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의 비밀… 성스러운 피와 죽음을 숭배하는 집단에 대하여

다시 쓰는 세계사 <12>
발행일 발행호수 2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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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야스쿠니 신사의 배전(拝殿)에서 소원을 빌고 있는 일본인들. 일반인이 참배하는 배전 뒤쪽에는 야스쿠니에 모시는 신(神)인 246만 6천 위(位)의 영혼이 봉안돼 있는 본전(本殿)이 있다. (https://ironna.jp/theme/1035) <자료2>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지난 9월 19일 아베 전 총리는 “오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16일에 총리를 퇴임했다는 것을 영령에게 보고했다”며 신사를 참배한 사실을 트위터에 알렸다. 한 달 만인 10월 19일 그는 또 다시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고는 기자들과 만나 “영령께 존숭(尊崇·높이 받들어 숭배함)을 표하기 위해 참배했다”고 말했다.(출처: 아베 전 총리 트위터 캡처)

일본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총리직에서 물러난 아베 신조가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참배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평소 야스쿠니 신사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찾아 소원을 비는 곳이다. <자료1,2>

두 손을 모으고 대학원 합격이나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느 종교 시설과 다를 바 없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피와 죽음이 뒤엉킨 괴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국제 재판에서 사형을 당한 A급 전범(戰犯)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신으로서 숭배받을 뿐 아니라,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까지 하나의 신으로 합사(合祀)되어 불가분의 관계로 엉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괴이한 것은, 전범을 신으로 숭배하고 전쟁을 찬양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전쟁 후에도 여전히 존속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끝나면 패전국에서 전쟁의 상징물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불태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에서 가장 노골적인 전쟁의 상징이었던 야스쿠니 신사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이 이야기는 두 명의 가톨릭 신부로부터 시작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망한 일본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최고 사령관으로 하는 연합국 최고 사령부(GHQ: General Headquarters)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 통치 기간 동안 일본의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GHQ는 야스쿠니 신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GHQ는 야스쿠니 신사가 전쟁과 죽음을 숭배하고 찬양함으로써 자살 특공대와 같은 가공할 살인 병기를 양산하는 정신적인 토대가 된다는 것을 간파했다. 실제로 가미카제(かみかぜ, 神風)라 불렸던 일본의 자살 특공대원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라는 말로 대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자료3,4>

<자료3>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출정 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일본군. (출처: http://www.japansubculture.com/wp-content/uploads/2017/04/) <자료4> 야스쿠니 신사 유슈관에 전시돼있는 가미카제 대원의 동상. 유슈[遊就]관은 야스쿠니 신사에 마련된 전쟁 박물관으로 그 명칭은 ‘고결한 인물을 본받는다.’라는 뜻이다. 가미카제라 불렸던 일본의 자살특공대원들의 동상을 비롯해 전쟁과 죽음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자료를 유슈관에 전시하고 있다. (출처: https://www.wartist.org/)

GHQ 내부에서는 야스쿠니가 전쟁을 조장하는 원흉이므로 남김없이 불태워야 한다는 의견과 종교적인 시설로 보아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었다. 이들은 종교계 인사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었고,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가톨릭 신부에게 의견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독일 예수회 소속의 브루노 비테르(Bruno Bitter, SJ, 1898~1987)와 미국 메리놀회 소속의 패트릭 번( Fr.Patrick J Byrne, 1888~1950)이었다. 브루노 신부는 예수회가 일본에 세운 상지 대학교의 주임 사제로 근무하면서 전쟁 기간 동안 교황청 대사직을 대리했으며, 패트릭 신부는 교토 지역에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종전 직후에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 국민에게 안심하라는 내용의 연설을 함으로써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이었다. <자료5,6>

<자료5> 브루노 비테르 신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야스쿠니 파괴를 반대했던 가톨릭 신부. 비테르 신부는 예수회가 일본에 세운 상지 대학교의 주임 사제로 근무하면서 전쟁 기간 동안 교황청 대사직을 대리했다. (출처: John Breen, “교황, 주교, 전범 – 전후 일본 가톨릭과 야스쿠니”,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vol.8, (2010), p.1) <자료6> 패트릭 번 신부. 미국 메리놀회 소속의 패트릭 번 신부는 “야스쿠니 신사를 파괴하면 일본인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 가톨릭은 야스쿠니 파괴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며 야스쿠니의 존속을 도왔다. (출처: 메리놀 외방전교회 블로그 https://mklvocations.blogspot.com/)

두 신부는 ‘야스쿠니 파괴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요청하는 GHQ에게 “야스쿠니 신사를 파괴하면 일본인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 가톨릭은 야스쿠니 파괴에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이에 대해 맥아더 장군은 “가톨릭이 야스쿠니 신사를 옹호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야스쿠니 신사의 파괴로 상처를 입게 되는 일본인의 감정이란, 전범국으로서 전쟁을 미화하고 찬양했던 감정이며 이러한 전쟁의 광기는 전후 반드시 처리되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부들이 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모습에 맥아더 장군은 당혹스러워했지만 사실 가톨릭이 전범국인 일본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입장에 서는 것은 그때뿐이 아니라 오히려 시종일관 반복된 행태였다.

