliable. He can be trusted.” That’s about as far as it goes. What’s meant by belief in God is “God can be counted on.” But can you attain salvation by just being able to count on God? No, you can’t. Consider this analogy: Somebody has come from Paris, France. Would telling him “I believe you” over and over, 10 million times, or reiterating “I believe I’ll be in France” get you to France? No. You must buy the ticket and board the plane to get there. Salvation is not different. It requires more than mere belief. In the beginning I used the parable of the bathtub to distinguish the Christian church from ours. Shouldn’t grace come down from the Spirit of God to wash away the sin of the soul, the grime of the mind? It should. The established Christian church is an empty tub with no water in it. Suppose the Bible is soap and the hymns a towel. Rub the soap on the towel, bone dry without a drop of water, and scrub yourself, shouting “Wash off, grime!” Is it grime that washes off or is it your skin that peels off? It’s the skin. Grime washes off when skin, doused with water, is scrubbed with a towel, soaked in water and lathered with soap, rinsed, then soaked again in a tub and so on. No purpose is served, no matter what you do in a dry, waterless tub. So there should be water, which i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the end God pours forth the grace of the Holy Spirit like dew. Spoken on the National Youth Retreat, August 17, 1980

제7부 행함의 종교

제1장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

신앙이란 추상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 곧 성신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간직하여 구원을 얻느냐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성신의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에 부합하는 생활, 즉 자유율법을 지켜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천부교는 성신이 임하는 체험의 종교요, 성신을 받은 다음에는 자유율법을 지키는 행함의 종교다. 이와 같이 행함의 종교라는 것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성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Heaven Has Neither Earth nor Night and Day

천국에는 흙도 없고 밤낮도 없어

Heaven Has Neither Earth nor Night and Day On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Genesis has this statement in Chapter 1, Verse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God is said to have created the sky and the earth. But isn’t it on earth where things rot? Moreover, doesn’t Genesis […]

제6부 구원과 심판

제6장 영원한 천국

제6장 영원한 천국 천국은 영원한 세계 1 이 지구에서 인간이 구원을 얻으면 2차 천국에 가게 된다. 2차 천국은 내가 지금부터 연구해서 건설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영원무궁토록 연구한 것이다. 나에게 그것을 창조할 능력이 있으며 이미 1차 천국과 1차 지옥을 창조한 실적이 있다. 2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창조학을 연구했고 지금도 신의 세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3 성경에 […]

