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세계사 <5>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식민 지배의 신호탄과 전염병 생물학 폭탄
다시쓰는 세계사 <5>교황 프란치스코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류와 문화를 케이크에 비유해 설명한 적이 있다. “인류와 문화는 케이크처럼 조각조각 자를 수 없다. 케이크를 잘라 반은 네가 갖고, 반은 내가 갖는 식의 협상으로 갈등이 종결되지 않는다. 함께 대화하고 건설해야 한다.”
세계 역사에서 케이크를 나누는 식의 협상은 여러 번 있었다. 각 나라의 인류와 문화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경계를 나눠 버린 최초의 사례는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Tratado de Tordesillas)이었다. 지구를 반으로 잘라 반은 스페인이 갖고 반은 포르투갈이 갖게 하는 조약이었는데, 이 조약을 승인한 당사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였다. <자료1,2>
이 조약에 따라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 지배하기 위해 나섰고 이때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은 스페인에서 들어온 각종 전염병으로 대량 학살을 당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식민 지배의 신호탄이 되었던 통고문과 원주민에게 생물학 폭탄이 되었던 전염병에 대해 알아본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승인할 당시 교황은 물론이고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세계의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평양이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도 일부만 파악했는데 미지의 땅이면 무조건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핵심이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이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이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교황이 인정해 준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교황의 승인으로 두 나라는 ‘발견’하는 땅을 전부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것의 맹점은 원래부터 땅을 소유했던 원주민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레케리미엔토(Requeri miento)’라고 불리는 통고문에도 그대로 반영됐는데, 레케리미엔토는 스페인 탐험가들이 미지의 땅에 도착해서 읽어 주는 선전포고문이었다. 1493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교시한 내용으로, 간단히 말하면 “가톨릭의 하느님이 교황에게 세상을 넘기고, 교황은 너희 땅을 스페인에 넘겼으니 그런 줄 알라.”고 일방적으로 원주민에게 통보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시누족은 이 통고문을 듣고 빙긋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글쎄, 가톨릭에서 믿는 하느님이 자기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인심을 팍팍 썼구려.”(로널드 라이트 지음,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2012., p.124./ Galeano 1985:60)
이것은 통고문을 원주민의 언어로 통역했을 때의 반응이었고, 통역 없이 스페인어로 읽고 끝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심지어 텅 빈 거리나 광장에서 읊기도 하고 아직 배가 육지에 닿기도 전에 뱃전에서 읊어 대기도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면서도 스페인 사람들이 통고문 낭독에 집착했던 것은 이 통고문이 가지는 효력 때문이었다.
“그대들은 가톨릭교회를 이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는 군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스페인 국왕이 가톨릭교회를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에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비호 아래 온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어디서든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강제로라도 그대들이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악(todos los males)을 동원해 그대들에게 해를 입힐 것이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 Spanish_Requirement_of_1513)
이 통고문을 듣고 원주민이 복종하지 않으면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의 땅을 강제로 빼앗을 수 있었으며, 원주민 학살도 그들의 신이 허락해 준 정당한 행위가 되었다. 물론 원주민이 통고문대로 순순히 복종한다 해도 땅을 빼앗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자신의 문화와 땅을 가진 원주민이 하루아침에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낭독이 끝나면 곧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잉카를 정복할 때도 레케리미엔토를 읽어 주었다. 1532년 11월 원정대에 소속된 가톨릭 수사 비센테 데 발베르데는 카하마르카 광장에서 잉카 황제를 앞에 두고 레케리미엔토를 낭독했다. 그러자 잉카 황제는 “네가 말하는 교황이란 자가 참으로 미쳤구나. 남의 나라를 떡 주무르듯이 나눠 주다니.” 하고 대꾸했다. <자료3>
그래도 비센테 수사는 한 손에 십자가를, 한 손에 성무일과서(聖務日課書, 가톨릭 성직자들이 매일 반복하는 기도문과 찬송가를 적은 책)를 들고 황제 앞에 다가가 “오직 십자가를 경배하고 오직 하느님만 숭배해야 된다.”고 선언했다. 잉카 황제가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묻자 수도사는 성무일과서를 내밀었고, 황제는 그 책을 훑어보더니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 즉시 비센테 수사가 “가톨릭을 모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외치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던 스페인 원정대는 일제히 대포를 쏘며 전투를 시작했다. 무장한 기마병들이 비무장 군중을 휘저으며 “개미 잡듯이” 죽이는 학살극이 끝났을 때는 만 명에 이르는 시신이 광장 여기저기에 피와 살이 범벅되어 나뒹굴었다. <자료4>
황제를 호위하던 병사들도 떼죽음을 당하고 잉카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던 황제마저 스페인 원정대에게 사로잡혔다. 이로써 잉카 제국은 멸망해 버렸다. 가톨릭교회와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는 식민지가 되었으니 황제에게 읽어 준 레케리미엔토가 현실이 된 셈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정복 의지를 밝힌 레케리미엔토가 전쟁의 신호탄이었다면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에 가져간 전염병은 생물학 폭탄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아메리카는 스페인 사람들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마치 생물학 폭탄이 투하된 것처럼 각종 전염병이 극성을 부렸다.
100년 동안 스무 차례 전염병이 휩쓸고 간 결과 원주민 숫자는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져 9,000만 명의 사람이 몰살당했다. 스페인이 가장 먼저 발견하고 지배했던 히스파니올라 섬의 원주민 타이노족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고 말았다.
아메리카 사람들이 그토록 전염병에 취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력한 원인 중 하나는 환경과 면역력의 차이였다.
아메리카 사람들은 매일 목욕하며 몸을 깨끗이 했을 뿐 아니라 날마다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며 청결함을 유지했다. 이런 환경 때문에 병원균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었고 대량 살상 능력을 가진 전염병도 거의 없었다. 이것은 전염병에 맞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는 뜻이었다.
