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1> 죄값도 다 못치르고… 성범죄자 사제 헤커 교도소에서 사망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1>지난 12월 26일, 미성년자 강간, 납치 혐의로 종신형을 받은 전직 사제 로렌스 헤커가 93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종신형 선고를 받은 지 9일 만이었다.
헤커의 죽음을 두고 익명의 피해자는 변호사를 통해 “그의 죽음에 대해 좋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평화롭게 쉬길 바란다는 말은 허황된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그가 신의 심판을 받고 영원히 지옥에서 보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도대체 헤커는 생전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길래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일까?
헤커 사제, 소년 목졸라 기절시키고 강간
로렌스 헤커. 그는 미국 뉴올리언스 대교구의 전직 가톨릭 사제로 1958년에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 활동하며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여러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했다. 피해자들 중 한 명은 1975년에 자신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성학대 사건에 대해 고통스럽게 털어놓았다.
사건 당시 피해자는 16살의 소년이었다. 뉴올리언스의 성 요한 비안네 고등학교의 학생이었던 피해자는 어느 일요일 미사 후, 평소처럼 근처 교회의 운동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헤커가 예고 없이 나타났다. 피해자와 안면이 있었던 헤커는 그와 친근하게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가지 레슬링 기술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더니 피해자의 뒤에서 팔로 목을 감아 강하게 조르기 시작했고, 반항하던 피해자는 헤커가 강간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곧 기절하고 말았다. 한참 후 의식을 되찾은 피해자는 자신의 반바지 뒷부분이 젖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건 이후 혼란과 분노에 휩싸인 피해자는 학교에서 무차별적으로 싸움을 시작했고, 결국 교장실로 불려갔다. 교장인 폴 칼라마리와 이야기하던 중 피해자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울부짖으며 헤커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교장의 반응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교장 칼라마리는 그를 위로하거나 헤커를 경찰에 신고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에게 더 크게 화를 내며 이 사건을 누구에게 말했는지 추궁했다.
이후 칼라마리는 피해자의 부모까지 불러 사건의 진위도 논의하지 않고 피해자의 주장은 조작된 것이라며 단호히 일축했다. 또한 피해자에게 ‘분노와 환상’ 문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퇴학당할 것이라며 회유를 가장한 협박까지 늘어놓았다. 어린 소년과 그의 부모는 퇴학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겁을 먹고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소년은 침묵을 강요당했고, 헤커의 범죄는 조용히 묻히는 듯했다.
뉴올리언스 대교구가 숨겨온 성범죄자들
그러나 세상은 헤커를 가만두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헤커를 포함한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학대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이다.
2002년, 보스턴 글로브가 보스턴 가톨릭 대교구 소속 성직자들에 의한 대규모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했다. 이 스캔들은 가톨릭교회가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를 조직적으로 은폐해 왔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 사건을 재조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뉴올리언스 대교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아동 성학대 사건으로 심한 압박을 받아온 뉴올리언스 대교구는 2018년 마침내 헤커를 포함해 심각한 아동 성학대를 저지른 수십 명의 성직자 명단을 공개했다.
수십 년 전 침묵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도 뉴올리언스 대교구의 아동성학대 가해자 명단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헤커에게 학대당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리고 성학대 가해자 명단에서 더욱 놀라운 이름을 발견했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폴 칼라마리, 피해자가 헤커에게 강간당했다고 학교에 신고했을 때 자신을 퇴학시키겠다고 협박했던 교장이었다. 그들은 한통속이었다. 피해자는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한번 그들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2022년 변호사를 섭외해 헤커를 고소했다.
피해자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헤커에 대한 초기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2023년 6월, 영국 가디언지와 WWL-TV가 헤커의 자백서를 입수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가디언이 입수한 자백서에 따르면 헤커는 사제로 일하면서 만난 여러 소년들과의 애무, 상호 자위, 알몸 행위, 침대 공유, 그리고 테마파크에서의 하룻밤 여행 등을 언급하며 그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뉴올리언스 대교구가 보관하고 있는 파일에 따르면 헤커는 그의 자백보다 훨씬 더 악질이었다. 헤커는 1958년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소년을 성추행했다. 그의 초기 피해자 중 한 명은 헤커와 나체 수영 파티에 참석한 10대 소년으로, 파티는 헤커가 소년을 성폭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건 이후 피해 소년은 헤커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받았는데, 깃털이 든 상자를 다른 신부에게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상자를 신부에게 전달한 소년은 그 신부에게도 성폭행을 당했다. 헤커가 보낸 깃털은 소년이 성폭행하기 쉬운 대상임을 알리는 일종의 표시였던 것이다.