천국과 구원의 근본을 밝혀주신 하나님

2019 추수감사절 방영 말씀

이제 하는 설교는 인간의 차원에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차원에서 하늘세계 창조 단계를 말하는 고로, 이건 세상에서 들어 보지 못하던 말을 하려니까 어떤 타임이 돼야 뼈대만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게 되죠. 그런고로 하늘세계에서 되어지는 것을, 여러분들이 영원토록 요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면 영원무궁토록 하늘세계 것 말해 줄 수가 있어요. 세상 교리는, 세상 인간은 하나도 몰라요. 그런고로 천국에 보내 준다 하면서 천국에 가서 그 어떠한 구성으로, 어떠한 구조로 되어져 있는 그 형체를 모르고, 어떻게 돼서 영원히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은 이유는 뭐인지, 여긴 100년도 못 살아 죽는데 거기에는 영원무궁토록 죽음이 없이 산다는 그 이유는 뭐이고, 어떠한 걸 먹고, 여기같이 위장이 있냐 없냐 하는 이 모든 것을 창조주가 아니면 알지를 못해요. 거기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그 조건이 어떻게 돼서 화장실이 없는지, 그 구조를 인간은 알지를 못해요. 그런고로 세상 교리에 하나도 나타나 있지 않고, 하늘세계에 가서 움직이는 걸 도저히 몰라요. 불교는 극락세계 간다고 하는 거예요. 극락세계 가서 뭘로 구성된 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걸 표시된 게 없어요. 그럼 기독교에 예수의 가장 유식하다는 제자가 사도 바울이에요. 그 유식하다는 사람인데 허풍 떤 게 있어요. 자기가 삼층천엘 갔다 그거에요. 사도 바울이 『비몽사몽간에 삼층천(천국)에 갔다』(고린도후서 12:2~3). 가 봤으면 쥐꼬리만치도 본 걸 그대로 표시해야지, 『그건 말할 수 없다』(고린도후서 12:4) 하는 게 결론이에요. 이거 허풍이에요. 보지 못하고 본 것같이 한 거예요. 못 봤다 하면은 그가 자기가 체면이 안 서니까 본 것같이 하면서 허풍을 떤 거예요. 그게 전체 전 세계의 종교예요. 그대로 그 교리에 드러난 게 그 세계 움직임이 드러나야, 그 세계 움직임을 알아야 그 세계 가게 해 줄 수 있는 조건이 서겠지요? 모르고도 가게 할 수 있나요? 가게 할 수가 없게 돼 있어요. 그럼 하늘세계에서 움직이는 걸 잠깐만 말하죠. 거기에는 영원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아요. 그럼 왜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아도 되냐 하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 밤샘해 보면, 한 이틀 새워 놓으면 뭐 그저 흐느적흐느적, 근드렁근드렁 하며 자꾸 졸죠. 그런데 어떻게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고 견디냐 이거예요. 그 이유를 알아야죠. 하늘세계의 존재와 땅의 존재는 완전히 달라요. 첫째가 재창조예요. 없이하곤 또 창조하지요. 자꾸 새로이 되지 않으면 영원토록 살 수가 없어요. 하늘세계에는 신으로도 표현하기가 어렵게 아름답지요. 그러나 그 얼굴 그대로 살면 10년도, 10년 아니라 1년도 가지 못해 벌써 지루하게 돼요. 그런고로 재창조라는 게 되는 거예요. 기도 막히게 표현할 수 없는 하늘세계 아름다운 그 모습이지만 더 기도 막히게 아름다운 걸로 바꿔지는 동시에 거기에 그 광채가 나게 돼 있어요. 그러면 ‘내 얼굴은 요렇게 되면 좋겠다.’하는 그 마음보다 더 앞선 걸로 착착착착 밸런스가 맞춰져 바뀌어져 나가죠. 그런고로 얼굴 변하는 것만 봐도, 영원무궁토록 그것만 봐도 지루감이 없게 돼 있어요. 그렇게 아리따운 얼굴 그대로 전체가 변하는, 바꿔지는 상태에서 눈이 그대로 있지 않고 더 빛나고 더 아름다운 눈이 바뀌어요. 눈이 아름다운 걸로 화하는 고로 영원무궁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고 지루감이 없게 돼 있어요. 눈만 아름다운 걸로 바뀌어지는 게 아니고 시각의 도수가 높아져 가요. 시각의 도수가 높아 가는 고로 천태만상의 것을 그대로 1초만 둬 두면, 창조를 안 하면 그 눈이 보기가 싫어서 볼 수가 없게 돼 있어요. 끝도 한도 없는 그 가짓수가 전체 주위 환경이 화해 나가죠. 그게 한 번이라도 빠지면 결함, 그건 천국이 아니에요. 코가 모양이 예쁜 걸로 자꾸 바뀌어지는 것뿐만이 아니고 취각의 도수가 자꾸 높아 가요. 그런고로 우주의 향기가 1초만 창조한 그 냄새 그대로라면 냄새 맡는 도수가 높아 가는데 향기 창조한 그대로 있으면 구역질이 나서 맡을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그 우주의 향기를 재창조를 해요. 그런고로 거기에는 어떤 보화를 주고라도 쉬쉬한 냄새, 쿠린 냄새, 똥 냄새, 영원무궁토록 가도 맡으려야 맡을 길이 없어요. 향기뿐이에요. 거기에는 기쁨과 즐거움 이외엔 없어요. 그것도, 기쁨도 감수(感受)하는 도수가, 감각이 자꾸 높아 가는 고로 같은 기쁨 가지고는 즐거울 수가 없게 돼 있어요. 즐거움이 빠지는 시간이 없어요. 그러게 영원무궁토록 살지, 지금 이 세상 같으면 어떻게 살아요? 못살아요. 그러니 이게 천국이지요. 내가 설계한. 틀림이 없어요. 누구도 말할 수 없어요. 한 토막을 누구도 꾸며서 말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럼 예수 보세요. 사도행전 1장에 『500명이 예수가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걸 본 거와 같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사도행전 1:9~11) 했는데는 그 항공기가 가는 층만도 못 가는 예수의 천당이라는 건 거기예요? 