일본이 중국을 침공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오르던 1937년 10월, 교황청은 전 세계 가톨릭 교회를 향하여 일본이 중국에서 벌이는 성전(聖戰)에 협력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1937.10.14. 교황청 지령 5개조) 이를 보도한 도쿄 아사히 신문(1937.10.17.자)은
“백만 대군보다 더 든든하다.”고 평했는데, 교황청이 일본의 잔혹한 전쟁에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명분을 실어 주고 전 세계 협력까지 촉구하고 나섰으니 그만큼 든든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자료7>

<자료7> 도쿄 아사히 신문, 쇼와 12년(1937년) 10월 16일자. 당시 교황 비오 11세의 사진과 함께 로마 교황청이 일본에 완전 협력하라는 내용의 내부 지령을 내렸음을 보도한 기사 (출처: https://blog.goo.ne.jp/jamawns/e/daf80809482b44f71526c0627f9a11ee)

가톨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일본은 그해 12월 중국의 주요 도시인 난징(南京)을 함락시켰고, 단 6주 동안 최소 26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을 도륙하고 학살했다. 난징에 주재하던 외국인들과 신문 기자들에 의해 난징 대학살은 전 세계 곳곳에 알려졌으나 그 참상이 낱낱이 밝혀진 후에도 가톨릭은 일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고한 지지를 표명했다. 도쿄 가톨릭 교구장이었던 도이 타츠오는 “일본이 무기를 들게 된 것은 신의 깊은 배려에 근거한 것이므로, 세계의 3억 5천만 가톨릭 신자들은 일본의 행동에 찬동을 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1943년 8월호
『성(聲)』 잡지)

이 발언대로라면 일본은 가톨릭의 신이 깊이 배려한 덕분에 무기를 들게 된 것인데 일본은 그 무기로 갖가지 만행을 저질렀다. 난징 대학살만 해도 일본군은 이 유서 깊은 도시를 점령한 후 순식간에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일본군은 중국인의 심장과 간을 꺼내 먹었고 거리에는 고환이 잘린 중국 남성의 시체가 즐비했는데, 사람의 고환을 먹으면 남성다워진다고 믿은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이었다. 또한 목 베기 시합을 벌여 먼저 100인의 목을 베는 사람이 누구인지 경쟁했으며, 일본 신문들은 100인 목 베기를 초과 달성한 일본군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사나운 독일산 셰퍼트를 풀어 놓아 중국인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은 다반사였고 거리에는 셰퍼트가 사람의 내장을 물고 돌아다녔다.<자료8,9,10,11,12>

<자료8> 난징 대학살 당시 중국인의 목을 베는 일본군의 모습. 뒤의 일본군이 미소짓고 있다.(출처 : 난징대학살기념관) <자료9> 난징 대학살 당시 중국인의 잘린 머리를 들고 미소 짓는 일본군 (https://forum.donanimhaber.com/japonlarin-yaptigi-nanking-katliami-1937–136334673) <자료10>난징 대학살 당시 중국인 어린 아기를 창검으로 꿰어 들고 있는 일본군(https://www.tes.com/lessons/YSsQfTQemCNBNQ/nanking-massacre-the-forgotten-holocaust) <자료11> 1937년 12월 난징 대학살 때 목베기 시합을 보도한 동경일일신문. ‘무카이 106, 노다 105 – 목표를 이미 넘어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목 베기 목표를 초과 달성한 무카이 도시아키와 노다 타케시의 의기양양한 사진을 실었다. (http://www.xinhuanet.com//politics/2017-12/13/c_129764435_4.htm) <자료12> 난징 대학살 당시 중국인의 목을 벤 일본군이 자른 머리를 땅바닥에 진열해 놓고 찍은 기념사진 (https://www.reddit.com/r/IconicImages/comments/3i7jrm/nsfw_massacre_and_raping_of_nanking_one_of_the/)

