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②

발행일 발행호수 2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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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십자가형을 기록했다는 문헌은 조작이었다

1세기 유대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 중 가장 방대한 기록을 남긴 인물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 37 ~ AD 100)다. 요세푸스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창세기부터 서기 66년까지 유대 민족의 역사를 집대성한『유대 고대사』인데, 유대 고대사에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자료7> 예를 들어『유대 고대사』19권에는 서기 41년 칼리굴라 황제의 암살 사건을 다뤘는데, 칼리굴라가 누구에게 왜 어떻게 죽임을 당했고 그 후의 정세는 어떻게 되었는지까지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유대 고대사』20권 5장에는 서기 47년에 로마 총독 티베리우스 알렉산더가 ‘반란자’ 갈릴리 유다의 아들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처형자, 처형 방법을 비롯해 갈릴리의 유다가 재산 조사 때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라는 것, 유다의 아들 두 명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명시되어 있다.

<자료7> 요세푸스와『하바드판 요세푸스6 – 유대고대사Ⅳ』, 도서출판 달산, 1992.
1세기 유대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 중 가장 방대한 기록을 남긴 인물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다. 요세푸스의『유대 고대사』에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서기 47년에 로마 총독이 ‘반란자’ 갈릴리 유다의 아들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다던가, 서기 35년 세례 요한의 영향력이 커지자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요세푸스는 성경의 내용대로라면 예수보다 영향력 없는 인물들의 반란과 처형사건도 기록했던 것이다. 그런데 4세기 초반까지 그 누구도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해 기록했다고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324년에 느닷없이 요세푸스의 기록이라며 ‘예수는 메시아며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러나 요세푸스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정통 유대인이라는 점, 실제로 요세푸스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기독교 교부의 증언, 기독교 편향적인 기록이 324년 돌연 등장한 점에서 학계는 이를 4세기 초반에 삽입된 조작으로 판정하고 있다. (출처:세계사 백과사전, 알라딘)

18권 5장에서는 성경에서 예수에게 세례를 줬다는 세례 요한의 처형도 상세히 기록했다. 서기 36년 헤롯 대왕은 세례 요한을 마케루스 성으로 유배한 뒤 처형하였는데, 그 이유는 ‘요한이 민중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요한은 성경에서 예수에 비해 비중이 적은 인물이었지만, 요세푸스는 그의 이름, 인물에 대한 설명, 처형 장소, 처형 이유까지도 상세히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해서도 기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4세기 초반까지 그 누구도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해 기록했다고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주장한 지 약 300년이 지난 시점인 324년, 느닷없이 요세푸스의 기록이라며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기름부은자=메시아)였다. 우리 가운데 앞선 이들의 고발에 의해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형에 단죄하였을 때, 먼저 그를 사랑하였던 이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사흗날 그는 다시 살아서 그들에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이 일들과 그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유대 고대사』18권 3장에 기록된 구절로, 예수를 ‘그리스도’, ‘부활한 자’라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기독교에서는 이 구절을 예수 처형에 대한 결정적인 외부 증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것을 4세기 초반에 삽입된 조작으로 판정하고 있다.

우선, 324년 이전까지 그 어느 기독교 저술가도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증거가 된다. 만약 정말 요세푸스가 “예수라는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고 썼다면, 초기 기독교 변증가들이 이를 놓쳤을 리 없기 때문이다. 3세기 기독교 교부 오리게네스도 요세푸스의 저작을 꼼꼼히 읽고 수차례 인용했던 인물이었지만, 예수가 처형당했다는 요세푸스의 구절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오히려 오리게네스는 요세푸스가 예수를 인정하지 않음을 증언했다. 오리게네스의 저서『켈수스 반박』1권 47장과『마태복음 주석』10권 17장에는 “요세푸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자료8>