여객기 타 본 사람이면 새까만 구름에 천둥을 치며, 그 소낙비가 악수 같이 쏟아지는데도 항공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점점 허연 구름이 나타나다간 구름층 위에 올라가면 해가 쨍쨍 뜬 맑은 하늘 뜨지요? 구름이 가는 것은 한계가 있지요? 세상의 인간들이 그거 모방한 게 많아요. 그래 가지고 대개 천사, 선녀, 신선 뭐 하면서 그려 놓은 거는 전부 구름 같은 그 위에 이렇게 서 있지않아요? 그거 하나만 봐도 예수가 그게 신의 하는 일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신격으로 다 알아야 되는데 요 구름층 위에를 모르는 거예요. 그게 인위적이라도 그런 너절한 글은 없다 하는 게 곧 그거예요. 그럼 이제 예수 설계한 천국은 묵시록에 다 있어요. 그건 천국이 아니고 지옥 중의 지옥이다 하는 것 내가 말하는 거예요. 『영원토록 서서 할렐루야 영광 돌리고 찬송만 하면』(묵시록 7:12) 아무리 신이라도 끝도 한도 없는, 영원무궁토록 서서 있으면 그게 신이라도 벌서는 중에 그 이상 벌이 없어요. 그런 놈의 천국이라면 여지없다 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설계한 천국의 그 형체는 창조력이 없는 고로, 땅의 물질 가지고 전부 장식을 했다 그거예요. 창조력이 있으면 땅의 물질 가지고 안 할 텐데, 창조력이 하나도 없어요. 『열두 진주 문이요, 홍보석이요, 녹보석이요, 홍마노요』(묵시록 21:19~21) 세상 보석이에요. 그걸 가지고 잔뜩 장식만 한 것같이 만들어 놓은 그런 천국이면 너절해요. 『12,000리의 성 길이와 사방 척수가 나와 있고, 그 성의 높이는 상당히 높고』(묵시록 21:16) 색깔이 다른 걸 알록달록하게 딱 서낭당, 그 노랗고 파랗고 칠한 거와 같은 그런 문이 열두 개 빗장이 꽂혔으니 그게 천국인가요? 도적놈이 한없이 있는 고로 높은 성이 필요하지, 도적놈이 없는, 마귀가 다 박살이 된 천국이야 빗장은 무슨 필요가 있고 담장은 무슨 필요가 있나요? 그런 게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그 세계 사는 것도 모르며 그거 뭐 추상적으로 뭐 그럴 거다 하는 것 가지고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거 거기의 움직임을 전체 알아야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 수 있어요. 근본 정확한 걸 벗기죠. 하늘세계에는 흙이 없어요. 흙이라는 것은 썩어지는 게 나오게 돼 있어요. 창세기 1장이 흙으로 빚었다는 것부터가 그거 엉터리예요. 어떤 물질 쪼꼬방살이(소꿉질)같이 흙을 빚어 가지고 그걸 영생하는 자 만들었다는 그거부터가 허풍이에요. 하늘세계 영원히 사는 건 거긴 흙이 없는 곳이죠. 흙으로 구성된 자는 반드시 썩게 되어 있는데 그래 아담은 흙으로 빚었으니 영생의 인간이 아닌 거예요. 천국은, 영원한 세계는, 아까 영원토록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은 그 원인을 말했지요. 그런데 영원한 세계는 잠이 없는 곳인데 아담은 쿨쿨 잤으니 그 허풍이에요. 그 창세기가 허풍인 걸 아세요. 구원을 도저히 모르는 소리입니다. 하늘세계에는 구조가 완전히 달라요. 이거 육신은 썩어지게끔 돼 있어요. 이틀 만이면, 여름 무더운 날이면 송장내가 나죠. 이건 썩어지게끔 창조를 했어요. 아무리 신사고 숙녀고, 그 미남 미녀 해도 그거 위장에서 8시간 만에 똥이 돼 가지고 그 장을 통과해 가지고, 어느 타임이 지나면 항문으로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배 속에는 똥이 가득 차 있는 너절한 구조예요. 거긴 썩지 않는 세계예요. 완전히 구조가 달라요. 거기는 피가 없어요. 영원무궁토록 가도 피 한 방울, 피가, 심장이 없고 혈관이 없어요. 혈액이 있으면 거기도 썩어 죽어요. 피 가진 자는 죽지 않는 자 없어요. 피가 썩는 근원입니다. 그러게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 준다는 게 허풍 중의 허풍인 걸 말하지요. 인체에서 뼈, 힘줄, 껍질, 살, 피 다섯 가지 중에 어느 게 제일 빨리 썩어요? 피가 제일 먼저 썩습니다. 썩는 근본이 그거예요. 그럼 제일 썩는 근원 가지고 어떻게 썩지 않는 걸 입겠냐 하는 거 그거 허풍 중의 허풍이에요. 예수의 피 여지없다는 걸 까 버리기 위하여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고린도전서 15:54) 하는 것 삽입했어요. 고린도전서 15장에 있습니다. 썩지 아니함을 입어야 되게 돼 있어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돼야 된다』는 그 생명은 하나님의 신이요, 성신이에요. 완전히 신의 구성체로 바꿔져야 된다는 걸 표시한 거예요. 요게 아주 포인트입니다. 만 가지가, 바로 예수 믿는데 피 가지고 구원 얻는 줄 아는데 구원이 없어요. 구원 없다는 결정적인 설교예요. 기성교회 소경 만들어서 끌고 가는 것같이 소경이 소경을 끌고 가, 같은 구렁텅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좋은 데 가는 줄 알고 가다 지옥 가면 안타깝지 않느냐 그거야. 창세기 허풍인 거, 예수의 보혈로 죄 씻어 준다는 것, 제일 썩는 근원 가지고 썩지 않을 걸 입혀 준다는 이게 허풍이면 예수 구원이 있어, 없어? 구원이라는 건 없어요. 창조주 아니면 지적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내가 진짜 하나님이야. 창조주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