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전 오늘, 노구산 정상에서 열린 사상 초유의 집회
1958년 6월 30일.
61년 전 오늘, 소사신앙촌 노구산 정상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6일간 연인원 70만 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참가 인원, 집회 기간 중에 열린 전국 교인들의 체육대회, 그리고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이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집회 열기까지 천부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집회였다.
우선 노구산(露求山)이라는 산의 명칭부터 천부교와 관련된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집회가 열린 노구산은 소사신앙촌에 위치한 해발 153m의 산으로, 예부터 할미산 또는 노고산(老姑山)으로 불렸다. 천부교 원로인 강명수 승사는 신앙체험기에 이렇게 적었다.
“1957년 소사신앙촌 건설을 시작하셨는데, 그 뒤 노고산을 노구산으로 칭하게 되었다. ‘이슬을 구하고 내리는 산’, 그곳에 하나님께서 제단을 세우고 이슬은혜를 내리신 것이다.”
산 이름이 소사신앙촌 건설과 더불어 변경되었다는 것은 두산백과사전(http://www.doopedia.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노고산(老姑山)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1950년대 후반 신앙촌이 들어서면서 이른바 이슬성신이 죄를 씻어준다는 뜻으로 노구산(露求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산꼭대기에 신앙촌 사람들이 세운 천부교 오만제단이 있다.”
가뭄으로 모내기 못해 애태우고
마실 물도 턱없이 부족한 때에
노구산 집회 중에 비가 쏟아져
사람들은 산천이 울리도록 찬송
노구산집회가 열린 기간은 장마가 한창인 때였다. 보통 장마 때 농촌의 모내기가 이뤄지기 때문에 당시 농업에 치중하던 우리나라에서 여름비는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노구산집회 직전까지 가뭄이 계속되어 애를 태우던 사람들은 집회 시작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농촌에 살다가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심언희 권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를 전도할 생각으로 노구산집회에 모시고 갔는데, 두 분 다 집회에 처음 참석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친정아버님은 저를 보고 “얘야, 어떻게 된 게 토끼털 타는 냄새가 나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죄 타는 냄새를 맡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죄 타는 냄새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또한 시아버님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즐겁다고 하시며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집회를 하는 도중에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6월말까지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어 시골에서는 논바닥이 갈라져서 모내기를 하지 못해 애를 태웠으며, 밭작물이 바짝 타 들어가서 ‘이러다 큰 흉년이 들겠다.’ 하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마실 물도 턱없이 부족하여 몹시 고생스러웠습니다. 농사를 지으셨던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는 쏟아지는 비를 보고 “이제 모내기를 할 수 있겠다!” 하며 뛸 듯이 기뻐하시더니 모내기를 해야 한다면서 예배가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구산 집회를 시작하시기 전에 사석에서 “노구산에서 집회를 하게 되면 비가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노구산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산천이 울리도록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집회 중에 내렸던 단비는 참석자들에게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곽옥란 권사의 체험기에서 집회의 열기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일주일 정도 집회가 열리는 동안 비가 많이 쏟아져서, 찬송할 때 손뼉을 치면 빗물이 얼굴에 튀기도 했고 옷에는 벌겋게 진흙물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도 노구산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집회에 열중했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강원도 가는 기차를 탔더니 그 칸에 있는 사람들 모두 옷에 벌건 진흙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전도관 식구들이구나 하며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고, 강원도까지 가는 동안 다 함께 찬송을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차가 달려가는 철길 위로 힘찬 찬송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기억은 지금도 흐뭇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집회 참석자들이 그토록 기뻤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늘의 기쁨이었다. 이슬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정상을 뒤덮은 노구산에는 하나님 은혜가 한없이 쏟아졌다. 홍경희 권사는 당시에 받은 은혜를 체험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노구산에 올라가 보니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산이 완전히 사람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단상에 올라오셔서 찬송을 시작하시자 그 많은 사람들이 찬송을 부르는 소리로 산천이 떠나갈 듯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찬송을 부를 때 저 멀리 있는 사람들 머리 위로 뽀얀 안개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햇볕이 쨍쨍한데 웬 안개가 쏟아지나?’ 하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에는 제 머리 위로 뽀얀 안개가 확확 쏟아져 내려서 바로 앞에 앉은 사람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안개가 차츰 걷힐 무렵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멈추시더니 이 시간에 뽀얀 안개와 같이 은혜가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뽀얀 안개와 같이 내리는 은혜는 호세아서 14장에 기록된 ‘이슬 같은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말씀을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제 눈으로 이슬 같은 은혜를 보게 되었고 그 은혜가 성경에도 기록돼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노구산집회에서 가장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것은 바로 감람나무를 증거하시는 말씀이었다.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시며 그 은혜를 내리는 자가 감람나무임을 밝히신 것이었다.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김후순 권사는 그 말씀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힘 있는 음성으로 성경상의 ‘감람나무’에 대해 말씀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 전부터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노구산집회 때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 감람나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이슬은혜로 죄를 씻어서 구원을 주시는 분이심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어찌 이렇게 귀한 분을 만났을까! 어찌 이렇게 큰 복을 받았을까!’ 하며 기쁨과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구원의 길을 알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노아 홍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온 세상이 물로 뒤덮여 망망대해를 떠돌던 사람들이 아무런 희망도 없고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 막막했을 때 새로운 땅을 발견한 기쁨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토록 큰 은혜를 주신 노구산 정상에는 1958년 오만제단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노구산에서 감람나무를 증거하신 하나님께서는 1980년 오만제단에서 다시 한 번 놀라운 말씀을 터뜨리셨다. 바로 예수의 허구성을 밝히시고 성경상 인물들의 죄상을 낱낱이 지적하시는 말씀이었다. 오만제단에 10,000여 명의 청년들이 모인 청년집회에서였다.
집회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어서는 구원 얻을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시고, 성경상의 중요 인물인 아브라함은 축첩자이고 롯은 근친상간자이며 다윗은 살인자임을 지적하셨다.
명쾌한 말씀으로 성경과 예수의 허구성을 청년들에게 밝히시고 구원의 주인공인 감람나무를 증거하신 것이었다.
1980년 오만제단 청년집회에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상 인물들의
죄상과 예수의 허구성 밝히시고
구원의 주인공 감람나무 증거해
당시 참석했던 김종민 박사는 집회에 참석한 후 전도를 위해 뛰었던 일을 기억했다.
“그날 이후 전국 청년회는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기성교회를 방문해 하나님 말씀이 담긴 책자를 나눠 줬는데, 예수와 성경의 허구성을 낱낱이 지적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교회 목사나 전도사를 만나서 ‘당신들 교회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며 전도 책자를 나누어 주자 그들은 순순히 책자를 받으며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빴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영적으로 모두 꺾어 놓았어.’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과연 그 말씀대로 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지금도 변함이 없고 노구산에서 시작된 성신의 역사는 오만제단과 더불어 계속되고 있다.