<자료8> 오리게네스와『켈수스 반박(제1-2권)』, 분도출판사, 2024.
3세기 기독교 교부 오리게네스는 요세푸스의 저작을 꼼꼼히 읽고 수차례 인용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처형당했다는 요세푸스의 구절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오히려 오리게네스는 요세푸스가 예수를 인정하지 않음을 증언했다. 오리게네스의 저서『켈수스 반박』1권 47장과『마태복음 주석』10권 17장에는 “요세푸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교보문고)

요세푸스가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요세푸스는 철저한 정통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정통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도, 부활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런 요세푸스가 예수를 두고 그리스도라 칭하고, 부활을 사실처럼 증언하고, 기독교에 우호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은 노골적인 조작의 증거가 된다.

학계는 조작이 이루어진 시기를 324년 전후로 지목한다. 4세기 초반은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을 받으며 정치적·신학적으로 정당성 강화에 주력했던 시기였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은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기독교 교부 유세비우스였다. 그는 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황제의 신학적·정치적 자문 역할을 했으며, 궁정 신학자라고 불릴 정도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정책을 뒷받침할 ‘역사적 증거’가 필요했던 시기인 324년, 유세비우스는 돌연 기독교에 유리하게 서술한 기록을 ‘요세푸스의 증언’이라 소개하며 세상에 알렸다. 그의 저서『교회사』1권 11장에 소개된 이 요세푸스의 증언은 기독교 공인 정책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근거로 적극 활용되었다.<자료9> 하지만 조작이 밝혀진 오늘날, 이 조작 사건이 증명하는 것은 ‘당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다른 증언이 전무했다’는 사실과 ‘기독교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필요로 했다는 사실’이다.

<자료9> 유세비우스와『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은성출판사, 2008.
324년, 기독교 교부 유세비우스는 돌연 기독교에 유리하게 서술한 기록을
‘요세푸스의 증언’이라며 자신의 저서『교회사』에 실어 발표한다. 4세기 초반은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을 받으며 정치적·신학적으로 정당성 강화에 주력했던 시기였고, 유세비우스가 소개한 요세푸스의 증언은 기독교 공인 정책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근거로 적극 활용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알라딘)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아직도 예수의 처형을 기록한 다른 역사가의 기록이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AD 56 ~ AD 120)의 기록이다. 타키투스는『연대기』15권 44장에 기독교를 ‘해로운 미신(exitiabilis superstitio)’, ‘인류에 대한 증오심을 품은 집단(multitudo ingens … odio humani generis convicti sunt)’이라 표현하며 그 존재를 기록했는데, 예수에 대해서도 ‘그리스도가 빌라도에 의해 극형을 받았다’라고 짧게 언급하였다.<자료10> 그러나 타키투스 기록의 신뢰도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타키투스가『연대기』를 집필한 시점은 1세기 이후, 예수가 자취를 감춘 뒤 80년가량 지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의 서술은 직접 목격하거나 동시대 인물의 증언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수에 대한 과거 자료나 소문으로 접한 후대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당대 로마 기록에서 예수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고, 그는 소문이나 기독교 측의 주장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타키투스의 기록은 예수 처형에 대한 공신력있는 증언으로 보기 어렵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역시 “타키투스의 예수에 대한 기록은 당시 기독교인들을 통해 얻은 정보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예수에 대한 독립적인 역사적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제 타키투스 이후의 기록은 같은 이유로 객관성이 떨어지는 사료로 평가될 것이다.

자료10> 타키투스 동상과 1471년 판『연대기』첫 장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저서『연대기』에는 ‘그리스도가 빌라도에 의해 극형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집필한 시점이 예수가 자취를 감춘 뒤 80년가량 지난 뒤였기 때문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타키투스의 예수 기록은 당시 기독교인들을 통해 얻은 정보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독립적인 역사적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브리태니커)

지금까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역사 기록이 없다는 증거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2017년, 이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증언하는 고대 문서가 공개되었다. 이 문서가 가리키는 진실은 무엇일까?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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