이에 반해 스페인은 홍역, 천연두, 페스트, 황열,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창궐했고, 이 환경에서 살아남은 스페인 사람들은 전염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끼리 살 때는 아무 위험이 없었지만 강력한 병원체를 가진 스페인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치명적인 위험에 빠져 버렸다. 원주민이 스페인 사람과 접촉하고 나면 너무나 쉽게 죽어 버렸기 때문에 마치 스페인 사람의 냄새만 맡아도 죽는 것처럼 보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전염병에 쓰러지는 원주민을 불에 타 죽는 빈대에 비유하기도 했다. (로널드 라이트 지음,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pp.93~94.)
특히 급속도로 퍼졌던 천연두는 스페인의 한 병사가 원주민과의 전투 중에 전염시켜서 원주민들은 반격할 힘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천연두는 얼굴을 흉측한 곰보로 만들고 눈까지 멀게 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원주민들조차 다시 절망에 빠졌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예전과 같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가족과 친지가 세상을 떠나고 마을을 이끌던 어른도 없어졌으며 풍요로웠던 경작지는 돌보는 사람 없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눈앞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고 제멋대로 곡식을 심어도 저항할 원주민이 너무나 적고 힘이 없었다. <자료5>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만 골라 죽이는 전염병을 두고 “주 예수를 믿지 않는 이교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원주민의 눈에도 전염병에 끄떡없는 스페인 사람들은 신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보였고, 겁에 질린 원주민들은 떼를 지어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곧 스페인 수도사들은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원주민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개종하고 세례까지 받은 후에도 여전히 전염병으로 죽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1524년 중앙아메리카에서 선교하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은 원주민이 떼죽음을 당해도 당황하지 않고 죽음이 곧 축복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곧 예수가 재림하고 세상이 끝날 것인데 종말을 앞두고 전쟁이 벌어져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신께서 세례를 받은 원주민 신도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심은 임박한 종말의 때에 고통을 면해 주시려는 특별한 축복”이라고 했다.
죽음이 곧 축복이라는 개념은 원주민에게 생소했지만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거라는 말은 원주민도 실감할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십자가 배를 타고 찾아온 뒤로는 악취 나는 그 배에서 바퀴벌레와 쥐가 튀어나와 해안에 흩어져서 바이러스성 질환을 퍼뜨리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가져온 돼지, 소, 양, 염소 같은 낯선 동물들이 운하와 들판을 엉망으로 만들자 예전에 없었던 인수 공통 질병(人獸共通感染病, zoonosis)이 창궐했다. 어디를 봐도 종말과 같은 고통과 혼란뿐이었다.
가톨릭 수도사들은 개종하지 않은 원주민이 전염병으로 죽는 것도 신의 뜻으로 설명했는데,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제로니모 데 멘디에타는 이렇게 적었다. “원주민이 겪는 전염병을 보며 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걸 느낍니다. ‘너희는 이 종족을 어서 절멸시켜라. 나는 좀 더 빨리 그들을 절멸시키도록 너희를 도울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Stannard, 『American Holocaust』, 219쪽.)
개종을 거부하는 원주민을 말살시키는 것은 예수의 뜻이었고, 예수가 전염병을 통해 종족 학살을 돕는다는 것이었다. 신이 전염병으로 신도들을 돕는다는 생각은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에도 있었다.
영국 왕이었던 조지 3세(1738~1820)는 “축복의 천연두가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했다. 영국인들이 북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해 침입했을 때 원주민 마을은 대부분 비어 있고 경작지는 죽은 원주민의 뼈로 뒤덮여 있었다. 천연두가 수차례 퍼지면서 뉴잉글랜드 지역 원주민의 94퍼센트를 학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천연두로 원주민 종족이 말살을 당하고 영국인이 아무 저항 없이 원주민의 땅을 차지한 것을 두고 조지 3세가 ‘축복의 천연두’라고 칭송한 것이었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와 조지 3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들이 믿는 신은 축복의 천연두를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도 죽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죽이는 셈이었다. 죽음을 선사하는 신의 손길을 경험한 신도들은 신의 도움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1763년 영국의 제프리 암허스트 장군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천연두에 오염된 담요를 선물로 주었다. 암허스트 장군은 그들이 믿는 신이 허락한 대로 “지긋지긋한 종족을 절멸시키기 위해서” 천연두를 전염시켰다고 했다. 선물 받은 담요를 덮고 잠을 청했던 원주민들은 얼마 안 가 무시무시한 종기와 함께 죽음의 대열에 휩쓸려 버렸고 암허스트 장군은 그가 믿는 신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자료6>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탄젤로 성에는 전염병을 퇴치해 준 미카엘 천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가톨릭의 전설에 따르면 페스트가 창궐하던 590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산탄젤로 성 위에 천사 미카엘이 칼을 들고 있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이 꿈을 꾼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기 때문에 교황은 미카엘이 천사의 칼로 페스트를 물리쳐 준 것이라고 믿었다. <자료7>
그러나 미카엘 동상이 우뚝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스트는 계속해서 유럽에 창궐했다. 1331년부터 20년간 계속된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였고 1500년대에도 여러 번 유럽에서 재발했다. <자료8>
특정한 경우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이르는 치명적인 페스트에 대해 교황도 만족스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아메리카에서는 예수를 믿지 않는 신도들만 골라서 학살하던 신이 왜 유럽에서는 충성스러운 신도까지 죽였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의심일 뿐 그 신은 2,000년간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는지도 모른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시체를 종교의 상징물로 내세운 이래로 시종일관 죽음을 축복으로 내려 준 신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