이러한 일본군의 만행은 가톨릭이 전 세계 전쟁에서 저지른 것과 유사했다. 시리아의 소도시 마라를 함락시켰던 가톨릭 십자군은 식인 행위를 벌여 어른들을 솥에 넣어 삶고 아이들은 불에 구워 먹었으며, 히스파니올라 섬을 장악한 가톨릭 세력은 원주민을 남김없이 도륙하면서 한 칼에 사람의 목을 베는 것을 놓고 열띤 경쟁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일 때 가톨릭 세력은 사나운 군견에게 90킬로그램짜리 갑옷을 입혀 앞장세웠고, 그 군견들의 먹이로 살아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던져 주었다. <자료13,14>

<자료13> 시리아의 소도시 마라에서 자행된 가톨릭 십자군의 식인 행위를 묘사한 그림 (출처 : 위키미디어)

그러나 살인과 폭력의 광기가 아무리 유사하다고 해도 종교 집단이 전범 국가를 옹호하고 지지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가톨릭이 야스쿠니 신사를 보호하고 나선 것에는 더욱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피가 지닌 의의를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자랑 중 하나다. 피에서 최고의 의의를 발견하고 신으로 찬양하는 정신은 일본 외에는 없다. 기독교 또한 피의 의의를 자각한 종교로서 예수의 피는 구원의 근원이다. 기독교와 일본인은 이러한 공통점이 내면에 가득 차 있다. 예수의 피로 순결하게 된 기독교인이 야스쿠니의 호국 영령의 피에 감동받는 것은 그러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尊い血の意義の深酷な意義の自覚こそ、我国の誇るべき一つであろう。…この血に再興の意義を見、祭神と讃える精神は、我が日本をおいて外にはない。… 基督教は血の意義を最も深く自覚した宗教である。…即ちキリストの血こそ救拯の根元であるからである。… キリストの血に潔められた日本基督者が、護国の英霊の血に深く心打たれるのは血の精神的意義に共通のものがあるからである。血の意義の深い自覚に共通なものが潜み湛へられているからである”-기사 원문 중에서 발췌)

이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열리는 대제(大祭)를 앞두고 일본 기독교 신보가 게재한 ‘야스쿠니의 영령’이라는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1944. 4. 11. 자) 예수의 피가 구원을 준다는 기독교의 교리와 호국 영령의 피가 신으로서 숭배를 받는다는 야스쿠니의 주장은 근본부터 동일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을 찬양하는 기독교와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죽은 것을 찬양하는 야스쿠니는 죽음을 숭배한다는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죽음을 숭배하고 찬양하는 정신은 가톨릭에서 ‘순교’라는 이름으로 형상화되었고 가톨릭 신도들은 순교 전설을 반복해 들으며 ‘예수를 따라 죽는’ 순교를 갈망하게 되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가톨릭의 ‘순교’ 정신이 일본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보고 가톨릭을 철저히 금지했으나, 이후 들어선 메이지 정부는 가톨릭과 같이 죽음을 숭배하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천황은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극렬한 전쟁을 벌였고 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천황을 위한 죽음’을 찬양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건립한 것이다. 야스쿠니가 죽음을 숭배하는 행태는 차츰 일본인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었고, 일본인들은 가미카제와 같은 살인 무기가 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더욱 섬뜩한 것은 이러한 죽음의 숭배가 가톨릭과 야스쿠니 신사 모두에게서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전쟁 후 불태워질 위기에서 가톨릭의 수호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남은 야스쿠니는 이제 전 현직 일본 총리가 직접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칠 만큼 그 위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과거 일본이 강대국으로서 전쟁을 일으키고 중국인을 학살하던 때는 ‘일본은 신의 배려로 무기를 든 것’이라며 지지를 보냈던 종교 집단이 이제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향해 ‘성모 마리아가 중국의 수호자’라며 사랑과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고 있다. 이는 과거와 같이 강자에 편승하는 교활한 역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섬뜩한 사실을 보여 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선(善)이 무너지는 위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악랄한 죄악이라는 발언(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a period of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을 자주 했다. 악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 침묵하는 자가 악을 행한 자보다 더욱 악하다는 것이다. 이 침묵을 깨야 할 책임은 못 배운 자보다 배운 자에게, 힘없는 자보다 힘 있는 자에게 더욱 클 것인데, 미국 명문가의 엘리트였던 케네디 대통령은 비록 가톨릭 신자였어도 정직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피와 죽음을 숭배해 온 집단은 인간을 사육하고 생각을 지배한 역사를 가졌다. 종교 사칭 집단은 피와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사기술로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오늘도 전 세계 신도들이 미사에서 ‘예수의 피’를 마실 때 그들의 신이 내려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일까? 죽음의 광기일까?

<자료14> 15세기 가톨릭 세력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했을 당시 살아 있는 원주민을 개 먹이로 던져 준 만행을 묘사한 그림 (시어도어 드 브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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