범죄 사실 알고도 헤커를 세상에 풀어놔
여기서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헤커의 자백서는 1999년에 작성된 것이었는데 그전까지 대교구는 헤커의 범죄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헤커는 왜 갑자기 자신의 범죄를 시인했을까? 자백을 하고도 어떻게 지금까지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당연하게도 대교구는 헤커의 범죄를 알고 있었다. 1988년, 당시 뉴올리언스 대주교였던 필립 해넌은 헤커의 아동 성학대 사실을 보고받았다. 해넌은 이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헤커를 뉴욕으로 휴가보내고, 상황이 진정된 후 업무에 복귀하도록 조치하여 사건을 조용히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1995년, 루이지애나의 사제 로버트 멜랑콘이 아동 강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자, 헤커의 성학대 의혹이 또다시 불거지며 수사망이 좁혀져 왔고 이에 헤커는 위기를 느끼고 스스로 교회 관리들에게 범죄를 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자백은 당시 대주교였던 프랜시스 슐트에게 전달되었고, 슐트는 헤커를 정신과 치료 센터로 보냈다. 치료 센터 측은 헤커가 소아성애자이며, 미성년자와 관련된 모든 업무에서 그를 배제시켜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헤커는 복귀하자마자 초등학교가 있는 교회로 배정받아 은퇴 직전까지 그곳에서 사제로 일했다.
슐트의 후임인 앨프리드 휴즈 대주교 역시 2002년 헤커가 은퇴할 때 그가 아동 성학대범이라는 사실을 지역사회에 공개하지 않고 숨겼다. 현재 뉴올리언스 대주교인 그레고리 에이먼드도 2012년 헤커에게 성추행을 당한 소년과 법정 밖에서 합의를 보기 위해 37,000달러를 지불했다. 이처럼 대교구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은폐, 대주교들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헤커는 2020년까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고액의 퇴직 수당을 받으며 자유로운 삶을 누렸던 것이다.
헤커, 8차례나 재판 일정 연기해
2023년 9월, 92세의 나이로 검찰에 기소된 헤커는 가디언지와 WWL-TV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소년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헤커는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성관계 동의 연령이 지금과 동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성적 행동에 더욱 관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시기는 성적 혁명의 시대였어요. 사람들은 해방감을 느꼈고 저 역시 그것에 속았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은 사제 독신주의가 여성만 피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황당한 변명도 덧붙였다.
또한 영상에서 헤커가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한 것과는 다르게 그와의 법정 싸움은 길고 지난하게 이어졌다. 헤커 측은 그가 고령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신의 건강 상태가 재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양호한지 확인해야 한다며 재판 일정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1년에 걸쳐 무려 8차례나 재판을 연기했으며, 요로 감염과 코로나로 인한 섬망 증세를 호소하며 7,000 페이지에 달하는 의료 기록을 제출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시간 끌기였다. 피해자 측 변호사인 트라한트는 “그들은 단지 이 노인이 죽어서 모든 문제가 끝나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라며 답답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들의 증언
긴 기다림 끝에, 결국 헤커가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의사들의 소견이 나오면서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 3일, 배심원 선정이 시작되기 직전, 헤커는 자신의 유죄를 인정했다. 이어 12월 18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한 피해자는 헤커가 저지른 강간으로 인해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이후 모든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평생을 외톨이로 살아왔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헤커를 “사제복을 입은 악마”라고 표현하며, 그가 탈장 검사를 빙자해 자신을 성추행했을 당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것을 깊이 후회한다고 했다. 그는 “그때 제가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라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라며 자책했다.
“헤커는 짐승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요”라는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담당 판사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반면, 헤커는 휠체어에 앉아 몸을 꿈틀거리며 종종 신음을 내뱉고, 피해자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는 고사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진술조차 거부했다. 이날 법원은 헤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종신형을 받은 지 9일 만인 12월 26일, 헤커는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피해자들, 정의를 위해 계속 싸울 것
헤커가 사망하자 뉴올리언스 대교구는 “우리는 그의 죽음이 생존자들에게 마무리와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마치 헤커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헤커의 죽음이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또한 헤커가 소년들을 학대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가 계속 사제로 일할 수 있도록 사건을 은폐한 뉴올리언스 대교구에게 책임을 물을 차례라고 밝혔다.
“헤커가 교인들에게 자신의 변태 행위를 계속 하도록 뉴올리언스 대교구가 그를 내버려 두었다는 것은 그저 혐오스러운 일입니다.”
“뉴올리언스 대교구도 헤커의 옆에 있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 일에 공모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은 “헤커의 죽음으로 정의를 위한 우리의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라며, 끝까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할 것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